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 논쟁 중요하다, 제대로 하자
    2008년 07월 31일 03:02 오후

Print Friendly

진보신당 사이트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전진 관련’ 논쟁은 제대로 논점이 잡히고, 정돈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논쟁은 민주노동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이후 진보신당의 구성원들 사이에 당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왼쪽’을 찾아 떨어져나와 진보신당에 가입한 당원들과,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분당 이후 신규 당원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생각의 차이가 있다. 물론 전자와 후자를 일반화시켜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고 사실과도 맞지 않다. 하지만 일정한 경향성으로 대표되는 흐름은 감지되고 있다.

이번 논쟁도-제대로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 글은 최근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를 빗대, 한나라당은 부자들의 계급정당인데 진보신당은 계급을 경원시하는 국민정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일정한 우려를 깔고 있다.

진보신당 내부의 다양성과 소통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해 격의 없으나 ‘격조’가 있는 논쟁과 토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성과 현실성 그리고 실천을 통해서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야 하는 원외정당으로서 소모적이거나 관념적인 논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이 필요한 토론과 논쟁을 위해 작지만 좋은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풍경 1: 어느 진보정당의 이야기

진보신당 사이트의 당원게시판은 요즘 ‘전진’ 논란으로 뜨겁다.

지난 23일 당내 의견그룹인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약칭 전진)’는 ‘총노선’이라는 문건을 진보신당 사이트의 ‘쟁점과 토론’이라는 게시판에 공개했다. 총노선은 정치조직으로서 전진이 정당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전략과 과제를 담은 강령적 성격의 문서다.

운동권 특유의 딱딱한 어조로 작성된 이 문건은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해 사회주의의 내용을 혁신할 것을 전제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진의 임무로 ▲노동운동 고립 극복과 실질적 계급형성 ▲진보정당운동 정체성 확립 ▲사회운동 영역에의 참여 ▲지역에서 변혁운동의 진지 구축 등을 들고 있다.

   
  ▲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의 쟁점과토론방. 전진 관련 논의로 뜨겁다.
 

이글이 게시된 후 많은 당원들이 ‘전진이 뭐하는 곳인가’, ‘당을 사회주의화하려는 음모’, ‘구시대의 낡은 정치’, ‘패권적 분파의 패해’ 등을 지적하며 반발했다. 더 나아가 전진의 해산을 요구하는 주장까지 올라왔다.

전진 측에서는 25일 뒤늦게 총노선의 결정 과정을 담은 글을 올려 배경을 설명했지만 해당 문건에 대한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기에 28일 진중권 교수가 실명으로 전진의 해체를 요구하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진교수는 특유의 독설화법으로 전진을 시대착오적 집단으로 규정하고 그 존재가 당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논점은 단일하지 않다. 진행되고 있는 모습도 토론이라기보다는 요구와 주장만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하기 이전 당내에서 전진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고, 배경설명 없이 문건만 게시판에 올리는 불친절함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비판은 문건이 노출한 전진의 성향에 집중돼 있다.

전진은 ‘빨간색 노출증 환자’인가

   
 ▲ 2006년 전진 정치대회 (사진=레디앙)

노회찬 공동대표는 진보신당 당원 중 민주노동당 출신과 그렇지 않은 당원의 비율의 3대 7이라고 밝혔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전진 총노선의 ‘노선’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당원들은 주로 70%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주장은 ‘사회주의는 이미 폐기된 전략’, ‘진보신당은 사회주의 정당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면 대중과 멀어 진다’, ‘변혁과 노동운동을 강조하는 것은 민주노동당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전진과 관련해서는 ‘당내 분파는 도움이 안 된다’, ‘전진은 당 안의 당을 지향한다’, ‘조직은 해산하고 오직 개인으로서만 발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모체는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계승’한다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이 훼손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탈당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창당 4개월 만에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내에 광범위하게 존재함이 확인된 것이다.

일례로 전진에서 총노선을 게시하기 몇 시간 전에 한 당원은 같은 게시판에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전진은 이런 당원들에게 사회주의의 ‘이상론’과 ‘원칙론’을 넘어서는 구체적 실천을 선언했다가 역풍을 맞고 있다.

지난 총선 당시 진보신당의 지역구 출마자 34명중 17명이 전진의 전현직 회원이었다. 현재도 각 지역조직과 중앙당의 상근자 상당수가 전진의 회원이다. 전진 입장에서는 ‘너희들은 어디서 나타난 음모집단’이냐는 당원들의 질타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운전대 오른쪽으로 꺾고 좌회전하기

하지만 전진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해체요구’가 아니라 "사회주의, 반자본주의, 변혁, 계급, 노동운동"과 같은 개념들을 ‘구시대 유물’, ‘청산대상’으로 규정하는 시각이다.

이처럼 일반당원들의 공세가 전진 자체가 아니라 사회주의 일반의 폐기로 확산되자 29일부터는 이를 우려하는 당원들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진에 동의하지 않지만 전진에 해체를 요구하거나 문건을 공개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은 당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전진 때리기가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한 공세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현재 게시판의 상황은 토론이라기보다는 전진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공세와 격분한 전진 회원들 사이의 설전에 가깝다. 전진 집행위원장 출신의 한석호 당원은 실명으로 올린 글에서 교육감 선거라도 마무리하고 나서 제대로 된 토론을 하자고 호소했다.

전진을 둘러싼 논란이 해프닝으로 끝날지 진보신당의 진로와 연계된 본격적인 토론으로 확산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보다 더 왼쪽으로 가자며 탈당한 사람들과 총선 후 입당한 당원들 간에 ‘왼쪽’에 대한 해석이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진보신당이 한국사회 어디에 기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확인됐다. 모두들 대중적 노선을 이야기하지만 진중권 교수를 비롯한 일부 당원들은 전진의 계급에 대한 집착(?)은 대중과 멀어지는 길이라고 말한다. 전진에 비판적인 댓글에서 자주 언급됐던 내용 중의 하나는 전진이 촛불대중을 보고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것이다.

풍경 2: 어떤 선거의 이야기

서울시 교육감을 시민직선으로 뽑는 첫 선거가 마무리됐다. 시민사회진영이 지원한 주경복 후보와 현 교육감 공정택 후보가 접전을 벌인 끝에 공후보가 당선됐다.

촛불의 첫 번째 정치적 성과가 되기를 기대하며 주경복 후보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결과를 보고 허탈해 했다. 특히 서울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우위를 지켰음에도 강남의 결집 앞에서 무너진 결과를 보며 이기고도 졌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표1 서울시 교육감 선거 결과 (중앙선관위 자료)
 

서울교육감 선거는 ‘계급투표’의 위력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광범위하게 결집시킨다는 주후보측 전략과 전교조 대 반전교조의 구도, 다시 말해 보수와 진보의 싸움으로 만든다는 공후보측 전략 중에 효과를 발휘한 것은 공후보 진영의 선택이었다.

두 후보는 강남, 서초, 송파, 강동 4개구를 제외한 21개 구에서 큰 차이 없이 표를 나눠 가졌다. 그러나 앞서 말한 강남4구에서 공정택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전체 득표에서 주후보가 밀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선과 총선에서 반복되던 강남의 계급 결집이 또다시 벌어졌다.

   
  ▲ 표2 공정택 후보 상위득표 4개 자치구 결과 (중앙선관위 자료)
 

사실상 서울시 교육감이 아니라 8학군 교육감이 선출된 것이다. 선거부정은 없었다. 아무도 룰을 어기지 않았다. 강남의 부유한 계급은 내적 단결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냈다. 반면 서울의 4분의 3에 걸쳐 살고 있는 비 강남시민들은 공후보와 주후보를 놓고 갈라졌다. 그곳에 계급은 없었다.

   
  ▲ 표3 주경복 후보 상위득표 4개 자치구 결과 (중앙선관위 자료)
 

공정택 교육감은 강남 8학군만을 위한 교육정책에 매진할 것이다. 그들이 그를 교육감으로 만들었고 다음에도 그를 교육감이든 국회의원이든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굳은 연대의 쇠사슬을 촛불로 녹여 끊으려 했던 사람들이 순진한 것인지도 모른다.

진보여, 계급에 이별을 고하라?

서울 교육감 선거 결과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총선과 대선 때마다 되풀이 되는 한국의 역계급투표가 반복됐다. 다만 이번엔 자기네 동네만 지키는 수세적 성격이 아니라 계급적 결집을 통해 선거결과를 뒤집을 만큼 위력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가진 자들의 단결은 이처럼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에 맞서야 할 진보정당 내부에서는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낡은 전략이라고 보거나 불온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고 있다.

부자들의 계급투표가 위력적인 것은 반대편에 이에 대항하는 계급투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이해관계를 통해 얽혀있는 부자들의 연대에 맞서서 뭉치기보다는 지배계급의 분할지배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그래서 부자들은 한나라당을 찍고 노동자도 한나라당을 찍는 기현상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 밀집도시인 울산이 진보정치의 아성이자 동시에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진보정당이 고전적인 계급전략을 폐기하고 중간계급의 급진성에서 자신의 존재기반을 찾는 것이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선거전략과 관련해서라면, 확실하게 표가 되지 않을 사람들은 제외하고, 지지해줄 가능성이 높은 집단에 매달리는 것이 현명하다. 예를 들어 대도시 중산층이나 사무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의 가장 중요한 표적집단일 것이다. 문제는 확실히 표가 되지 않을 사람으로 분류되는 집단의 구성이다. 그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도시빈민, 다수의 농민들이다.

진보신당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쟁점은 결국 이것이다. 당이 보다 세련된, 유연한, 명랑한 진보를 구현하기 위해서 낡은 계급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진보정당은 여전히 그들이 복무해야 할 역사적 임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진보신당, 좌파는 좌파인데 그런 좌파는 아닌 좌파?

전진의 문건 공개로 촉발된 논란은 그래서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다. 제2창당을 선언한 진보신당 앞에 시급한 선결과제가 떨어진 셈이다. 당이 발 딛고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그 땅위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철학의 명제는 예외가 없다. 진보신당의 지지가 주로 대도시와 인구밀집지역에서 나온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도시 외곽과 노동자밀집지역에서 진보신당의 지지는 거의 없거나 민주노동당에 뒤지고 있다.

진보신당의 선택은 몸이 가는 대로 마음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거나 어렵더라도 옳다고 믿는 길로 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땅의 비정규직은 개별화된 노동자로서 존재한다. 그들의 다수는 한나라당의 영향력 안에 놓여있다. 비정규직이 대거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의식이 한순간에 바뀌기는 어렵다. 원외정당인 진보신당이 법제도를 고쳐 비정규직의 이익을 옹호하기도 매우 어렵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비정규직의 입장에서도 실질적인 도움이 없기 때문에, 아니 진보정당이 미워서라도 진보정당을 찍지 않을 것이다.

전진은 이에 관해 총노선에서 "광범위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사업을 통해 노동운동의 고립을 극복하고 실질적으로 계급형성을 이루는 일에 (전진이) 앞장선다"고 밝혔다. 다수의 당원들이 지적한 것처럼 앞뒤 설명 자르고 ‘그래야 한다’고 올린 전진의 무성의함은 지적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최소한 전진은 진보신당이 어디에 발 딛고 서있어야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논쟁은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야지 전진이 마음에 든다, 들지 않는다로 발전하는 것은 진보신당을 위해서도, 이 땅의 진보세력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아가 사회적 다양성을 옹호하면서 당내 다양성은 용인하지 못하는 진보의 자기모순도 반성해야 한다. 총노선의 내용은 도외시하고 전진에 대해 쌓인 감정을 토대로 해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주장과 요구가 궁극적으로 전진이라는 조직이 아니라 전진에 가입한 진보신당 당원 개인의 사상과 신념을 부정하고 전향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계급에 작별을 고할 시점인가

공동이익뿐만 아니라 지연, 학연, 혈연, 혼인관계, 상호투자, 종교 등 노동자들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복잡하게 서로 얽혀있는 지배계급의 연대는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명박의 최후 방어막은 물대포도 컨테이너 바리케이드도 아닌 그 부자들의 스크럼이다.

그 스크럼 앞에서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 시내 4개 자치구의 단결로 17개 자치구 주민의 의사를 뒤집어버리는 힘 앞에서 개인으로 발언하는 것이 과연 진보의 미덕일까. 웹2.0시대, 네티즌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푸른 작업복과 넥타이의 물결은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할까.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잊지 말자. 진보가 계급을 향해 눈물어린 이별의 손수건을 흔들 때에도, 아이들은 대치동의 학원가로 실려가며 엘리트가 되건 비정규직이 되건 미래에도 한나라당을 찍을 계급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