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가 법원보다 못하면 되나요"
        2008년 07월 21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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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10일 대법원은 사상 처음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이었던 용인기업 노동자 30명이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낸 ‘종업원지위확인 소송 선고’에서 용인기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위장도급’이며,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현대미포조선과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판결했다.

    법원도 간접고용 인정하지 않은 판례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현대미포조선)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자신의 사업을 수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피고 회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라며 사실상의 위장도급임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위장도급 방식을 통해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해왔던 원청회사 사용자들의 행위에 제동을 거는 핵심적인 판결이다.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법원도 간접고용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노동조합이 이를 용인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노동운동이 파견을 비롯한 간접고용 철폐, 정규직화로 방향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권변호사와 인터뷰 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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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두섭 변호사.
     

    – 역사적 판결을 끌어냈는데 소감이 어떤가?

    = 일단 미포조선 노동자들이 5년 6개월만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그 중에서 2명은 이미 정년이 되었다. 이 판결 이후에 흩어져 있던 조합원들이 모여서 현대미포조선에 직접고용 요구를 하면서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코스코, KTX여승무원, 기륭전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더 직접고용을 요구하면서 싸움을 시작하는데 조금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 용인기업 노동자들을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라고 판결한 대법원 판결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제조업 사내하청 원청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

    =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위장도급에 대해 원청회사와 직접 고용관계가 있다고 보는 경우가 예전에는 소사장제도나 아니면 모회사, 자회사 등 경영적으로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경우에 한정했었다.

    현대미포조선 같은 경우는 그런 경우가 아닌데 4가지의 요소를 살펴서 위장도급이면서 원청회사와 직접 근로관계를 인정했다는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제조업 사내하청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문을 조금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기대일 수도 있는데 간접고용이라든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대법원이 노동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방향으로 방향을 제시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이 판결이 미치는 영향은 어떤가? 대법원 판결 이후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도 사용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 코스콤이나 KTX, 이런 곳들은 직접 근로관계가 인정되지 않을까 싶고, 앞으로 소사장이나 모자기업관계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하청회사가 인력을 파견하는 그런 수준 같은 경우에는 원청회사와 직접 근로관계를 인정하는 판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용인기업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이나, 현대차 사내하청 등과 차이가 있는가?

    = 조선과 자동차가 좀 다를 수도 있다. 용인기업 같은 경우 사내하청 중에서 옛날 하청, 즉 내주하청이라고 불렸다. 요즘 사내하청은 도급의 외향을 갖추기 위해 자꾸 세련되어가고 있어서 형식적으로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제조업 사내하청의 형태는 다르지 않다.

    사내하청이 독자적인 기반 없이 사람만 고용해서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인기업이 제조업 사내하청과 다를 게 없다.

    근로자 지위확인 집단소송, 조직화 방안될 수도

    –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에 근로자지위확인 집단소송을 내는 것은 어떤가?

    = 조직화를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비정규법 시행 앞두고 대량해고를 대비해 그런 시도가 있었다. 조직화가 안 되어 있어 개별적으로 당하고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법원이 정말 사내하청 노동자들 전체에 대해 원청회사와의 고용계약을 인정해줄까에 대해서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용인기업의 형태와 비슷한 경우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사업주가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사용하고, 사실상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에 대해 공론화시키고 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방안으로는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 GM대우 창원공장처럼 노동조합이 아예 도급을 인정해 합의해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노조가 합의했을 경우 법원으로 가도 이기기 어려운 것 아닌가.

    = 노동조합이라는 게 개념상 노동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향상, 보호하기 위한 단체라고 인식되고 있는데 그런 노동조합에서 도급을 용인하는 형태의 합의를 했다면 하청노동자들이 소송을 한다고 했을 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사측도 “노조도 합법도급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고 우리가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상황을 충분히 그렇게 된다.

    노동조합 할 말 없게 만든 판결

    – 법원도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고 있는 마당에 노동조합이 법보다 나은 요구를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 이번 판결로 어떻게 보면 노동조합이 할 말이 없게 됐다. 자기 사업장 바로 옆자리에서 하청노동자가 일하고 있는데 하청노동자의 고용의 헝태가 하청기업이 그냥 원청회사에 사람을 대주는, 인력을 파견해주는 형태라면, 그건 원청회사에 아예 처음부터 고용관계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다는 이야기를 대법원이 한 것이다.

    실제 제조업 사내하청의 고용형태라는 게 99%가 다 인력파견 형태다. 근데 어느 노조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이 우리 조합원이다, 우리 조합원인 걸 떠나서 우리와 똑같이 원청회사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라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교섭하는 곳이 없다. 할 말이 없게 된 것이다.

    – 노동운동이 구호로는 비정규직 철폐를 얘기하지만 실제로는 노사교섭에서 비정규직 권리보호 수준의 운동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전면 정규직화로 노동운동 방향의 대전환이 필요한 것 아닌가?

    = 비정규직을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 다음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을 하는 것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법원이 이 판결을 낸 이면에는 그런 측면도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이 있고, 직접 고용해서 노동법을 지켜서 직접 고용하는 기업도 있는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다 법을 안 지키고, 고용관계를 회피하는 것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결론으로 사용자임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하청회사 뒤에 숨는 원청회사 찾아내 “너희가 사용자다”라고 한 것인데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노동조합은 사용자가 고용의 이익을 실질적으로 가져가는 간접고용의 형태는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하는 요구를 해야 한다.

    노조, 노동법 기본 상식 지켜야

    –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서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민주노총이 파견법 철폐를 공식 입장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파견제도라는 간접고용제도를 철폐하기 위해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해왔는데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간접고용, 파견을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게 아니라 원청업주로 하여금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투쟁을 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파견이라는 게 원청회사가 다 지휘감독하면서 일을 시키는데 고용만 파견업체에 속해 있고, 법적 책임을 파견업체가 진다. 그걸 법적으로 허용된다는 게 말이 안되고, 그걸 노동조합이 용인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 상식으로 가야 한다. 일을 시키고 이익을 가져간다면 그 사용자가 책임을 지는 게 노동법의 기본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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