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식 '동지'들에게 관을 보낸 노동자들
        2008년 07월 30일 09: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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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은성 기자
     

    "너무나도 간절하게 살고 싶어 죽음의 결의를 한 것이다.  … 너무나도 간절히 살고 싶어 지금 이 현실을  멈추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가 없다."

    금속노조 기륭분회 윤종희 조합원은 연신 입술을 힘주어 물었지만 끝내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조합원들은 끝장 단식 50일을 맞아 기륭 앞 결의대회를 열고 단식하는 동료에게 ‘관’을 올려보내고 있었다.  

    단식 50일째, 차라리 여기서 장례식을 

    10명이 집단으로 시작한 끝장 단식은 30일 현재 건강 상태 등으로 인해 3명만이 마지막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 중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옥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에게는 건조물 침해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이다.

    얇은 텐트와 철조망, 숨막히는 태양열과 정적이 감도는 기륭 옥상에 ‘관’이 올려졌다. 기륭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옥상 위에서 장례식을 치를지언정 절대 땅으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두 조합원의 결의를 담은 상징의식이었다.

    다른 동료들이 관을 옥상 위로 손수 올려주는 참혹한 상황에 이미영 조합원은 커다란 앰프 뒤에 숨어 등을 돌린 채 오열했다. 지난 10일 국회를 찾아 "우리가 죽어도 세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 같아 너무 무섭다"고 울먹이던 오석순 조합원은 이같은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단식 도중 심장에 이상이 생겨 병원으로 실려간 상태다. 

    옥상 위에 앉아 힘없이 팔을 드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조합원의 핏기 가신 얼굴에서도 소리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른 동료들은 관을 올리며 "죽음의 숫자 50일에 그저 관이나 올리고 있는 우리의 무력함에 눈물이 나지만 이렇게라도 살고 싶은 것이 우리의 염원"이라며, "관을 올리는 것은 동지의 몸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관에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담아 장사지내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에 비정규직 고통을 담아 장사지내고 싶다

    이들은 단식하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일분 일초가 아까워 피가 마른다고 했다. 밥을 먹는 순간에도 세 명의 조합원들을 죽게 만드는 파렴치범이 된 것 같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단식을 그만두게 만들고 싶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이들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미 살아있는 삶이 아니기에 죽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경찰 침탈에 대비한 연대를 거듭 호소했다.

    ‘관’이 올려진 이날 결의대회는 시종일관 침울하고 무거웠다. 어느 집회장보다도 웃음 소리와 힘이 넘쳤던 기륭 특유의 명랑한 집회 분위기가  침묵과 울음 속에 잠겨버렸다.

       
      ▲사진=김은성 기자
     

    이대호 GM 대우 비정규직 지회장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했는데, 바로 죽음을 앞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닥쳤다"며, "교섭을 해태하는 기륭, 이를 방조하는 한나라당과 노동청은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 없다. 관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 우리 비정규직의 현실 그 자체"라고 통탄했다.

    그는 "저 역시 할 수 있는 게 많지않아 자괴감으로 힘들지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끝까지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경인교대 최문선 부총학생회장도 "어머니와 이모들이 굶는게 기륭 자본 때문이 아니라 저의 무관심과 안일한 사고 때문인 것 같아 힘들다"면서, "앞으로 승리하는 그날까지 더 연대하고 끈끈하게 열심히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이정희 의원 "홍준표, 교섭결렬 유도"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이날 비록 현장을 찾지는 못했지만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를 규탄하고 문제해결 의지를 촉구했다.

    이 의원은 "홍준표 원내대표와 사측이 들고온 합의서는 의도적인 교섭결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회사로부터 버림받고 노동청으로부터 무시당하며 경찰한테 발로 채인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살려달라’고 집권여당 원내대표실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것은 또 몽둥이였다"고 개탄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이해삼 민노당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장, GM대우 비정규직 지회, 이랜드 노조 등 장기투쟁 사업장 조합원 및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동시에 결의대회를 하는 시각 기륭에서는  평소와 달리  큰 자물쇠로 다시 한번 문을 걸어 잠그고, 전경차와 전경들이 무장한 채 기륭 대문을 사수토록 했다. 

    한편, 기륭이 교섭을 미루자 노조원들은 다시 한번 한나라당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그 역시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은 기륭 투쟁 1072일, 끝장 농성 50일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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