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중의 집, 여름 '농활'을 가다
        2008년 08월 20일 12: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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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를 뽑거나 자빠뜨리기에 한창인 농활대원들. 이들 중 한 명은 벼를 파라고 생각하고, 우리나라 파농사의 규모에 내심 놀랐다고 했다. (사진=고세진 기자)

    서울 마포의 <민중의집>은 지난 8월 15일 연휴를 맞아 여름농활에 갔다. 대추나무에 대고 “넌 누구니?”라고 묻는 홍익대 학생들과, 논에 들어가 잡풀 대신 태연하게 벼를 뽑아 던지는 30~40대 회원들이 찾아간 곳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농활 참가자들은 나이도 직업도 모든 것이 서로 달랐지만, 서툰 일솜씨와 ‘형편없는’ 체력은 똑같았다. 

    농활을 기획한 <민중의집> 안성민 사무국장은 “이번 농활은 민중의집과 원주생협이 인연을 맺는다는 사실에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원주생협과 같은 지역별 생협과의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이번 농활의 취지를 설명했다.

    지역생협과 연대 모색

    호저면은 환경농업으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다. 전체 가구의 70% 이상이 환경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활대가 찾아갔을 때는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었다. 도착한 날은 여장을 풀고 마을 어른들께 간단히 인사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된 16일 새벽. 복숭아 밭으로 이동. 가공하지 않고 바로 박스에 담겨 팔리는 복숭아는 따는 게 무척 까다롭다. 복숭아를 쥐는 방법부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자칫 힘을 잘못 주면 금방 꺼멓게 골아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아예 건들지도 못하게 한다. 하지만 그 날의 복숭아는 딱딱한 품종이라 농활대도 직접 복숭아를 딸 수 있었다.

    옆에서 복숭아 따는 방법을 알려준 이승영(47)씨는 18년째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다. 복숭아 농사로만 보면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이씨는 매일 아침 9시에 복숭아 밭이 아니라 인근 도축장으로 출근한다. 부인도 같은 도축장으로 출근하는데, 이씨는 “대학 다니는 애들이 셋이나 되는데 별 수 있나”라며 엷게 웃어 보였다.

       
      ▲ 사진=민중의집

    마을의 사정은 다 비슷비슷했다. 남편들은 대개 농사를 짓고, 부인들은 시내 식당이나 골프장, 톨게이트 등으로 부업을 나간다. 노인들은 주로 집안 일을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데,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 곳 노인들도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다.

    오후에는 여름 농활의 공통필수과목인 피를 뽑으러 논으로 들어갔다. 피 대신 벼를 뽑거나, 벼를 쓰러뜨리다 보니 어느덧 하루는 저물었다.

    남편은 논밭으로, 부인은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원주의 생협운동과 환경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원주는 13개의 생협단체가 있다. 먹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는 물론이고 교육, 육아, 금융, 의료, 노인, 장애인 문제 등도 생협의 형태로 풀어나가고 있다.

    원주협동조합운동협의회 조세훈 사무국장은 “왠만한 건 다 협동조합으로 시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만큼 원주는 생협운동의 이해도 높고 활동도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다.

    원주는 인구 30만 명의 중소도시다. 그 중 6만 명 정도가 생협회원들로 추산되고 있다. 5명 중에 1명은 생협으로 연결된 것이다. 조 사무국장은 “원주가 환경농업과 생협운동으로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시도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협동조합운동의 성과를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세훈 사무국장은 또 “진보신당 당원이라 <민중의집>을 알고 있었다”면서 “마포 지역의 시도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섭 <민중의집> 공동대표는 “지금은 마포 <민중의집>이 1호점이지만, 곧 원주에도 <민중의집>이 생겨 원주생협과 함께 원주지역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원주에도 <민중의 집> 생길 것

    마지막 날인 17일.
    복숭아 밭에서 만난 원혁정(42세. 원주생협 이사)씨는 원주로 귀농한지 10년이 넘었다. IMF사태 직후부터 환경농업을 시작했는데, 서툰 농사일보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원혁정 이사(사진 가운데)와 안성민 민중의집 사무국장(오른쪽) (사진=민중의집)

    마을 사람들은 원씨의 농업방식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내려온 별종으로 취급당했고 급기야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원씨는 벌레 먹은 복숭아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농약은 100이면 100을 다 가져가려는 인간의 욕심”이라며 “스스로 돈이 별 필요없는 삶의 환경을 디자인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웃었다.

    김혜란(33)씨는 <민중의집> 회원도 아니고, 홍익대와도 아무런 연고없이 무작정 농활에 따라 나선 참가자 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평소 생협에 관심이 많았는데 기대 이상의 체험을 하게 되어 무척 만족스럽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라고, 다음 농활에도 꼭 함께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란씨는 서울로 돌아온 뒤 <민중의집>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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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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