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선거 정당 배제 진보에겐 '독'
        2008년 08월 01일 06: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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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김종률 의원(민주당)은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개정법안을 제출했다. 김의원의 개정안에는 현행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되돌리고 여성선거구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에 대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어 국회가 정상화 되면 이른 시일 안에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보면 야당의원이 정치관련 법률 개정안을 내고 여당이 이의제기 없이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 뇌물제공 혐의로 수사 중인 김귀환 서울시의장(사진=서울시의회)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연이어 터진 당 소속 광역의원들의 비리 파문에 쏠린 시선을 엉뚱한 기초자치체와 법제도 문제로 돌리려는 계산이다. 그러나 여당의 처지에서 먼저 나서서 물타기를 하지는 못하고 있는데 야당의원이 먼저 개정안 내준 것이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하다.

    관련 시민사회단체도 환영하고 있다. 오래 동안 기초단체장과 의원의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해온 만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당공천제가 폐지된다고 지방의회의 고질적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정당공천제로 인해 지방의원의 비리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이번에 적발된 비리문제들은 기초자치체 선거에 정당공천제가 없던 지난 1대~4대 선거 때도 존재했다.

    여야와 시민사회단체의 주장과 달리 기초자치선거의 정당공천제 폐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정당공천이 문제의 원인 아니다

    우선 기초의원과 단체장 후보에 정당공천을 도입한 것이 특정 정당이 지방자치를 독식한 결과의 원인이 아니다. 그런 주장이 성립하려면 정당공천 이전에는 다양한 세력들이 의회에 진출했었는데 정당 공천 때문에 불가능해졌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시민단체의 설명처럼 정당공천이 도입된 이후 무소속 시민후보의 당선이 예전에 비해 어려워진 것은 확인된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의원들이 채운 만큼 큰 틀의 변화는 없다.

    오히려 기초의원들이 한나라당 소속(호남의 경우 민주당)임이 확인되기 때문에 책임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게 됐다. 정당공천이 도입되기 이전에도 지방의원은 기존 보수정당의 지역 큰손들이 사실상 나눠가지는 자리였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무소속이다 보니 그들이 집단으로 저지르는 비리의 책임이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향하지는 못했다.

    또한 정당공천이 폐지된다고 해도 바로 다음 선거에 새로운 인물들이 당선되지 못한다는 것은 입법당사자들이나 시민단체 모두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정당배제의 분위기 속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인 진보정당 후보들만 영원히 소외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홍준호 전 구로구의원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지적했듯이 정당공천제는 기초의원들의 정치철새 행위를 사실상 중단시켰다는 성과도 있다. 이전의 기초의원들은 다음 선거에서의 지원이나 의장선거에서의 지지 등을 조건으로 당적을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금품이 오고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초단체장들은 정당소속이라 시민들을 위한 행정에 전념하지 못하니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본심은 무소속 구청장, 시장, 군수여야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야를 아우르는 공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상급선거 출마를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않는 기초단체장이 많아 문제인데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이들의 철새 행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결국 기초자치 단체장과 기초의회의 정당공천 폐지는 꼬이고 꼬인 지방자치의 실타래를 푸는 출발이 아니라 원인을 덮은 채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선거제도를 근본부터 개혁해야

    정당공천제에 쏟아진 가장 큰 비판은 의회선거가 단체장 선거에 맞물려 유권자들이 큰 문제의식 없이 단체장 후보의 기호와 묶어서 선택한다는 것이다. 현재 기초의회가 한나라당판이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 원인은 유권자들이 지방의원 후보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이 폐지되더라도 유권자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단체장과 같은 기호의 후보, 기호가 없다면 같은 위치의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다.

    차라리 정당공천을 하면 한나라당 후보를 찍기 싫은 유권자는 피해갈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셈이다.

    또한 같은 문제가 여전히 광역의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정당들은 기초의회와 같은 논리, 잣대를 광역자치체에 들이대지 않는다. 광역단체장/의원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광역자치체에 대해서는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이 문제는 광역자치체 선거와 기초자치체 선거를 분리하거나, 단체장 선거와 자치의회 선거를 분리시킴으로서 해결해야 한다. 선거일도 전국 동시가 아니라 광역단위별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광역단체장/의원, 기초단체장/의원 선거를 묶어서 실시하는 현행 전국동시선거야말로 유권자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다음은 선출방식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개정안은 소선거구제로 회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외양만 정당소속에서 무소속으로 바꿀 뿐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지역조직의 큰손, 그 외의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지역조직의 실력자의 당선을 보장하는 제도에 불과하다.

    이래서는 토호들이 장악하는 지방의회를 개혁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개혁적인 무소속 시민후보의 당선도 차단된다. 진보정당 출신의 후보들의 당선은 말할 것도 없다.

       
     ▲ 사진=공의정치실천연대
     

    비례대표보다 대선거구제가 효과적

    광역의회는 무조건 비례대표를 50%선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고민해야겠지만 기초의회의 경우 비례대표는 해법이 못된다. 현재 전국 230개 기초의회의 의원 총수는 약 2,888명이다. 서울 강남구의회처럼 20명이 넘는 곳도 있지만 평균 12.5명에 불과하다. 10명 안팎의 의원정수에 비례대표를 도입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완벽한 해법은 아니지만 일본식 대선거구제는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일본의 기초의회는 기초자치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가령 A시의 시의회 의원정수가 18명이면 30여명의 후보가 출마하고 선거결과 1등부터 18등까지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얼핏 보면 황당해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제도보다 이점이 많다. 우선 유권자 입장에서 그 많은 후보자를 어떻게 파악해 한명이 선택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유권자는 선거 이전부터 지역활동을 통해 얼굴을 익힌 후보자를 미리 점찍고 있기 때문에 혼란은 없다.

    즉 이권이 됐건, 시민운동이 됐건 지역사회에 뿌리박고 주민들과 생활하면서 일정적인 지지집단을 형성한 후보만이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출마한 뜨내기 후보는 선거운동기간의 활동만으로 당선될 수 없다. 특정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본공산당은 중앙정치에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는 우리의 광역의원에 해당하는 도도부현의원 122명을 포함해 3,088명의 지방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25곳의 기초자치체에서는 여당의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공산당은 소수파정당이지만 결집력이 강한 당조직을 통해 지역문제에 지속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기초의회에 1명 이상의 의원을 선출시키고 있다.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일본공산당이 동반몰락하지 않은 힘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지역기반이다. 선거제도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일본식 대선거구제가 우리 선거에 도입되면 전국의 모든 기초의회에 1명 이상의 진보정당 의원이 당선될 것이다. 일본식 제도가 지방의회에 대한 토호의 장악 문제까지 해결해 주지 못하겠지만 그것은 진보정치 세력이 지방의회에 진출한 후 실천으로 해결할 과제다.

    또한 대선거구제는 진보정당 소속이 아니더라도 환경운동이나, 협동조합 등 지역사회밀착형 시민운동을 전개한 인사가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지방자치를 보다 ‘정치화’해야

    기존 정당과 현역 기초단체장/의원들은 정치논리의 개입이 지방자치를 왜곡하는 주된 요인이라며 ‘정치색’을 벗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도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방자치를 변질시키는 원인을 은폐하고 지방권력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복선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그런 맥락에서 제기됐다. 여야의 시각차도 없다.

    지방자치를 개혁하려면 오히려 ‘정치색’이 강화되어야 한다.

    보수정당이나 진보정당 모두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기 위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강조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직업적인 운동가가 아닌 다음에는 일반 시민이 지방행정과 의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감시하고 발언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주민운동도 현안별로 조직되지 일상적인 지방자치감시운동은 활성화돼 있지 않다.

    결국 시민이 지방자치에 대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현재로서는 정당을 통한 개입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것도 지방자치를 정치와 분리시킬 때가 아니라 정치성을 강화시킬 때 가능하다.

    지방자치가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임을 드러내고 그것이 시민들의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려야 시민들도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 그 이후에 주민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나 감시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정당법의 개정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정당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1천명이상의 당원을 가진 5개광역시도당이 있어야 한다. 최소조건이다. 정당의 난립을 막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문화를 개혁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그러나 역으로 지역정당(local party)의 출현을 가로막고 있다.

    예를 들어 4년 전 부안주민들이 방사능폐기물처리장에 반대하며 싸울 때 자신들의 의사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지역반핵평화당’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주민들의 정치적 조직화를 가로막는 법은 악법이며 결사의 자유를 표방한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지방자치 정상화의 가장 핵심적인 열쇠라면 자발성에 걸림돌이 되는 제도와 법은 제거돼야 한다. 주민들의 요구에 직접적으로 기반한 지역정당, 혹은 풀뿌리 정당을 통해 지방자치의 새로운 전망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

    보수정당들도 입으로는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보정당들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노동당, 사회당, 진보신당 모두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 지역의 가치, 지역에서 중앙으로의 포위 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강조는 지방자치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포석, 또는 원론적 언급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2년 전 지방선거에 관한 기사에서 지방자치는 "진보정당 스스로 포기한 영역"이라고 쓴 적이 있다. 지난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진보진영은 중앙차원이건 지역차원이건 정치개혁을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그 결과 지배정당들이 설정한 규칙에 군소리 없이 따라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현실적으로 막기 어렵다. 하지만 진보진영이 보수정당들의 법개정 놀음에 구경꾼 노릇만할 게 아니라 선출제도와 관련 법규의 개정을 역으로 제안하고 사회의제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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