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친 소보다 미친 고용이 더 심각”
        2008년 07월 18일 01: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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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은 박노자 교수는 촛불집회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 촛불집회가 비정규직 문제와 결합하지 못하는 데 대해 아쉬움과 함께 비판적 견해를 드러냈다.

    17일 <레디앙>과 만난 박노자 교수는 “촛불집회는 몰계급적이고, 중간계층적”이라고 아쉬움을 표현하며 “촛불집회에 갈 때 비정규직 문제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같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촛불집회의 민주주의적 측면보다는 ‘민중생존’ 측면을 더 강조했으며, “촛불집회가 다른 나라들의 기존 민주주의를 넘어섰다는 평가는 우월주의적 해석일 수도 있다”고 말해 촛불집회에 대한 과장된 평가를 경계했다.

    또, 박 교수는 “권위를 잃은 이명박은 지배층에게 진압용이로든, 설득용이로든 쓸모가 없어졌다”고 말하고 “지금의 한국은 아직 혁명적 상황은 아니지만, 위기는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박노자 교수는 “이번 사건으로, 북한을 다스리는 사람들의 성격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북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박노자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 *

    이명박, 권위와 쓸모를 잃었다

    – 지난 3월에 입국했었고 다시 4개월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 사이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그 전과 무엇이 달라진 것 같나?

    = 7월 4일에 와서 5일 있었던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이명박씨가 노무현보다 더 막가파 신자유주의라는 것, 신자유주의가 맞지 않는 방향이라는 것과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국민적 자각이 이루어진 것 같다.

    그 4개월 동안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실책을 봤다. 이명박씨에게 여전히 권력은 남아 있지만, 권위는 이미 잃었다. 민중층에서 권위를 잃었고, 재벌들도 이명박이 권위를 잃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조중동을 읽어보면 요즘 들어 이명박을 ‘까는’ 기사가 적지 않다. 지배층은 이명박을 언제까지 쓸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이상돈 교수도 이명박 하야를 주장하지 않나. 지배층에게 이명박은 진압용으로도, 설득용으로도 쓸모가 없어졌다.

    – 지배층 내부에 대한 분석이 재미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위기를 그렇게 보지 않나.

    = 혁명적 상황에 대한 레닌의 정의가 그렇다. 통치자들이 예전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게 될 때가 혁명 시기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아직 혁명적 상황은 아니지만, 위기는 분명하다.

    지금 한국의 통치자들은 ‘한국호’를 계속 끌고갈 수 있을지, 어디로 끌고갈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피치자들에게는 지금 방식으로는 아무 희망이 없다. 통치자들을 5% 정도, 피치자들을 80% 정도로 본다면, 그 사이 15% 정도 되는 중간층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 하지만 과연 위기일까? 정치나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지만, 사실은 파국 없이 잘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닌가? 경제만 보더라도 독일 같은 일부 유럽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이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 독일에서는 실업자가 되더라도 실업수당 받으며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잖은가. 성장의 위기가 아니라, 분배의 위기고 민중생존의 위기다.

    수출 늘어도, 내수 안 늘고, 고용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 늘어나는 일자리도 하위층 일자리가 아니다. 저학력 저소득층의 고용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신자유주의 10년 재편의 피해자들이 일어선 것

    – 복지 부재를 위기의 근원으로 보는 것인가?

    = 한국의 시스템이 민중에게 희망이려면 경제성장률이 5% 이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복지 없이도 가족끼리 나누어 먹는 ‘가족복지’가 기능할 수 있다. 박정희 때는 그랬다. 그런데 그런 고성장기는 끝난 지 오래다. 앞으로도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고. 이제는 복지 없이 살 수 없다.

    크게 봐서는 IMF 이후 10년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쌓여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박정희식 경제의 피해자들이 일어선 것이다. 수출대기업을 위한 환율정책 때문에 서민물가가 오르고, ‘미친 소’도 핸드폰, 자동차와 바꾸려 했던 것 아니냐.

    – 노회찬 전 의원도 촛불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더라. 촛불집회에 여러 측면이나 경향이 섞여 있겠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민중생존의 문제로 보는 시각과 세대문화나 민주주의 절차 문제로 보는 시각으로 크게 갈리는 것 같다.

    = 촛불집회를 처음 시작한 학생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를 살펴보자. 학교 안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학교문화에 억눌리고 교사들에게 맞는다. 그런데 학교 밖으로 나오면 소비가 미덕이고, 돈을 써야 하는 소비자가 된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돈을 쓰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는데, 대학진학률은 이미 85%에 이르러 경쟁 참여자가 너무 많고,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총력동원 경쟁시스템이다. 잔혹한 제로섬게임에 몰려 있는 것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 거리로 나온 것이다.

    – 「촛불집회를 해명하며」라는 글에서 외국인 친구들에게 촛불집회를 변명한다고 썼던데, 유럽에서는 촛불집회가 어떻게 알려지고 있나?

    = 주로는 민족주의라는 식으로 소개된다. 유럽 사람들은 촛불집회가 무역전쟁에서 민족주의적 이익을 내세운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무엇이 터지든 민족주의가 조금씩 섞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현 상황의 본질은 아니지 않은가. 유럽 사람들은 한국이 굉장히 잘 산다고 보고, 한국 민중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촛불, 신자유주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저항

    – 직접 촛불집회에 참석해보니 어떻던가?

    = 페스티벌이다. 비정규직 투쟁과 상호결합했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촛불집회 참여자들이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여러 사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 이진경 교수 식으로 표현하자면 ‘촉발’이 된 것이다. 촛불집회 덕분에 정치의식화와 학습이 일어나고 있다.

    –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촛불’은 무엇일까?

    = 신자유주의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저항이다. 중산계층이 주도하고, 노동계층도 상당히 결합한 운동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파업이 너무 약했다.

    – 촛불집회에서 보이는 여러 문화 현상, 자유로움 같은 것을 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사회적으로 억눌렸던 것 때문에 집회가 축제가 된 것이다. 유럽에서는 그 정도로 억눌리지 않으니 일상과 크게 괴리되지 않는다.

    – 조희연 교수 등 몇 분들은 더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예를 들어 유럽 같은 선진 민주주의 나라에서도 나온 적 없는 여러 요구나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직접민주주의로 나가고 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 유럽의 대중집회에서는 계급성이 확실히 드러난다. 프랑스 최초고용법 투쟁 때도 그렇고, 젊은이들이 데모를 할 때는 ‘우리는 젊은 노동계급이다. 우리의 노동력을 사려면 이런 조건을 들어달라’는 식으로 외친다.

    이에 비해 촛불집회는 몰계급적이고, 중간계층적이다. 촛불집회가 다른 나라들의 기존 민주주의를 넘어섰다는 평가는 우월주의적 해석일 수도 있다.

    ‘노동자’보다 ‘국민’ 앞세우는 촛불

    – 촛불집회의 계급적 한계에 대해 비판적인 것 같다.

    = 오랜 동안 이루지 못한 계급화를 촛불집회가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자는 것이다.

    촛불 시위자들은 ‘국민’이라는 말을 쓰는데, 시위자들 대부분은 이미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될 사람들 아닌가. 촛불 시위자들이 자신을 정의하는 데 있어 ‘노동자’보다 ‘국민’을 앞세우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 얼마 전 쓴 글에서 예비군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국가주의라 비판했다. 그런데 군복이 꼭 강한 이미지만을 갖는 건 아니지 않는가. 러시아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연금 올려 달라 데모할 때 군복 입고 나오지 않는가?

    = 물론 예비군복 입고 나오는 분들은 여성이나 노약자를 보호하겠다는 표현이겠지만,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별 것 아니지만, 세계 어디에서도 군복 입고 데모하지는 않는다. 유럽 어디에서든 군복은 국가폭력의 상징이다.

    – 촛불 시위자들이 ‘다함께’를 공격하는 것에도 비판적이던데.

    = 그 때 현장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잘 알지는 못한다. 다함께의 선전 방법이 다소 유치하고 지나치게 정파적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하는 말 대부분은 좌파가 마땅히 해야 하는 옳은 말이다. 영세하고 약한 집단을 그처럼 몰아부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 촛불 현장에서 국민소환제라든가 개헌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고, 최근 정치권에서도 다른 의미의 개헌 논의가 시작됐다. 과연 개헌을 해야 할까? 어떤 개헌이어야 하나?

    = 비관적이다. 민주당이든 한나라당이든 신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지금 헌법에 있는 경제민주주의조차도 전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소환제 같은 게 도입되면 대단히 좋기야 하겠지만.

    – 독도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 좌파란 국가와 민중을 분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어찌 됐든 일본 민중과 손잡자고 말해야 하는데, 좌파의 소신을 그대로 이야기하며 당장 주류와 정면 대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애국주의에 편승할 수도 없고.

    – 이상적인 진보정당을 가정하거나 진보신당 정도를 주체로 놓고 보자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만약 집권당이 된다면 그 때도 아무 말 않고 있을 수 없는 건 아니잖는가.

    = 천황제를 폐지하자는 일본공산당도 독도 문제에서는 영토민족주의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의 진보정치세력과 대화해나가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유럽처럼 노동시장이 통합돼 있다면 영토 문제가 이처럼 감정적 문제로 극대화되지는 않는다.

    ‘미친 소, 미친 정부, 미친 고용’ 플래카드 들자

    –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살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남한 관광객이 총 맞아 죽을 정도이니 북한 주민들이 그 사람들에게 얼마나 당해왔겠나. 이번 사건으로, 북한을 다스리는 사람들의 성격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북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 예전에 민주노동당에는 입당하지 않지만, 진보신당에는 입당하겠다고 말했었는데.

    = 민주노동당에 이북을 비현실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 이질감을 느꼈다. 진보신당에 입당할 것이고, 한국 진보정당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 그리 하려 한다.

    – <레디앙>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 촛불집회에 갈 때 비정규직 문제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같으면 좋겠다. ‘미친 소, 미친 정부, 미친 고용’이라든가. 미친 소 먹고 죽을 확률보다 미친 고용 때문에 굶어죽을 확률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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