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능 정권, 망신 외교, 부끄러운 역사
        2008년 07월 28일 07: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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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F에 참석하고 있는 유명환 외교(왼쪽).
     

    이명박 정부가 또 사고를 쳤다. 남한과 북한의 외교전쟁이 ARF(아세안 지역안보포럼) 외무장관회담에서 10.4남북정상선언과 금강산 피살사건 관련 ARF 1차 의장성명을 취소하고, 관련 구절을 모두 빼는 방식의 2차 ARF 의장성명을 발표토록 하는 일을 만들어냈다.

    이명박 정부 대형사고

    14년 ARF 역사상 초유의 사태이며, 남과 북이 공동으로 망신외교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번 일은 특히 사태를 주도했던 이명박 정부 외교라인의 무능력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는 어렵사리 만들어져가고 있는 동아시아 안보외교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ARF는 동남아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동북아 3국, 미국, 호주, 캐나다, 인도, EU까지 참여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정부간 안보협의체다. 94년이래 14년  동안 지속되면서 재난구조, 신뢰구축, 평화유지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고, 핵비확산문제 등에 있어서도 많은 토론의 성과를 만들어 왔다. 남한은 출범때부터 참가했고, 북한은 2000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다.

    ARF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동북아, 동남아, 환태평양 지역을 아우르는 국제적인 논의들이 많은 참가국들에 비해 논의의 구체성이나 실천력을 담보하는데 한계를 보이는데 반해, 동아시아 다자안보논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ARF 외무장관회담 도중에 비공식적으로나마 북핵관련 6자외무장관회담이 열린 것도 바로 그런 ARF의 특성을 잘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2008년 ARF 외무장관회담은 남한과 북한의 외교전으로 얼룩졌고, 급기야 의장성명이 발표된 뒤 다시 수정되는 외교사에 전례없는 일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피살사건을 성급하게 국제문제화시킨 점을 지적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ARF라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이고 전략적 의미를 무시했다. 동아시아 안보대화의 소중한 성과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그 동안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남한측의 주도적 노력이 빛을 발해왔던 역사적 회담이 바로 ARF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바로 그 점을 무시했다.

    문제 풀지 못하고 더 꼬이게

    동남아 국가들과의 오랜 대화의 역사도 무시했다. 남과 북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풀어가야 할 금강산 피살사건 문제를 다자간 외교공간에서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함으로써 남북한간의 냉전적 외교전쟁이 부활하는데 기여했다.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더 꼬이게 만드는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자승자박 외교이기 때문이다.

    금강산 사건은 분명 북한측의 잘못이다. 남한 관광객이 설령 군사경계지역을 위반해서 접근했다 하더라도 총격으로 사살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과잉대응이다. 그것이 계획적으로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설령 우발적인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지난 10여년의 남북관계사에 비추어 볼 때 일어나서는 안될 사안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그것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물꼬를 틀수도 있지만, 심각한 대치상태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허둥지둥이었고, 우왕좌왕이었다.

    북한측이 잘못했는데도, 이를 풀어내지 못해 이명박 정부가 욕을 얻어먹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ARF에서의 국제화는 아니함만 못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과의 외교전에서 참패했고, 그래서 한국외교사의 참사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ARF 1차 의장성명 내용만 본다면 그런 지적도 틀린 것은 아니다.

    북한보다 한 수 아래

    성명에는 “장관들은 금강산 피살사건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고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했다”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금강산 피살사건을 설명하고, 남한이 원했던 ‘남북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구절은 빠져 있었다.

    반면 “장관들은 회담에서 작년 10월 남북정상회담과 그 결과물인 10.4선언을 주목했다. 10.4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는 문장은 북한측의 주장을 정확하게 반영하여 같은 항목으로 묶어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확실히 북한에 비해 외교적으로 한 수 아래임이 드러났다. 아니 한 수 아래 정도가 아니라 전략도 구상도 없는 ‘떼쓰기 외교’에 머물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전 정권의 축적물을 전면 부정해 버린다면 자신이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대책없는 역사부정은 결국 자승자박이거나, 외교적 대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국가적 이익을 다투는 외교의 역사에서는 정권의 차이를 최소화시키면서 국가적 연속성을 꾀하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이와 관련 10.4 정상회담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이중적 태도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대북정책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이회창 전한나라당 총재(현 자유선진당 총재)의 엄격한 상호주의를 비판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평화공영정책을 일부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뒤죽박죽 외교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회창과 김대중, 노무현을 뒤죽박죽 혼합시켜 논 것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원칙없이 휘둘린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식으로 대북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금강산 피살사건이 발생했던 날,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개원연설에서 ‘전면적인 대화제의’를 하면서 “10.4선언에 대해서도 어떻게 이행할지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ARF 외무장관회담에서는 10.4선언은 오로지 부정되고 거세되어야만 할 그 무엇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10.4선언과 금강산 피살사건을 잘 버무려 내면서 남북의 외교전이 되버린 ARF 회의를 남북의 새로운 합의가 시작되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계기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문제는 이후다. 이런 식의 전략없는 외교, 구상없는 우왕좌왕 정책은 결국 한반도와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만 하는 지금 이순간,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55년 정전체제의 미래가 달려 있는 북핵문제가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고, 한반도와 동북아에 새로운 질서가 싹틀 수 있는 그런 새로운 시작의 시기를 만들어야만 하는 지금, ‘악마들이 디테일 속’에 숨어 폭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을 막을 능력도 비전도 없는 정부가 이 순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이 비극적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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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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