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구의 68혁명을 떠올리며 촛불을 본다
        2008년 07월 16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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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촛불항쟁을 서구의 68혁명(혹은 운동)과 비교해 그 유사성에 주목하는 글들이 간혹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알려진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물론 68운동은 역사적 배경에서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른데다, 나라마다 특유의 발전과정을 보이기 때문에 곧바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아마도 상당히 정교하고 복합적인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유사성 여부가 거론되는 마당이니, 촛불항쟁의 새로움을 약간 넓은 시야에서 명확히 한다는 제한된 취지에서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서구의 68운동에는 촛불항쟁에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면모들이 많이 있다. 당시까지 자율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젊은 세대의 자발적 주도,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축제와 저항의 결합, 생활정치의 발견, 활발한 토론문화, 참여민주주의의 극적 진전, 대학 교육체제 비판, 다양한 문화적 발산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슈프링거 같은 보수 언론제국에 맞선 수차례 대규모 시위와 언론사 공격은 우리 현실의 닮은 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68운동은 거리의 정치를 통해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험하고자 했고 당대로선 무척 창의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68운동의 새로움과 딜레마

    그러나 그 운동은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급진적인 해방을 목표로 한 저항운동이었다. 우선 그것은 혁명에 대한 과거의 기억에 압도당한 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자신들이 추구한 새로운 대안적 가치와의 충돌을 계속 경험했다.

    빠리의 5월사태만 보더라도 저항방식은 오랜 혁명전통에 따른 것으로, 거기엔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 1871년 빠리꼬뮌의 바리케이드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장한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상상력 간 긴장이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그 운동목표는 새로운 사회변혁이 일국적 차원에서 가능하리라는 막연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기에 내내 모종의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 결과 68운동의 저항은 점차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68운동의 역사학자 길혀홀타이(I. Gilcher-Holtey)는 급진성과 폭력성에서 비롯된 갈등이 운동의 붕괴에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운동가들 내에 좌절감이 확산되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절정이었던 5월이 지나고 치러진 6월의 선거는 오히려 드골주의자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결국 폭력/비폭력 여부가 운동세력 내에 갈등지점으로 잠복해 있었고, 운동은 끝내 분열,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에 걸렸다. 그 좌절로 인해 일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다" 같은 냉소가 퍼지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68운동은 흔히 실패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크게 바꾼 혁명으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구좌파 모두를 겨냥했던 이 운동은 한편으로 체제 내에 포섭되어 길들여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 체제 전반에 스며들어 의미있는 사회변화, 더 나아가 세계체제의 변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 운동에서 나온 새로운 감수성은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낳고 참여민주주의를 한 단계 비약시킨 것이 사실이다.

    촛불항쟁, 시장만능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촛불항쟁과의 결정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좀 싱거워진 셈이다. 우선 촛불항쟁의 이념적 토대가 68운동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 요구는 곧 다수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기에, 전혀 급진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68운동은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운동으로, 촛불항쟁은 온건한 민주주의 또는 혹자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민족주의’ 운동으로 대비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촛불항쟁의 밑바닥에는 탐욕스런 시장만능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건강한 삶이 위태로워진 시대에 맞서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은 무척 긴요하다.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보통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런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무력해지지 않고 제동을 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직 급진주의만이 변혁적인 것은 아니며, 현 세계체제의 제약 하에서는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중도적이면서도 변혁적인 노선이 가능하고 때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지구 차원의 민주주의에도 기여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촛불항쟁만 하더라도 이미 미국사회 내의 쇠고기 안전에 경종을 울린 바가 있고, 앞으로 동물성 사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간다면 세계 차원의 생태적 자각을 일깨우는 데 일조할 가능성도 있는 운동이다.

    현재 우리 운동은 소위 ‘5대 의제'(건강보험·공기업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교육자율화, 대운하, 공영방송)뿐 아니라 한층 진보적인 의제를 포함한 다양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는데, 이들 과제의 해결 하나하나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동시에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얼마간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68혁명과 촛불항쟁은 아주 다른 방식과 정도로 자본주의 세계의 해악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불행이라 할지 행운이라 할지 우리에게는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 불교에서는 방해하는 인연, 즉 내게 비록 해를 입히지만 나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원(願)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존재를 ‘역행(逆行) 보살’이라 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행 보살’이다. 대통령은 하필이면 의식주, 건강, 환경 등 하나같이 생명과 인권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만 골라 하겠다는 태세이다. 이를 제어하는 일이 앞으로 시급하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생명 그리고 인권의 근본문제에 관해 판에 박힌 공부가 아닌, 실질적인 공부와 수행을 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뼈저린’ 일이지만, 이번에 그는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에 목매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항쟁

    촛불항쟁은 그 평화적 시위양태로 볼 때 68혁명과 비교할 것도 없이 이미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적 사건이다. 우선 촛불시위 주체들의 행동에는 68혁명의 운동가들과 달리 과거에 대한 얽매임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80년 광주와 87년 6·10항쟁도 추억의 모델이 아니며,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 2004년 대통령탄핵 반대운동 때에 비해서도 그 양상은 두드러진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소통과 연대였다.

    이를 통해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와 높은 토론문화가 가능했고, ‘거리의 정치’와 ‘싸이버공간 정치’의 결합은 68혁명을 비롯한 그전의 어떤 운동보다도 수준 높은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탈중심적 성격 또한 뚜렷한데, 이제 운동 지도자들 대신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헌신적인 도우미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같은 지도부 부재가 과연 어느 때나 바람직할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이 현상 자체는 참으로 새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대규모 인파가 아무 사고 없이 밤새도록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것, 또 두달이 넘도록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세계 역사 어디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대단한 것은 이것이 때때로 경찰의 자극과 도발을 견뎌낸 것이라는 점이다.

    제발 좀 변질되었으면, 제발 좀 폭력이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강박은 이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중의 울화를 돋우고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을 놓는 세력은 낡은 패러다임의 전선을 상상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중이 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촛불의 정치는 68혁명이 걸려든 고립화의 덫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68의 패배와 좌절로 인해 자연스레 강화된 정당정치 수렴론과 대립된다는 점에서, 68 패배의 주요 원인과 주요 결과의 덫 양자를 피해가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운동의 정치를 제도적 후진성의 증거로 간주하고 정당정치로의 수렴을 주장하는 우리 지식계 일각의 논의는 68혁명의 좌절로 인한 순치(馴致)를 선진성의 징표로 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촛불항쟁이 국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평화시위를 통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운동이라면, 이제 68운동과 촛불항쟁은 다른 면이 두드러진다. 타리크 알리의 《1968―거리행진》(1968: Marching in the Streets)의 우리말 제목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68에는 아주 적확한 것이지만, 우리 앞에 분노의 나날만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68혁명 때와 정반대로 정부가 오히려 ‘명박산성’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7월 5일 국민승리선언 이후로 정부의 벽창호식 강경대응은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스스로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훼손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촛불의 승리를 인정하기보다 무력화하기 위해 전선을 아예 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국민이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다가 허탈과 분노로 지치거나 고립되기를 바라는 저열한 기획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미 이겼노라’는 국민승리선언은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지 말고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바탕으로 좀더 느긋하고 유쾌한 새 단계의 싸움으로 나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더구나 촛불항쟁이 세계사적으로도 선진적인 아름다운 사건이 될 조짐임을 자각한다면, 더 즐겁게 싸우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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