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는 왜 '역사 전쟁'을 선포했나
        2008년 07월 25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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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 혹은 건국절?

    최근 정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며 ‘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 구성과 관련사업 추진을 지시해 문제시되고 있다. 이 사업은 관 주도인데다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뉴라이트 등 일부 움직임과 직결되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8.15는 우리에게는 ‘광복’ 혹은 ‘해방된 날’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이는 1945년 8.15이며, 1948년 8.15는 다른 의미이다. 48년은 남북한 분단정부가 가시화된 시점이며, 이를 법적으로 남북한이 정당화한 때다. 그래서 사람들도 1948년 8.15는 별로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특히 4.3 항쟁 피해자와 가족들, 해방 전후사를 통해 가족이 헤어진 사람들 등에게 1948년 건국과 그 시기는 ‘잊고 싶은 상실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기억이란 매우 선택적이다. 처음 건국 60년 사업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일부 뉴라이트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존재했지만, 하나의 문제 제기 이상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꾼다든지, 또 다른 ‘과거사 전쟁’을 예고하는 움직임, 관제 동원 움직임 등은 일련의 의혹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 지난 5월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우파 헤게모니와 건국 60년

    이처럼 건국 60년이 보수정치세력과 지식사회에 의해 ‘기억’으로 불러올려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먼저 1948년 제헌의회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좌파정권 10년’, ‘읽어버린 10년’이란 말을 사용하면서 10년간 지식사회와 정치적 세력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지적·도덕적 헤게모니를 빼앗겼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우파-분단정권의 기원인 48년 건국의 기억을 다시 불러올림으로써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되찾고자 한다.

    다음으로 이른바 386의 ‘삐뚤어진’ 역사관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정권교체 이후 각종 위원회를 통해 지난 군부 파시즘 시기 은폐된 역사의 규명, 희생자와 가해자의 진상규명 등이 부족하지만 진행되었다.

    이를 둘러싸고 가해자인 정부에 의해 진정한 의미의 진상 규명이 가능한가, 논쟁적인 사건들이 국가의 기억으로 전유되는 것은 아닌가 등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실제 보상 과정에서도 피해자나 관련자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기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신군부 같았던 이명박 인수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동안 망각과 침묵의 늪에 빠져있던 이들 기억을 불러온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와 뉴라이트론자들은 그간 10년의 과거사 논란은 좌파정권과 386세대의 ‘아비 죽이기’ 혹은 ‘왜곡된 국가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386 역사관의 ‘전면적인 수정’할 기치를 높이 들었다. 최근 발간된 <대안교과서>가 학술적 형태의 반응이라면, 건국 60년 사업은 ‘정부적 형태’의 조직화된 대응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건국 60년 사업은 현재적인 알리바이가 존재한다. 이명박 정권은 두 차례 선거를 통해 ‘좌파 정권 10년’, ‘잃어버린 10년’이 평가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대선 직후 인수위원회가 보인 마치 80년 ‘신군부’ 같은 태도를 비롯해서, 각급 행정기관에서 진행된 지난 시기 실시한 적이 없는 행정수반의 ‘국정철학 강연’, 이전 시기 공공기관 기관장에 대한 노골적인 사퇴 압력과 퇴진, 최근 불거지고 있는 한국방송공사 사장 강제 퇴진 논란 등이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5~6월의 촛불시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대중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한 것도 아니며, 다시 한국 사회를 10년 전으로 되돌리라고 이들을 지지한 것 역시 아니었다. 촛불시위와 지지층 이탈, 그리고 핵심 국책사업인 대운하 등이 당장 실시되기 어렵자, 보수세력은 방향을 다른 쪽으로 튼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사를 둘러싼 전면적인 공세이다.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역사 논쟁

    나는 기존 현대사 해석에 대해 뉴라이트가 재논의를 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닌 정치세력이나 지식인 집단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68혁명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40주년을 맞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자신과 다른 역사-해석을 일방적으로 ‘실패’ 혹은 ‘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들 보수세력은 그 누구보다도 열렬한 ‘시장주의자’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역사와 역사해석 역시 정당한 ‘경쟁’을 통해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경쟁의 정신’이 아닐까?

    만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민주적 공론장’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정당한 태도이다. 그러나 매우 불행히도 현 정부의 건국 60년 사업은 서로간의 차이를 용인(容認)하는 똘레랑스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 1948년 8월 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

    마녀사냥의 예고편

    이들은 ‘적과 아’라는 냉전적인 대립 구도 하에서 한쪽만의 역사 해석만을, 한쪽만이 강요하는 기억만을 내세우고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권을 지지하거나 그 성과를 재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에 반하는 흐름을 전부 싸잡아서 ‘시대착오’, ‘좌파’ 등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또 다른 ‘마녀사냥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특정한 역사와 그 안에 개인, 인물에 대해 일방통행적으로 실패 혹은 성공을 강조하는 것은 80년대 이후 전개된 한국 현대사 연구 성과를 일순간에 완전 무시하고 뭉개버리려는 시도에 다름이 없다. 386이란 특정 세대의 역사관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다만 냉전 시기 획일화된 현대사 인식에 반하는 해석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된 것이 민주화 이후 20년간 축적된 한국 현대사 연구다.

    건국 60년이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해석이 아닌, 그 시대의 아픔, 고통, 피해, 희생 그리고 48년 이후 60여년을 살아온 다양한 한국인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것을 통해 그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바로 진정한 지적·도덕적인 헤게모니를 보수세력과 지식인들이 대중들로부터 얻고자 한다면, 상대의 역사인식을 인정하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먼저 보여야 한다. 바로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건국 60년 사업의 위치를 명확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대학시절 한참 사법적 판단의 소재였던 <한국민중사>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당시 글들은 비록 거칠지만 언젠가 승리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가정을 깔고 있지 않았나 싶다. 바로 운동을 위한 역사, 바꾸어 말하자면 역사 서술의 일정한 목적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 점이 이른바 뉴라이트론자들이 ‘386의 역사관’이라고 비판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또 다른 목적론을 ‘시대불가피론’이란 이름 하에 현재화 시키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실증에 입각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들은 박정희 체제와 근대화의 방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개인과 집단에 대한 분명한 태도, 즉 반대와 저항의 흐름은 그 자체로 근대화와 다가올 미래를 지체시키는 ‘지체요인’인 동시에 ‘역사적 반동’(historical reaction)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항세력의 주장은 당대 현실화될 수 없는 ‘자가당착적인’ 것인 동시에 미래를 퇴보시키는 ‘퇴영적인 당사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뉴라이트 역시 박정희 시기의 근대화와 다양한 민중의 희생과 탄압을 ‘특유의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끊임없이 정당화시키려는 ‘세련된 해석자’일 따름이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방식의 정당화를 통해 현재의 국면 – 이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과 ‘좌파 정권’의 부정과 실용주의에 입각한 부국강병 – 에서 지적·도덕적 헤게모니를 선취하려는 ‘역사의 이용’(use of history)일 따름이다.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딜레마

    하지만 앞서 민중들의 파편적인 기억을 통해 뉴라이트 집단이 주장하는 불가피론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길은 경제성장 이후 민중의 삶과 자유가 보장된 미래인데, 현실은 전혀 그럴지 않다.

    베트남 참전병들은 아직도 용병의 멍에와 숨겨야 할 수 밖에 없는 병마 그리고 기약 없는 명예회복을 기다리며, 기지촌 여성은 여전히 매매춘 여성 혹은 사회 하단에서 막일로 연명하고 있다. 또한 도시 하층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무질서, 무지, 혼란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회의 시각에 힘겨워 하며 하루 하루를 영위하고 하고 있다. 불확정적인 미래의 지속, 이것이 ‘뉴라이트 역사 인식의 딜레마’이다.

    진정한 폭력은 공권력에 의한 물리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고와 상상력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미래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 역시 폭력이다. 뉴라이트 그룹에게 미래란 늘 현재를 지연시키는 자기 암시적 주문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의 미래’는 지속될 수 없다. 근대화와 부국이라는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 복수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 속에서 현재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물결칠 때, 이제 박정희 시대와 뉴라이트의 미래는 종언을 고할 것이다. “그들의 미래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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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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