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인상, 물가 못잡고 침체만 심화
        2008년 08월 06일 06: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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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는 현재 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가 있고, 최근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인상의 필요성 여부가 경제정책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다수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금리 인상을 주장하고 일부 진보적인 경제학자들까지도 여기에 동조한다. 이들의 논리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금리인상에 의한 긴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사진=레디앙)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의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이성태 한은총재는 지난 7월 금통위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에서 "물가와 경기가 모두 어려울 때 한국은행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향후 기준금리 인상을 강하게 시사했다. 7월 소비자물가가 5.9%로 상승했기 때문에 물가상승 억제 압력은 더욱 커진 셈이다.

    그러나 현재 경제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적절한 정책이 아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은 물가 안정 효과는 약하고,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내수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에 무력한 금리 인상 효과

    첫째,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해외로부터의 비용 상승에 의한 것이지 지나친 수요 확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실 국제적으로는 작년부터 시작된 석유가격과 곡물가격 급등 이전만 하더라도 경기침체와 자산 거품 붕괴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가 컸다.

    한국의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야기한 것은 세계적 고유가, 곡물가격 폭등으로 인한 비용 상승이고, 고환율정책이 이를 증폭시켰다. 반면에 과다한 적자재정 지출이나 방만한 통화방출 등 수요측면의 물가상승 요인은 크지 않다. 재정은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긴축 정책은 ‘수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유용하지만, ‘비용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 현재와 같은 비용 인플레이션 하에서는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주도로 밀어부쳤던 과도한 환율상승도 물가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은 후 정부의 환율안정화 정책으로 꺾였다. 국제 석유가도 하향안정세로 돌아섰다.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 국제유가는 지난 7월11일 배럴당 146.30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급락세를 지속, 5일 현재 배럴당 119.17달러까지 떨어졌다.

    경기침체와 유가 인상으로 석유 소비가 감소하면서 석유가 인상 압력이 약해졌고, 투기에 의해 형성된 석유가격 거품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국제 곡물가격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유가하락의 영향과 투기세력의 후퇴로 곡물가격은 1개월 전과 비교할 때 소맥 -12.1%, 옥수수 -30.7%, 대두 -23.7% 등의 하락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

    금리 인상은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외환보유고를 증가시키고 환율을 인하시켜 물가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세계적 경제침체 국면에서 이러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인들이 올 들어 7월 22일까지 유가증권 시장에서 순매도한 규모는 21조4670억원으로 불어났다. 주가총액 중 외국인의 보유 비중도 30.2%로 하락했다.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한국 등 일부 아시아 증시에서 자금회수에 나선 외국인들이 꾸준히 주식을 판 결과이다. 심지어 외국인 직접투자도 순유출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인 직접투자의 유입액에서 유출액을 뺀 순투자액은 올 상반기에 -9억 달러를 기록했다.

    금리 인상에 의한 서민 이자부담과 금융 부실

    둘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은행금리 상승은 부채를 지고 살아가는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을 위협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640조5천억원에 달한다. 전년도에 비해 50조원이나 늘어났다.

    금리가 연리 1%만 올라도 6조원 이상의 추가부담이 생기는 것이다. 저소득층은 가계수지 적자 상태이다. 저소득층일수록 보유 금융자산보다도 부채가 많기 때문에 금리 인상은 이들에게 직격탄이 된다. 거시경제적으로는 바로 내수 위축으로 귀결된다.

    셋째, 금리 인상은 5월 현재 전체 은행 가계대출의 61%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의 상환불능사태를 악화시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부동산 경기를 더욱 냉각시킬 수 있다.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떨어지는 상황에서 급증한 가계부채에다가 금리인상까지 가세하면 개인들에게는 원리금 압박과 파산 위험을, 금융기관에게는 부실 위험을, 경제 전체로는 내수침체와 장기불황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넷째, 금리 인상은 경기침체를 가중시킨다. 향후 경기침체는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이고 경제정책 목표도 경기침체 완화와 극복에 맞춰져야 한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가중시킨 사례가 있다.

    미국은 1970~1981년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었다. 물가는 15% 급등했고 실업률도 9%에 육박했다. 세 번에 걸쳐 마이너스 성장하는 리세션이 있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임금억제정책과 함께 통화량 긴축정책을 폈다. 볼커 당시 연방준비은행 의장은 금리를 20%대로 큰 폭으로 올렸다.

    그 결과 물가는 1981년 13.5%에에서 1983년 3.2%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금리 인상에 의한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1981년 7월~1982년 11월 경제성장은 -2.0%로 추락했고, 실업률은 10% 수준으로 치솟을 정도로 미국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졌다.

    미국도 금리 동결

    한국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제는, 뉴욕대학 경제학과 루비니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주택금융 부실로 2조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이고, 지난해 4분기 내지 금년 1분기에 시작된 경기침체는 2009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5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어 연방기금 금리를 2%로 동결했다. 미국 경제의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택시장 침체와 지속되는 신용위기, 경기둔화 등을 감안한 조치로 볼 수 있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소비재 판매액은 전년 동월비 1.0% 감소해 23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또 생산자제품 재고는 전월비 3.6%, 전년동월비 15.9%까지 늘어나 생산·출하마저 위축되는 모습이다. 내수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다. 금리인상은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한국은행의 임무는 물가안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은 경기조절에도 큰 책임이 있다. 효과도 불확실한 금리인상에 의한 물가안정을 추구하다가 경기침체를 심화시켜서는 안 된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요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하여 경기침체에 대처하는 한국은행의 현명한 결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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