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원청 사용자성 인정 판결"
        2008년 07월 11일 11: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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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크게 주목된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위장도급 방식을 통해 정규직이 아닌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해왔던 원청회사 사용자들의 행위에 제동을 거는 핵심적인 판결이다.

    7월 10일 대법원 제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금속노조 울산지부 용인기업지회 신기철외 29명이 원청회사인 현대미포조선을 상대로 낸 ‘종업원지위확인 소송 선고’에서 용인기업은 현대미포조선의 ‘위장도급’이며, 용인기업 노동자들은 현대미포조선과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용인기업은 형식적으로는 피고 회사(현대미포조선)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소속 근로자들인 원고들로부터 노무를 제공받아 자신의 사업을 수행한 것과 같은 외관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채, 피고 회사의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이라며 사실상의 위장도급임을 분명히 했다.

       
      ▲사진=금속노조
     

    이어 “피고 회사(현대미포조선)이 원고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원고들과 피고 회사 사이에는 직접 피고 회사가 원고들을 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와 같은 판단으로 울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에서 내린 하급심 판결에 대해 “원심의 판단에는 외형상 도급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 수급인의 근로자와 명목상의 도급인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있는 것으로 평가하여야 할 근로관계의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판단을 요약하면 현대미포조선이 하청업체인 용인기업과 체결한 도급계약은 ‘위장도급계약’에 불과하고 신기철외 29명의 노동자들은 원청회사인 현대미포조선과 채용당시부터 근로계약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현대미포조선과 용인기업이 체결한 도급계약이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는 것에 대해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채용, 승진, 징계에 관한 실질적인 권한 행사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 ▲임금 등 제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 등을 이유로 들었다.

    업체폐업으로 해고된 지 5년 6개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인 용인기업 노동자 30명은 선박엔진 열교환기와 밸브의 검사 수리 업무를 해왔다. 현대미포조선은 2003년 1월 31일 하청업체 폐업으로 이들을 모두 해고했고, 신기철 외 29명은 울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에 ‘종업원지위확인소송’을 제출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 사건은 다시 부산고등법원으로 돌아가게 됐으며, 신기철 조합원을 포함해 30명은 해고된 지 5년 6개월만에 용인기업이 아닌 현대미포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법원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에 대해 엇갈린 판결을 해왔다. 2007년 6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김준규 조합원 등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냈으나, 울산에서는 현대차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낸 소송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엇갈린 하급 판결 대법원이 최종 정리

    하급심에서 엇갈린 판결이 계속되자 대법원은 지난 2008년 7월 2일 불법파견에 옛 파견법 6조 3항 직접고용간주 조항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공개변론을 여는 등 간접고용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은 공청회 이후 나온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이후 판결을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1000일이 넘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300일이 되어가는 코스콤, 3년을 넘어선 KTX 여승무원 투쟁에서 볼 수 있듯이 원청회사는 파견, 용역, 도급 등의 이름으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해 엄청난 이익을 남기면서도 노동법상 책임을 회피해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확산되는 간접고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원청의 책임을 확인한 판결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등 비슷한 사례의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자동차 1만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집단소송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민주노총 권두섭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제조업 사내하청에서 부문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원청사업주의 사용자 책임 회피에 대하여 일정한 경종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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