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오매스, 식량난 원인 아니다”
        2008년 07월 25일 11:37 오전

    Print Friendly

    바이오매스와 사회적 일자리

    성장주의, 개발주의 세력들은 경제성장만이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고유가 시대라는 악재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음으로 해서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이 정치세력의 괴기스런 논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① 화석문명의 종말에 더욱 더 다가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석유가격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도, 마치 유가폭등이 단기적인 문제인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② 성장만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개발주의적 발상이 탈근대적 상황에서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게 만들고 있으며

    ③ 그러므로 지속가능성을 약속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저성장, 제로성장의 사회시스템 하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일반 사람들의 생각에도 성장주의, 개발주의자들의 논변이 마치 당연한 상식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 산림청의 바이오매스 수집단이 목재를 짊어지고 내려오고 있다 (사진=산림청)
     

    진보세력이나 대안세력들조차도 이 성장=일자리 논변에 대해서는 침묵하게 되는 것만 보더라도 얼마나 이 논변이 한 때 위력적인 힘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잘 살펴보면 성장과 분배, 노동과 소득의 고리가 끊어져 있는 사회 분열적 양극화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이 논변의 반박으로 제기될 수 있다.

    즉,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청년실업자,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대해서는 성장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는 역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박의 논리는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그 한계는 ‘어떻게 대안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즉, 성장하지 않으면서도 대안적인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겠느냐 라는 문제의 핵심이다. 그러한 지적에 대해서 유효적으로 논박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사회적 일자리 개념이다. 공동체의 부의 순환과 사회적 기여도에 있어서 사회적 일자리 개념은 가장 대안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매스 산업은 이 사회적 일자리 개념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문이다. 이것은 고유가라는 석유문명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효과를 만들 뿐만 아니라, 성장주의의 논리대로 성장을 하여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논리와 달리 친환경적인 자원순환을 통해서도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측면에서 성장주의 논리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제로성장의 상황에서도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바이오매스 산업에 있다. 원자력에 기반 한 한국의 상황에서도 원자력의 수 십 배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원자력의 추출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이오매스 산업은 원자력산업기반을 넘어선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사회적 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얼마나 바이오매스 산업이 새로운 대안 에너지산업으로 유망한가를 알 수 있으며, 성장주의, 개발주의의 괴기스런 논변에 대해서 결정적인 논박을 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바이오매스가 제 3세계의 식량부족의 원인인가?

       

    그러나 사람들이 바이오매스 산업에 대해서 논박할 때, 제 3세계 민중의 식량난의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바이오매스의 주원료인 콩, 옥수수 등은 식량부족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제 3세계의 식량기근의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는 이미 언론미디어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논점에는 일정한 문제점이 있다. 즉, 바이오매스 산업의 도입 이전에도 비만과 기아가 공존하는 식량분배의 불균형은 여전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바이오매스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더 근원적인 문제인 남북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다. 즉, 선진국에서 하이브리드카 등을 타기 위해서 식량을 소모하는 것이 제 3세계 민중의 기아의 상황과 대비를 이루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식량부족의 원인이라고 지적되는 바이오매스보다 더 큰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육식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 사람들이 육식으로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구가 6개가 더 필요한 상황에 있다. 바이오매스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바로 육식문명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 동일한 조건이 발생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육식문화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시장에서 고기를 팔듯이 바이오매스 연료를 파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으로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반박할 여지는 별로 없어진다. 결국 바이오매스도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장의 논리에는 중요한 지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를 테면 화석문명의 풍요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요구대로 바이오매스 연료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즉, 현실의 상황에서 에너지산업은 비교적 저가로 책정되어 있으며, 바이오연료의 경우에도 석유와의 경쟁과정에서 비교적 저가의 에너지로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석연료들이 고갈되어 갈수록 에너지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으며, 바이오연료의 경우에는 석유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오매스가 아니면 대체연료는 무엇인가?

    문제는 현재의 시장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바이오매스의 경우에 에너지 산출비용이 매우 저렴하게 계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석연료처럼 역사적으로 에너지원이 응축되어 발굴하면 된다는 설정과는 달리 생명자원의 순환과정에서 생산되는 에너지원은 사실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즉, 바이오매스의 경우에는 식량을 소비해야 한다는 대가가 존재하는 것이며, 그 만큼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이러하다. 즉, 에너지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에너지원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며, 사회적 비용과 개인적 비용을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유한한 자원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바이오매스가 현재의 도입 시기에 있어서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역학관계와 사정에 대해서 누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부 좌파나 제 3세계 진영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석유문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바이오매스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들은 바이오매스가 등장한 이래 생기게 되는 제 3세계의 식량난 등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너지의 가장 유력한 부문이 바이오매스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슬쩍 누락시키고 있다.

    즉, 대안 없는 비판으로 머물고 있는 것이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석유문명에 익숙해 있던 에너지 소비의 생활방식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생활방식을 조장하던 시장의 논리도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기약할 수 없는 점에 있다.

    즉, 화석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갖고 있었던 에너지관과는 다른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요구되는 것이며, 그러한 생각 속에서 에너지에 대한 순환적이면서도 매우 극도로 절약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바이오매스가 개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와 같은 에너지원과 동일한 경쟁심급에서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지, 그것이 점점 시장에서 대체수단이 되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아니며, 적극적으로 그 대체과정으로 향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껏 쓰는 석유는 사실 수 억 년 전의 미생물이 빨아들였던 태양에너지가 응집되고 발효되면서 고농축에너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농축 에너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오매스가 만들어내는 태양에너지의 양과 발효 농축의 시간은 매우 짧으며, 미래사회는 그러한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사회를 작동시키고, 순환시켜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소비의 에너지관 버려야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석유의 풍요의 시대를 마감하는 우리 세대에 있어서 바이오매스의 의미는 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삶의 방식과 사회형태, 사회적 비용체제의 전반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결국 과도기적 상황에서 비록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바이오매스 이외에는 유효한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의 산업적 틀과는 다른 방식의 산업과 삶의 방식을 디자인할 수 있는 대안세력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끝으로 어떤 일간지에서 바이오매스도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이것은 석유기업의 중상모략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오매스는 생태계의 탄소순환과정에서 생기게 되는 에너지원이므로,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지 않는다.

    즉, 생명은 탄소를 내뿜고 빨아들이면서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탄소의 양은 제로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오매스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는 이유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라는 작금의 상황에 바이오매스에게도 하나의 혐의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옹졸한 방식의 걸고넘어지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매스 산업은 미래의 청정에너지이며,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매우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에 대한 현재의 중상과 모략, 오해는 곧 풀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안세력은 바이오매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기반하여 사회적 기업으로서 바이오매스산업을 육성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