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당원은 의식화 대상 아니다”
    2008년 08월 04일 12: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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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그리 열성적이지 못했던 당원 활동에 대한 자아 반성을 우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근래 저의 당 활동은 거의 지역구 내의 온오프 활동에 한정되어, 중앙당 홈페이지에 들르는 일이 적었고, 들른다 해도 거의 당원 게시판 글만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전진’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전스틴(연예인 전진)’을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저의 이야기는 지금 한참 격론이 이루어지는 광장으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입장에서 쓰여지게 될 것 같습니다.

   
 ▲ 고훈(34)씨 (사진=레디앙)
 

이번 논쟁의 징후는 제가 지난 번에 참여했던 ‘기존 정당 활동을 하지 않은 신규 당원’들의 <레디앙> 좌담회에서 이미 노출되었었습니다.

당시 일산의 김미숙 당원은 기존 당원의 ‘경직성’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신규 당원들의 적극적 당 활동 참여로 상쇄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결론을 내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그와 반대의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방적 성명 발표와 이에 따른 문제 제기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기보다는 골이 패이고, 당의 성격 및 방향에 대한 의견들이 대립적으로 날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침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저들’의 단합된 힘에 의해 좌절을 겪은 입장에서, 한 목소리를 내어 승리한 ‘저들’의 모습과 상반되게 분리된 우리의 모습을 봐야만 하는 제 마음은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합니다.

수천의 당원에게는 수천의 진보가

교육감 선거 이후에 지인과의 사담 자리에서 ‘저들’의 대단한 단합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왜 항상 수구 보수 세력은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진보 세력은 이리도 분리되는 걸까, 라는 질문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그들은 가시적인 돈과 권력을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상을 쫓고 있잖아. 이상의 모습은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고, 같은 이상이라 하더라도 가는 방법은 모두에게 다를 수 있잖아. 그래서 아닐까?”

많은 이들이 ‘진보’의 기치 아래 모였습니다. 수천의 당원이 있기에 수천의 진보도 있겠죠. 어떤 이에게는 사회주의적 이상향 추구라는 크고 거시적인 진보 목표가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개발 논리로 훼손되는 동네 뒷산을 지키고자 하는 지역적이고 상대적으로 미시적인 진보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각각의 소중한 목소리에 경중을 두어 차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차별은 생활 진보를 주창한 진보신당의 기치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는 지도부도 ‘진성’ 당원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하고 찾아온 진보신당의 모습은 모든 진보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서로에의 이해와 긍정, 그리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조율과 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척박한 나라에서 그 동안 민주화 운동을, 노동 운동을, 진보 운동을 해오신 분들을 존경하며, 감사하고 또 항상 그 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8년 이 땅에서 기존 ‘운동’의 방법론은 힘을 잃어 보입니다. 94학번이었던 저는 ‘운동권’ 학생회 헤게모니의 몰락을 지켜봤습니다.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의 희망을 보기도 했지만, 또한 참패도 지켜보았습니다.

항상 문제는 올해의 키워드로 떠오른 ‘소통’의 문제였습니다. 90년대의 학생회가 그러했고, 작년의 민노당이 그러했죠. 아무리 좋은 이념과 이상이라 하더라도 당대의 대중과 호흡하지 못한다면, 화석화된 공룡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진’의 성명도 그러해 보입니다. 70%가 넘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진의 성명에는 이들과의 소통이 없었고, 돌연 통보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및 민주적 결정을 이야기한 성명 내용과는 달리 당 내에서조차 공론화되지 않은 문제를 조직 전체가 가야 할 방향으로 일방적 선언을 해버렸고, 함께 해야 할 다수의 동지를 위험한 우파로 매도하였습니다.

이는 소수의 ‘깨인 자’들이 앞장서서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는 ‘낡은 운동 방법’으로 보였으며, 결국 많은 당원들의 반발을 일으키는 결과를 이끌었습니다. 저는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반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회주의적 가치에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보신당의 방향은 특정 단체가 규정하는 것이 아닌 모든 당원간의 공감대 형성과 평등한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해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 이야기했듯이 모두가 생각하는 진보의 모습은 각기 다를 것입니다.

70% 당원에게 전진의 성명은 ‘통보’

더욱이 상당수의 신규 당원들은 정치학이나 정치 철학, 사회학 전공자들이 아니며, 그렇기에 기존의 운동 주체들이 보기엔 배경 지식이 미천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서 그들을 어중이 떠중이 정도로 생각하거나 사회주의 혁명 투사로의 의식화 교육이 필요한 대상 정도로만 본다면 소통은 무너질 것이고, 평등 및 연대의 가치를 스스로 깨어버리는 결과를 맞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정당보다도 시민의 많은 지지를 이끌어낸 진보적 촛불 운동은 ‘평범한’ 학생의 손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기존의 형태로 의식화 되지 않은’ 여성 시민들에 의해 가장 아름답게 꽃피워졌습니다.

   
 ▲ 2005년 전진정치대회(사진=전진)

기존 운동 세력에의 인정 및 존경 역시 필요합니다. 온갖 핍박 속에서 이어온 이 땅의 진보입니다. 압도적인 권력에 저항해온 우리나라의 진보 운동은 엄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역시 이 나라의 특수한 상황에 의해 의미가 왜곡되고, 객관적으로 해석되지 못하였으며, ‘불온한’ 어감 만이 낙인 지워져야 했습니다.

기존 한국 사회에서 씌워져야 했던 ‘붉은 색안경’은 당 내부에서라도 벗고 서로를 대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자체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단어 자체에 흥분하기보다, 신자유주의 자본 사회를 대체할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적 가치들에 대해 민주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와 장이 만들어 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다수가 원하지 않으니 너희는 해체하라는 식의 폭력보다는 서로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서로 양보하고 함께 목소리를 조율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또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학습 및 어울림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 좌담회에서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터’로서의 진보신당을 이야기했었습니다. 논다는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딴따라나 경박한 사람 정도의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실제로 기사 댓글에 그런 글이 달리기도 했죠), 함께 가는 그 길이 즐겁고 함께 함 자체가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곳이었으면 하는 희망에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었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들었습니다. 촛불은 힘듦 가운데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었기에 다수의 참여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분들이 힘들게 노력하셨습니다. 이제는 어려운 길이더라도 경직된 이들은 그 경직을 조금 풀고, 힘을 넣을 이들은 조금 더 넣어 가면서 그 세기를 조율하여 여러 목소리지만 하나로 어우러지는 즐거운 합창을 듣고 싶습니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오래오래 널리 울려 퍼지는 합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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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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