• 성적공개는 부자들의 학력독점제
        2008년 08월 08일 0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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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류대, 이류대, 삼류대 등으로 대학이 줄서있는 건 일종의 연좌제다. 우리 사회는 만 19세의 입학성적 단 하나만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곳이다. 대학 들어간 후 실력이 일취월장하여도, 취직하고 사회생활하면서 능력이 발전하여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오직 대학 입학할 때의 성적이 모든 걸 지배한다. 그것도 개인의 성적이 아니라 함께 입학하는 사람들의 성적, 입학하는 대학의 이전 성적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학벌은 하나의 연좌제다.

       
      ▲ 안병만 신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사진=교육과학기술부)
     

    앞으로는 이런 줄세우기와 연좌제가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8월 7일 발표한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안)> (이하 ‘시행령안’) 때문이다.

    학교별 성적 공시가 시행령안의 포인트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시행령안의 핵심은 학교별 성적 공시다. 다른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으나, 법을 만들 당시나 이후 시행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쟁점은 “학교별로 성적을 공시하느냐 마느냐”였다.

    이에 대해 이전 참여정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지난 10년간 교육과정평가원(KICE)이 주관하였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또한 학교별 공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년에 시행령안의 용역을 수행하였던 한국교육개발원(KEDI) 또한 학교별 공시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초중고등학교 서열화의 우려가 있었고,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취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학교별 성적을 공시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에 따라 앞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2008년부터 국가 주관 일제고사 실시(초6, 중3, 고1 대상, 올해는 10월 14-15일 예정)
    △ 2010년부터 학교별 성적 공개(보통 이상/ 기초/ 미달의 비율,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 2011년부터 학교별 성적을 전년도 성적과 함께 공개(2개년도 비교)

    [전망 1] 일류학교, 이류학교, 삼류학교 등으로 초중고 서열화

    국가가 나서서 일제고사를 치른 후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미국과 영국 등 신자유주의 교육이 발달한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자, 마음대로 자율적으로 운영해보세요. 단, 1년에 한 번 정도 시험을 보고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성적이 나쁜 학교는 몇 년 정도 지원도 하고 봐주지만, 계속 그러면 문 닫을 겁니다”라는 형태다.

    이명박 정부는 이걸 하겠다는 거다. OECD의 PISA와 같은 국제학력평가에서 미국과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뒤쳐지는데, 그런 미국과 영국을 따라하는 게 왠지 불안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이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하니까 마냥 그런 것으로 이해해주자.

    일제고사를 보고 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면, 서열화는 피할 수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서열화의 우려가 있어서 ‘우수 학생 비율’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달 학생 비율’이나 ‘기초 학생 비율’로도 서열화를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대학입시에서 “몇 점 이상이면 들어간다”(간택)는 말은 “몇 점 미만이면 떨어진다”(배제)와 똑같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열화가 진행되면, 평준화 해체는 덤으로 주어진다.

    [전망 2] 영미보다는 싱가폴의 교육체제가 되지 않을까

    일제고사와 성적 공개에 의해 초중고등학교가 서열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형태는 영국과 미국이 아니라 싱가폴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대학은 ‘여러 줄’이 아니라 ‘한 줄’로 서있기 때문이다.

    싱가폴은 우리나라의 교육과학기술부나 경제부처, 보수언론이 교육시장 개방을 논할 때 하나의 모범사례로 꼭 언급하는 나라이다. 최근의 제주 영어교육도시나 여러 경제자유구역에서도 본받아야 할 나라로 거론된다.

    하지만 싱가폴의 초중고등학교에는 극단적인 서열이 매겨져 있다. 우리의 학교체제 용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싱가폴의 중고등학교는 수능 성적에 따라 등급이 매겨져 있다. 우선 상/중/하 등 3등급으로 나누고, 다시 세부 등급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등급이 세세하게 매겨진 중고등학교에는 어떻게 들어갈까. 간단하다. 초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에 따라 진학한다.

    그래서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으면, 초등학교 졸업시험을 잘 보고 GCE A-Level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만약 초등학교 졸업시험 성적이 여의치 않으면 GCE O-Level 중고등학교에 가는데, 그러면 명문대학에 갈 수 없다. 전문대학만 갈 수 있다.

    이 그림에 왠지 호감이 간다. 하긴 한 줄로 서있는 대학, 고교등급제를 사실상 해왔고 앞으로는 공개적으로 하고 싶어하는 대학들, 대학에서 알아서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으라는 정부, 이미 최상위권 고교로 자리매김한 자사고와 특목고, 비평준화 지역의 고교 서열화 및 학벌 등이 우리나라의 풍경이니 만큼, 일제고사와 학교성적 공개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면 어쩌면 싱가폴을 금방 추월할 수도 있겠다.

    [전망 3] 중상류층에 유리한 연좌제

    교육과학기술부는 보통 이상/ 기초/ 미달 등 3가지 학생 비율을 학교별로 공시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평균 개념이다. 하지만 평균으로 한 개인을 판단하는 것은 연좌제다. 80점을 받은 학생이라 하더라도 다른 학생의 성적이 낮아서 평균 60점이라면 그 학생은 60점짜리로 대접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위권 학생의 엑소더스는 필연이다. “재랑 놀지 말라고 했잖아”가 더욱 심해진다. 지금이라면 주소지 이전의 방식으로 보다 나은 학교로 이동하려고 할 것이고, 만약 공정택 서울교육감의 공언대로 학교선택제가 시행되면 이를 백분 활용할 것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그랬다.

    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교의 여러 가지 대책도 나오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에서 이미 보고된 바 있는 방식, 예컨대 평균 까먹는 학생을 시험보지 못하게 하기, 시험문제 미리 알려주기, 다양한 찍기 교육 등이 동원될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잘 사는 집 아이를 대거 확보하는 것이다. 아이의 성적은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좌우된다는 게 교육학의 상식이고, 우리나라 또한 그렇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잘 사는지 못 사는지 대놓고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아빠 직업이 뭔지, 사는 동네가 어디인지 정도만 물으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 및 학부모의 엑소더스와 학교의 전략 등 양방향의 움직임이 만나면서 서서히 서열의 윤곽은 들어난다. 그게 기존 서열 그대로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서열일 수도 있다. 예컨대 강남의 학교라 하더라도 낮은 서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번 서열이 형성되면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서열이 몇몇 작은 변동은 있었으나, 근 60년 동안 고착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중상류층에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좋은 성적을 보일 가능성도, 학교를 이동할 가능성도, 학교로부터 선택받을 가능성도 중상류층이 높다. 그러면 삼류로 낙인찍히는 학교에는 못 사는 사람들만 남는다. 미국과 영국의 도심 공립학교처럼.

    [전망 4] 학교별 성적 공개는 올해부터

    시행령안은 학교별 성적 공개를 2010년부터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시행령안에 따를 경우다. 문제는 시도교육청이나 학교에 자율권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빠르면 올해부터 학교별 성적 공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정확하게는 오는 10월 14-15일의 시험부터 일제고사가 치루어진다. 그 결과를 어떻게 할지는 시행령안에 담겨 있지 않다. 그렇다면 지난 3월의 경우처럼 시도교육청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라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시도교육청의 방침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고 본다.

    지난 3월 일제고사에서도 공개하였는데,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공정택 당시 서울교육감은 “성적으로 홈페이지에 게시하겠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따라서 학교별 결과, 시도별 결과의 공개가 전망된다. 여기에 언론의 취재 경쟁이 붙으면, 전국 석차 확인도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일제고사는 그것 말고도 또 있다. 국가 주관 학업성취도 평가는 10월 14-15일의 초6, 중3, 고1이지만, 10월 29일에는 중3, 12월 23일에는 중1과 중2가 시도교육감협의회 주관으로 시험을 볼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말이 되면 각종 서열표를 만날 수도 있겠다.

    [전망 5] 교원평가 논란은 불필요

    일제고사를 보고 학교별로 성적을 공개하면, 그게 곧 교원평가다. 그래서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원평가 법안을 내던 내지 않던, 국회를 통과하건 말건 간에 사실상 교원평가는 이루어진다. 다만, 영국과 미국처럼 성적 낮은 학교의 교장이나 전체 교사를 퇴출시키는 제도가 시행되지 않은 점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분위기 봐가면서 ‘짜르는 제도’를 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교원평가는 ‘전문성 강화’나 ‘부적격교사 대책’의 차원으로 교원평가를 이야기해온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교원평가는 애초부터 경쟁과 퇴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제도 정착의 관건은 계층별 이해관계와 적응 여하에 달려

    시행령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일단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게 갈릴 것은 확실하다. 그 다음은? 관건은 계층별 이해관계와 적응 여부에 달려 있다.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 공개로 초중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계층이 있다. 추가하여 학교선택제가 실시되어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이득을 취하는 쪽은 중상층 이상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긴 지금은 대학입학 단계에 가서야 경쟁자를 배제시킬 수 있지만, 초중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훨씬 전부터 경쟁자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아이는 함께 커야 한다’나 ‘지나친 경쟁은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나름의 교육관을 지니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중상층이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서열화는 돈이 빠듯하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불리하다. 사교육비를 많이 투입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아이가 좋은 성적을 얻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서열화란 곧 고급차 구간과 나머지 자가용 구간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교육은 ‘합리적인 소비’를 해서는 곤란하다.

    돈이 적으면 모닝 구입하고, 많으면 에쿠스 사는 소비를 하면 안된다. 무조건 에쿠스를 사야 한다. 모닝으로는 목적지(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목적지에 갈 수 없으면 사람답게 사는 걸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출혈을 해서라도 에쿠스를 사야 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불리하다.

    문제는 우리나라 교육정책 제2의 법칙이다. 우리나라 교육은 경로의존, 즉 한 번 만들어지면 잘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처음에는 시끌벅적하지만 금방 적응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럽지만 적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일제고사와 학교별 성적 공개는 정착한다.

    오늘(8월 7일) 큰 딸아이 생일이다. 며칠 전부터 ‘아빠는 케익 사오고’를 떠들어댔다. 그러니 퇴근하면서 제과점에 들를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선물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련다. 취학 전이라서 말해줘도 눈만 깜박깜박 거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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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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