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싸우고도 지면 차라리 죽어서..."
        2008년 07월 24일 08:38 오전

    Print Friendly

    이 글은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 함께 하고 있는 시인 송경동씨가 보내온 글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오늘’은 23일이며, 글은 이날 늦은 저녁 시간에 쓰여졌다. 필자는 이날 밤 늦게 마련된 기륭 노사간의 교섭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 글을 썼다.

    필자는 23일 밤 교섭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지기를 간절하게 바랬지만, 교섭 결과는 우려한 대로 결렬이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회사가 기존의 안을 그대로 가져와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해서 더 이상 진천이 없었다고 전했다.

    비교적 긴 분량의 글이지만, 필자가 기륭투쟁과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함께 눈물흘린 얘기들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독을 권하면서 <레디앙>에 싣는다. <편집자 주>

    봄이 무르익던 지난 4월부터 한여름이 된 지금까지 내내 거리에 있었다. 일종의 주거불명자였다. 주로 갔던 곳 중 한 곳은 구로2공단(현 디지털산업단지) 뒷골목 변두리에 있는 기륭전자 앞 비정규여성노동자들이 1067일째 노숙 중인 농성장이었고, 또 한 곳은 시청과 광화문 네거리 주변이었다.

    낮 시간을 배회하던 곳은 기륭전자 앞이었다. 참,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구로역 앞 철탑에 올랐을 때는 구로역 광장이었다. 낮 시간에 안정적으로 밥 얻어먹을 곳이 생긴 것이었다. 몇 가지 일들을 거들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나는 고마웠다.

    20여년 월급받는 일을 못해 본 사람

    그러고 보니 난 근 20여년 가까이 월급 받는 일을 못해 봤다. 꼬박꼬박 세금내는 일을 못해 봤으니, 사실 나는 이 국가에 대해 자꾸 뭐라 하면 안 되기도 하겠다.

    나는 주로 여기서 밤 10시경까지를 보냈다. 광화문처럼 거대하고 역동적인 촛불은 아니었지만 기륭에서도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5월 14일부터 시작했으니 광화문 촛불보다는 적지만 근 60차가 넘은 듯하다.

    역량도 안되는 조그만 지역, 비정규 투쟁 현장에서 날마다 문화제를 연다는 것은 호사였다. 미안해 하며 늘 와주던 동료 민중문화예술인들에게도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그래도 늘 촛불문화제를 고집한 까닭은 기륭전자가 고강도 싸움을 전개하기 전에 120여일 동안 부평역 앞 CC카메라탑에 올라가 있던 GM대우 비정규노동자들이 100일째 되는 날 딱 한 번밖에 공식적인 문화제를 못해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안하고 안타까웠던 마음 때문이었다.

       
      ▲사진=기륭전자 분회
     

    그들 투쟁을 외롭게 버려두지 말자

    모두가 870만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이야기하지만 비정규노동자들은 늘 외롭다. 그들의 투쟁을 외롭게 버려두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행복했다. 수많은 이들이 함께 해주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스님들이,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연합의 신부님들이,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의 목사님들이, 영화인들이, 미술인들이, 민교협의 교수님들이, 민변의 변호사님들이, 70년대 민주노조 선배님들이 함께 해주었다.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함께 했다.

    이런 분들과 함께 하는 기륭문화제가 끝나면 가능한 몇 사람씩이 모여 쏜살같이 광화문 네거리로 달려갔다. 광화문은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을 주었다. 촛불다방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다인이 아빠네에서 컵라면을 받아 출출한 배를 채웠다. 손을 내밀면 어디에서나 생수가 쥐어졌다.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새벽 기차놀이를 했다. 여의도 KBS 앞이나, 동대문 두타 앞까지 걸어갔다.

    그곳은 무슨 이산가족 상봉장과도 같았다. 십수년 연락이 끊겼던 많은 이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한때는 참 가까웠던 사람들인데 어쩌다보니 모두 먼 추억의 갈피 속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불쑥 현실로 나타났다. 바뀐 게 있다면 정담을 나누고 헤어지면서도 서로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성숙인지 아픔인지 늘 또 한 사람씩을 만나 헤어질 때마다 마음 속 공터가 휑하니 더 넓어졌다. 아픔과 이별을 견디는 게 세상살이라고 도대체 누가 만들어놓았는가. 별빛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리그리 출렁이는 사람들 물결을 따라 떠돌다보면 금세 새벽 5시가 되고, 6시, 7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자고 나면 다시 기륭으로 나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당연한 요구에 목숨걸게 만든 세상

    그렇게 4월과 5월과 6월이 가고 7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기륭 여성비정규노동자들은 2번의 고공농성과 8일간의 사회공동행동, 1045인 하루동조단식단 청와대 진격 투쟁, 연대미술전, 국회개원날에 맞춘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농성과 셀 수 없이 많은 집회 시위를 거쳤다. 그리곤 오늘, 무기한집단 단식 43일차를 맞고 있다.

    요구는 단 하나, ‘직접고용 정규직화다.’ 비정규직이 없던 시절에는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870만 비정규직 세상이 되고 나서는 때에 따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정규인생이 되는 일은 과거 노예들이 평민 신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기륭비정규 여성들은 2005년 당시 불법파견노동자로 621,850원을 받았다. 문자로 해고당하고, 잡담했다고 해고당했다. 애를 낳을 수 있는 새댁이라는 이유로 3개월 계약을 강요당했다. 요구는 단 하나 불법파견으로 판정났으니 ‘직접고용 정규직화’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단순한 요구를 위해 1065일째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죽는 것 빼놓고 다해 봐야 했다. 철탑에도 오르고, 크레인 위에도 오르고, 다리에 매달리고, 때론 동맥을 끊고, 그러다 정말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었다. 기륭 김소연 분회장도 이제 정말 목숨을 걸겠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싸우고도 못 이기면 차라리 죽어서…

    이렇게 싸우고서도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서라도 비정규 세상을 응징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싸워서도 못 이기면 다른 비정규노동자들이 어떤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싸우겠냐고 한다. 죽겠다는 자신의 말이 그냥 메아리로만 끝나고 연대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를 죽음을 통해서라도 증명해 보이겠다고 한다.

    이렇게 ‘웃으며’ 죽겠다는 표현까지를 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도 말릴 수가 없다. 그들의 결의가 워낙 확고해서도 그렇지만,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의 세상에서 죽음과 생의 경계가 어디에 따로 있겠는가라는 절망감 탓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런 말이 입에 올리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사회적 투쟁을 조직해 주어야 한다는 마음 탓이기도 하다.

    여하튼 제2의 지율 스님이라도 되겠다는 건지 피골이 상접한 채 집회 때마다 하얀 소복을 입고 공장 1층 옥상 위에 나와 앉아 있는 두 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돈다. 기륭 여성노동자들 곁에 있다 보니 나도 전염되어서인지 시시때때로 눈물이 난다.

    그들이 5월 11일 새벽 6시 50분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비정규철폐연대가’를 부르며 시청 조명탑 위를 오를 때, 5월 26일 다시 새벽 6시 30분 구로역 30m CC카메라탑을 오를 때, 다시 6월 10일 오후 다섯 시 목숨을 걸겠다는 결의를 밝히며 공장 1층 옥상을 오를 때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경찰이나 구사대 침탈을 걱정할 때, 침탈당하지 않을 물품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을 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면서도 모두가 침묵할 수밖에 없을 때 울컥했다. 그렇게 강인한 척 하더니 단식 35일차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열 살 딸내미를 찾아가며 울던 조합원 어미의 눈물 앞에서 수천만년 흐른다는 눈물의 강이 내 마음 속으로 서늘히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기륭전자 분회
     

    그들 곁에 있으면 나도 자꾸 눈물이 난다

    무어라도 해야겠기에 주변 사람들과 참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핸드폰 요금 고지서에 20여만 원이 넘는 돈이 찍혀 왔을 때는 나도 황당했다. 그런 게 비단 나만의 일이었을까? 일상의 대부분이 이런 투쟁의 연속일 조직 노동자들과 노동 관련 단체들, 그리고 지역 사회단체 회원들의 헌신은 따로 얘기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연대해 주었다.

    종교계 분들과 몇몇 사회단체 분들은 세 번에 걸쳐 무례한(?) 방문과 점거에 함께 해주기도 했다. 한번은 공장 진입이었고, 한번은 민주노총 방문이었고, 한번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농성이었다.

    미술인들은 현장에 천막미술관과 1000일 기원촛불탑, 그리고 미술가 70여명이 함께 참여해 미술사에 기리 남을 모자이크 걸개그림을 만들어주었다. 7천만원짜리 조각 작품을 현장에 설치해주었고, 전국을 돌며 작품을 모아 기륭과 KTX, 코스콤, GM대우, 뉴코아-이랜드, 재능교육 등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기금 마련 미술전을 열어 주었다.

    작품 한 점을 얻어오기 위해 저녁 10시 강원도 태백으로 향한다는 전화를 받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배우는 과정들이었고, 기름때 낀 마음을 정화하는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은 맑아질 수 있을지, 착해질 수 있을지, 더 진지하고 견결해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구체적인 비정규직 투쟁 현장과 2008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광화문 촛불항쟁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이미 승리한 투쟁? 평가와 단언은 이르다

    기륭여성비정규직 투쟁과 광화문 투쟁은 결과를 떠나 승리한 투쟁들이라고 말들 한다. 과정의 아름다움과 투철함,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 이미 우리의 인간적 존엄과 영예를 확인시켜 왔다는 판단들이다. 대체로 동의한다. 현실에서 우리는 늘상 지고 있지만은 않다. 내용적으로 승리해 왔고, 그 결실들이 그나마 이 사회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속살 한 겹 한 겹마다 꼭 없으면 안 될 영양소로 스며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직 평가와 단언은 이르다. 2008년 기륭 비정규여성 투쟁과 광화문 촛불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둘 다 자신들이 바쳤던 노력과 성심에 걸맞는 현실적 예우와 결실을 받지 못한 채 실낱같은 생명을 이어 나가고 있다.

    단식 45일차를 맞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생명줄이 가늘어져 가고 있고, 공권력탄압, 원천봉쇄에 막혀 촛불은 제 고향인 시청 광장을 잃고 깃들 곳을 찾아 오늘도 청계광장으로, 대한문 앞으로, 보신각 앞으로, 조계사 앞으로, KBS 앞으로 위태롭게 떠돌고 있다. 두 군데 촛불문화제 모두 부쩍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완강하고, 밝다.

    이 두 개의 촛불은 조금 더 타올라야 한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는 아직도 첨예한 대립 속에 있고, 광화문 촛불들의 최소 바램이었던 쇠고기수입 재협상은 대국민사과니, 추가협상이니 하는 립서비스 속에 묻혀버렸다.

    이 정권은 모든 소통을 단절한 채 고시 강행, 공권력 투입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민주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오만하고 폭력적인 정권 퇴진’ 이외에 어떤 해결방안도 가능치 않는 극한 상황으로 치달아 있다.

    그 끝이 어떻게 결판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을 소망하는 이들의 살아 있는 완강함과 공권력의 죽어 있는 완강함 중 어떤 완강함이 끈질기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주변의 우려에도 끝까지 목숨마저 내놓고 투쟁하겠다는 기륭여성노동자들의 완강함과 잃을 게 없다는 기륭 자본의 완강함 중 어떤 완강함이 승리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린 지금 안전지대로의 전술적 후퇴가 아닌 그런 백척간두의 전략 지점으로 서서히 그러나 완강하게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소식

       

     ▲ 기륭연대미술전 개관식에서 송경동 시인이  시낭송을 하고 있다 (사진=기륭전자분회)

     

    오늘도 몇 개의 문자가 찍혀 있다. 누군지 참 정성이고 수고다.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며 산화해 갔던 고 이병렬 님 49재를 7월 27일(일) 12시 망월동에서 갖는다는 고지다. 서울에서 출발할 사람들은 아침 7시까지 사당역 1번 출구로 모이라는 얘기다.

    시민 200여명이 YTN 사장 차를 몸으로 막고 있는데 경찰 진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 YTN 앞으로 집결해 달라는 요망이다. 한편 잊었던 소식도 있다. 2006년 포항 형산강로터리에서 집회 도중 공권력 폭력으로 죽어갔지만 아직도 개값(?) 의문사로 남아 있는 건설비정규노동자 하중근 열사 2주기 추도식을 25일(금) 포항에서 갖는다는 알림이다.

    뉴코아-이랜드 투쟁 400일차 투쟁문화제가 또 그날 25일(금) 상암점에서 열린다는 문자다. 하나 하나의 소식들이 간단치 않고 무겁다. 모두가 잊고 있을 때 이렇게 끝까지 늦게까지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늘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 조금 전 들어 온 문자다. 기륭 교섭이 밤 10시부터 노동부 관악지청에서 긴급하게 속개된다는 얘기다. 오후 5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서 홍준표 의원과 김성태 의원, 장의성 서울노동청장 등이 최동렬 기륭 회장과 회동한다는 소식을 마침 기륭 천막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항의 촉구 전화 과정을 통해 확인하고 있던 차였다.

    전문경영인을 앞세우고 단 한번도 전면에 나서지 않던 회장이 급기야 끌려 나온 다음이라 무척이나 기대도 되지만 워낙 많이 당해 왔기에 큰 기대는 갖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번 주가 가기 전에, 단식이 45일차를 넘기 전에, 기륭전자 여성들이 더 혹독하고 가혹한 마음을 먹기 전에, 모든 이들이 심신을 쉬러가는 이 여름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1065일을 끌어 온 ‘직접고용 정규직화’ 싸움이 승리로 확인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간절한 바람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7월 25일 진행하기로 한 ‘기륭비정규투쟁 1067일! 집단무기한단식 45일차! 투쟁 승리를 위한 사회공동행동’이 그간 서로의 노고를 위무하고 모든 비정규노동자들을 위한 희망의 날로 바꿔 진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륭을 벗어나 나도 시인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거나, 또 다른 투쟁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간 싸움 핑계를 대며 소원하게 했던 처와 아이를 데리고 어디 교외라도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다. 핍진한 투쟁의 시간만이 아니라 넉넉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의 시간도 가져 봤으면 좋겠다.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하고 간교한 것인가 보다. 한 넉 달 함께 해 오던 나도 이렇게 지치는데 200일이 훌쩍 넘은 코스콤, 400일이 다가오는 뉴코아-이랜드, 광주시청비정규직, 800일이 넘은 KTX, 그렇게 그렇게 7년이 넘기도 했다는 하이텍알시디코리아와 시그네틱스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엄혹한 시간들을 버텨 올 수 있었을까?

    별 일도 않고 몇 개월 쫓아다닌 나도 이렇게 애가 타는데 누구라도 빨리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들의 묵묵함에 고개가 절로 수그려진다.

    만약? 오늘 교섭에서도 기륭전자 ‘직접고용 정규직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현재 김소연 분회장은 해결되지 않으면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사회적으로 공언을 한 상태다. 난 그런 약속은 전술로서만 유효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키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가 싸워서 이겨 내려올 수 있게 해보자고 한다. 그럼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럼 이 다음엔 무얼 하지?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로도 안 풀린다면 이젠 청와대를 쳐들어가야 하나? 구로역 고공농성 당시 기륭 최동렬 회장을 중국 방문시 중소경제인 대표 자격으로 포함시켜 비호해서 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을 물어야 하나.

    이제 청와대로 쳐들어가야 하나

       
      ▲사진=기륭전자 분회
     

    그런데 청와대는 어떻게 쳐들어가지. 혹시 총을 맞게 되지는 않을까? 꼭 이런 방법뿐일까? 이 사회의 축적된 민주주의의 힘으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올 수 없을까?

    광화문에 모인 촛불들이 KBS 앞까지 가듯 기륭 앞까지 와준다면 문제가 풀릴까? 수만이 기륭 앞에서 모여 시청까지 행진하여 닫힌 시청 광장을 열어놓으면 기륭 회장이 손을 들까? 별난 상상을 다하게 된다.

    우선은 그래도 또 싸워야 한다. 불굴의 의지로 다시 싸워야 한다. 청원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견결한 투쟁만이 새로운 국면을 연다.

    우리의 죽음과 좌절이 아닌 저들의 죽음과 항복과 반성이어야 한다. 870만 비정규 사회의 끝장이어야 한다. 골고루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여야 한다.

    현재 시각 밤 11시. 이제 나가봐야 한다. 관악지청으로. 교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1065일의 조마조마한 소망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가봐야 한다.

    7월 25일 금요일, 오후 1시에 청와대 앞 사회각계 45인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오후 4시부터 구로2공단 변두리에 있는 기륭전자 앞에서 기륭비정규여성노동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위한 사회공동행동을 하자고 사회 제 단체들과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제안해 놓은 상태다.

    그날만큼은 외로운 기륭 사람들 곁에서 1박을 해주고 그들이 1067일 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진행했다는 아침출근 선전전까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우리들의 훈훈한 연대의 마음으로 기륭동지들이 더 극한 마음을 먹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사실 그 자리에 좀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정말 내일 아침엔 좋은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별 말도 아닌 말, 기륭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고용되어 다시 기륭자본의 생산력 향상을 위해 일하게 되었다는 말. 그 처절한 말. 그 뼈아픈 말. 그 정도의 말도 무슨 혁명이 되는 이 못된 사회, 병든 사회.

    꼭 그 ‘기쁜 소식’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 좋겠다. 결국 광화문 촛불과 수많은 투쟁들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하는 일이겠지만 하나의 투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아름다운 연대를 실현해 가고 있는가가 우리가 결코 끌 수 없고, 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며, 희망일 것이다. 아, 그런 기쁜 날에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 (기륭비정규분회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kiryung.cafe)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