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책임자와 피해자는 누구?
    2008년 07월 21일 1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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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뜨겁고 후덥지근했다. 우기이니 우산을 챙기라는 주최 측의 안내문이 무색하게 방콕에 머문 6일간 비는 한 방울도 구경할 수 없었다. 우기라던데 왜 비가 오지 않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기후변화 탓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군. 나는 기후변화의 또 다른 현장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후변화에 관한 회의를 개최하기에 적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대처의 절박성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그런 회의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번 방콕회의는 ‘사회정의’, ‘제국주의’, ‘토착민의 권리’, ‘역사적 책임’, ‘여성주의’, ‘국제금융기구’, ‘시장주의’ 등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심이었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쯤으로 묘사되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내재된 혹은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과 투쟁이 이번 회의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름하여 ‘기후정의’에 대한 국제회의. 이번 회의는 7월 12일부터 13일까지 전세계 31개국 170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여하였다. 특히 아시아 국가에서 많이 참가했다.

   
▲ 환담 중인 기후정의 회의 참석자들. 가장 왼쪽이 필자 한재각
 

기후정의와 사회정의

기후변화를 야기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후변화로 인해서 피해를 받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것이 이번 회의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회의 참석자들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온실가스를 방출해온 역사적인 책임이 선진국에 있으며, 기후변화로 위한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은 제3세계의 민중이라고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나 전지구적 위기로 부각된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국제적 협상 속에서는 ‘사회정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공통의 인식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 지역적 차원의 대책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정의 방콕회의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던 ‘탄소거래’와 ‘식물연료’ 쟁점에 대한 토론에서 그런 인식이 잘 드러났다.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방출을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제시되고 있는 탄소거래 시스템에 대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온 여러 참가자들은 격렬한 비판을 쏟아내었다.

탄소거래는 선진국들이 자신의 탄소 배출을 유지하기 위해서 개발도상국의 개발 역량을 값싸게 소진해버리는 것이며, 전지구적 차원의 탄소 배출 저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탄소거래의 시장주의적 접근을 반대하면서, “국내의 탄소 배출 저감은 국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기후변화의 전지구적 위기 국면에서도 대기를 상품화하여 거래하려는 시장주의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 것이다.

‘식물연료’의 쟁점은 보다 복잡하며 모순이 다방면에서 드러난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전세계의 식량가격의 상승과 이에 따른 식량위기는 친환경 연료로 인정되는 바이오 에탄올이나 바이오 디젤 등의 식물연료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들의 대기오염을 줄일 뿐만 아니라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식물연료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기후변화 국제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해가고 있다.

그러나 곡물가의 폭등으로 인한 식량위기 뿐만 아니라, 식물연료를 제공하기 위한 대규모 플랜테이션이 이루어지는 개발도상국의 자연 환경 파괴와 인권 억압의 피해는 고스란히 제3세계의 몫이다. ‘식물연료와 식량위기’ 워크숍의 참가자들은 “모든 산업화된 식물연료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결론지었다.

제1세계의 쾌적한 환경과 국제협상의 주도권을 위해서 제3세계 민중의 식량권과 자연환경이 희생되는 것은 결코 정의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한편 이번 방콕회의 참가 전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가 있었다. 소위 친디아(중국-인도)의 문제였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중국과 인도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석유, 곡물 등과 같은 전세계 자원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서 중국(인도도 유사할 것인데)의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에 들어가 있으며, 기후변화와 관련해 보더라도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단위 국가당 배출량에서 미국을 앞질렀다는 보고도 있다. 중국의 이런 상황을 미국이 물고 늘어지면서 기후변화 국제협상에서 몽니를 부리면서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중국은 다른 개발도상국들과 함께 기후변화 국제협상에서 선진국들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후변화를 완화시킬 탄소 배출 저감과 적응에 필요한 재정부담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정의’ 차원에서 공감할 수 있는 입장이다.

풀리지 않는 ‘중국 문제’

때문에 일부에서는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고 하더라도 막대한 인구를 대해보면 인구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이는 대다수 중국 민중들은 여전히 저개발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점에서 중국에게 ‘발전권’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이며, 일방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그래서 고민이 시작된다. 중국이 기후변화 국제협상에서 미국 등을 견제하는 입장을 갖는다고 해서, 또 역사적 책임이 작으며 대다수 중국 민중에게 발전권이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는 중국이 지금과 같은 방식의 고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용인해야 하는 것일까. 전세계, 특히 아시아 지역의 좌파들은 이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별반 확인한 게 없었다. 중국 참가자는 있었지만, 발표 내용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해주는 것에 머물렀다. 중국-인도 문제에 대한 워크숍의 결론도 이들 국가의 시민사회를 강화해서 기후변화 문제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 뿐이었다. 중국을 바로 옆에 두고 사는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뿐이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의 진보신당이 정당으로서는 유일하게 참가하였다. 기후변화 혹은 기후정의라는 의제가 국제적으로도 여전히 NGO와 사회운동의 영역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누군가는 아시아 지역에서 생태 문제에 관심을 표방하는 진보정당은 진보신당이 유일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고무적인 일로 평가해야 할까.

인도네시아의 노조 활동가가 회의에 참가하여 고용과 환경의 문제가 충돌할 수 있으며 토론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아쉽게도 회의 전 기간을 통해서 이 쟁점에 대한 토론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인도네시아 노조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를 들으면서 노동운동이 기후변화와 기후정의 문제에 주목하도록 만들지 못하고, 또 이런 회의에 함께 참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진보정당의 일원으로서 노동운동이 협소한 경제적 이해를 넘어서 지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쟁점인 기후변화 문제에 이해하고 대응에 나서도록 할 책임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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