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시기가 왔다"
    2008년 07월 09일 06: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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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부터 이명박 정권이나 우리들에게 공통된 관심사가 하나 있었다. 촛불이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이명박 정권도 오래 버티고 있지만, 촛불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모든 사물은 변증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하지만, 촛불이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이명박 정권도 적재적소에 사고를 쳐왔다. 반대로 보면 이명박 정권이 오래 버티도록 촛불도 사그라들었다 다시 타올랐다를 반복하고 있다.

한계가 가까워 온 것은 사실이다. 정권이나 촛불이나 마찬가지로. 촛불은 지쳐간다. 지치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거다. 벌써 자정을 넘기는 거리시위만 한 달째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정말 많이 지쳐 있는 시위 참가자들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촛불도 이명박도 지쳐간다

어느 시민의 인터뷰 “지치고 외로웠는데 신부님들이 ‘우리가 배후가 되어 드리겠다’라고 하는 말을 들으며 눈물이 쏟아졌어요.” 냉철한 운동권들조차 감동을 받았었다.

촛불이 지친 만큼 정권도 지쳐가고 있다. 정권의 방패막이 경찰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사실 경찰이 지치고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시위대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자칫 이성을 잃은 경찰들에 의해 6월 28일보다 더 심각한 유혈폭력진압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병렬 열사 민주시민장, 6월 14일 (사진=노동과 세계)
 

이명박도 지쳤다. 재협상과 내각총사퇴만 빼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다 내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이 투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남기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정국을 주도하는 배후가 있었다면 맘먹기에 따라 상당한 성과를 남기고 정리할 수도 있었다. 이제 양자 모두에게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다.

촛불들은 잠시 멈칫했던 2주를 딛고 다시 일어났다. 6월 28일을 딛고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로 인해 재도약한 촛불은 7월 5일 다시 수십만 명을 결집시켰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쟁을 시작할 것인지, 시민들이 계속 따라줄지도 모른 채 기약 없는 재협상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아직까지 대책위든, 민주노총이든 어느 누구도 정권퇴진 투쟁을 하지는 않았다. “퇴진”이라는 구호를 건다고 퇴진투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조그마한 사업장에서도 “사장 퇴진” 투쟁을 하려면 구체적인 전술과 프로그램, 치밀한 조직력을 가지고 시작한다.

정권에게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고시는 강행했고 관보까지 게재했다. 그러나 촛불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7월 5일을 지나 촛불이 꺼진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겠지만 (사실 이렇게 된다 해도 정권이 이긴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대통령이 사과를 두 번이나 했고 물, 전기, 가스, 건보의 민영화를 포기했고, 대운하를 포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바꾸겠지만…)

촛불이 계속 타오른다면 이명박 정권은 “정말 국민과 맞장을 뜰 것인가 아니면 항복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정국이 촛불의 승리로 끝나든, 이명박의 승리로 끝나든 관계없이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최소한 서울이라는 공간)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그것에 이름을 프랑스 언론처럼 ‘촛불민주주의’라고 붙이든, 사회학자들처럼 ‘네트워크민주주의’라고 붙이던 관계없이 온오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은 것이다.

이 정국이 정리된 이후라도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하거나,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통제하지 않는 이상 촛불은 언제든 다시 타오를 것이다. 이병박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포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고, 국가권력이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또는 장악할 수는 있겠지만 단시간에 되지 않는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타오를 촛불을 얼마만큼의 규모로 어떻게 불붙일 것인지,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남겨지는 숙제가 될 것이다. 

불가능을 뛰어넘은 촛불 미래 예측은 불가능

촛불은 이명박 정권이 재협상을 선언하지 않는 한 휴가철 직전까지는 갈 것이다. 휴가철이 최대의 변수이다. 그리고 정권은 이때까지 기다려 볼 의도인 것 같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날까? 단언할 수 없다. 단언해서는 안 된다. 진화하는 촛불의 앞길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슨 아이디어가 튀어 나올지, 초중고의 방학이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 모른다.

우리가 노하우로 쌓아 왔던 모든 불가능을 촛불은 뛰어넘었다. 평일 저녁 대규모 집회를 성사시켰다. 연일 계속되는 야간 가두시위를 성사시켰다. 72시간 국민행동이라는 ‘말도 안 되는’ 집회를 성사시켰다.

비가 오는 날 촛불이 줄었다고 청와대가 안도하면 “비 오잖아 빙신아”라는 댓글이 달리고 다음날 여지없이 수만 명이 모여들었다. 가두시위가 시작되면 참여자가 줄어드는 관례를 뛰어 넘어 참가자가 늘어났다.

촛불집회 때마다 걷는 모금은 아마 수억 원을 넘겼을 것이다. 물론 음향을 설치하고 초를 사고, 이병렬 열사의 치료비와 장례비로 쓰고, 아직 병원에 있는 김경철 님의 치료비, 가두시위에서 부상당한 수많은 시민들의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액수이지만. 촛불은 이 모든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었다.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갈 수 없다

장문에 걸쳐 상황을 살펴 보았다. 글이 길어진 이유는 체계적이고 심화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 그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난 두 달간을 돌이켜보면 몇 가지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는 앞서갈 수 없다. 우리의 체질을 바꾸기 전까지는…”이다. 지금껏 써 온 내용 그대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의 다양성과 자발성, 창조성은 이미 우리를 훨씬 앞질러 가고 있기 때문에, 다양성을 수용하지도 못하고 자발적이지도 못하면서 획일적인 우리의 조직(또는 우리 자신)은 절대로 이 정국을 주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앞으로 우리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이와 유사한 정국이 다시 열린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의미이다.

조금 더 살펴보자. 촛불의 변화는 놀라웠다. 많은 이들이 “촛불은 진화한다”라고 주장할 만큼. 5월 2(토)일 시작된 촛불은 1,700개 단체로 이루어진 대책위원회 구성을 촉발시켰다.

배회하는 노동운동가들

1차 평가 지점은 5월 10일(토)로 볼 수 있다.

오프라인 체계(대책위)가 막 구축된 시점에서 5월 9일(토) 촛불문화제는 많은 이들의 관심거리였다. 이날 청계광장 주변에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배회하는 노동운동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조직실체도 없는 학생들의 시위가 1주일을 넘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눈빛이었다. 그러나 촛불은 “될 때까지 모이자”,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만들어 내며, 이들의 의문을 단숨에 뭉개버렸다.

이 1주일간 운수노조는 ‘운송거부’ 성명을 발표하고 공공노조 또한 “어린이집, 병원, 학교 급식거부”를 선언하며 고분 분투했지만 조직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화물연대 서울경기지부의 파업 출정식 (사진=노동과 세계)
 

이 시기에 노동조합이 했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운수노조의 수송거부에 대한 폭발적 지지로 열려진 공간을 통해 각 노동조합들은 공격적인 기자회견을 조직했어야 한다. 공공연맹과 민주노총은 운수노조와 공공노조의 성명을 묶고, 항공(조종사 포함)노조의 운송거부동참과 지하철, 발전 등 대규모 노조들의 조직적 운송거부 참여 등을 선언했어야 한다.

“일단 지르고 보자”라는 전술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조직역량을 동원해 항만과 공항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이것은 빅뉴스가 될 수 있었고 5월 9일 촛불문화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두 배 이상 더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틀에 박힌 성명서 한 장을 발표하고 말았다.

그리고 조합원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었다. 운수(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얻었듯, 조합원들에게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호를 받게 해주어야 했다. 노동조합의 조끼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게 해주어야 했다.

‘빅뉴스’ 못 주고 틀에 박힌 성명서만 발표한 노조

2차 평가 지점은 5월 24일(토)로 볼 수 있다.

10일 이후 2주 동안 오프라인의 주도권은 대책회의로 넘어왔다. 대책회의는 17일(토) 대중가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문화제를 이용해 집회동력을 꾸준히 확대해 왔고, 장관고시에 임박해 24일(토)을 승부처로 잡았다. 24일 집회는 온오프의 협동 속에 청계광장에서는 더 이상 집회를 지속할 수 없음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가두시위의 시작을 알렸다.

이 기간 동안 대책위는 결속력을 확보했다. 날로 확대되는 촛불집회의 규모와 언론의 관심은 제 세력들로 하여금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했다. 이 때부터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많은 조합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장간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네티즌으로서, 시민으로서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노동조합이 했어야 할 일 또한 명확했다. 선전전이다. 공공노조는 많은 역량을 투여해 선전을 해냈다. 아쉬운 것은 공공노조 외에 어떤 노동조합도 이것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몇몇 노동조합이 가끔 선전물 몇 장 배포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다함께는 매우 적극적으로 선전전을 해왔다.

그 결과 촛불문화제는 공공노조의 선전물로 넘쳐나고, 조직의 인지도가 급격하게 높아졌지만 더욱 폭넓은 의제를 선전하지 못했다. 서민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공공노조의 의제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이 포괄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한 다양한 선전과 폭로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그 대안은 자본주의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가능하다는 초석을 깔았어야 한다.

노조, 진보진영 투쟁 관성을 단숨에 깨버린 촛불

3차 평가 지점은 5월31일(토)로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노동조합과 진보진영의 투쟁방식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거나 시행령이 강행되면 투쟁이 종료되는 관성을 보여왔다. 촛불은 고시강행에 맞서 이러한 관성을 단숨에 깨버렸다.

어느 누구도 감히 장담하지 못했던 10만의 벽을 허물었다.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에게는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함이었지만, 네티즌들에게는 당연함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속 카페나 다음 아고라의 조회수와 댓글의 반응, 인터넷 여론을 만들어내고 지켜보면서 5월 30일 이전에 이미 그 결과를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네티즌 중의 일부는 더 많이 모이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24일 이후 1주일간 온오프는 장관고시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숨가쁘게 돌아갔다. 정권도 이전과 같은 무반응에서 벗어나 고시를 해놓고 관보게재를 연기하는 유연함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병렬 열사가 분신하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이 시기에 공공노조는 큰 실수를 했다. 선전전을 중단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조직과 대중조직 또한 가두시위에 올인했다. 선전이나 할 정국이 아니라면서. 그러나 선전전을 중단하면서까지 가두시위에 올인한 노동조합들이(공공노조를 포함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시위대에 얼마만큼의 인원을 보태 주었는가?

또 하나의 실수는 잠잠했던 관성이 또 살아났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국에서 “퇴진을 걸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탁상공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퇴진이냐 아니냐는 대표적인 상징일 뿐, 여러 회의에서 논쟁과 이견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에 대한 교육이나 선전 없이, 아님 조합원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범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아닌데, “퇴진”을 걸자는 주장의 근거가 촛불집회에 나가보면 누구나 다 퇴진을 외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들은 촛불들처럼 자발적이고 열정적이지도 않으면서, 상황판단과 생각의 수준에 있어서는 촛불들과 똑같이 즉자적이고 감정적이니, 답답할 뿐이다.”

2탄이 없었다

이 시기 우리가 할 일 또한 명확했다. 선전전의 질적 변화를 시도했어야 한다. 24일 이전까지 민영화의 부당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면, 이때부터는 신자유주의 질서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했어야 한다. 그리고 조합원 간담회와 교육을 시작했어야 한다. 민주노총을 강제하여 내부적으로는 전면적인 재조직화 작업, 외부적으로는 민주노총의 수없이 다양한 의제들을 종합적으로 선전해 냈어야 한다.

또한 진보진영의 역량을 결집하여 대언론 작업을 시작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하는 것이 “2탄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권에 대한 항쟁,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운동을 일으키기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는 부족한 의제였다.

정세를 분석해내고 언론을 포함한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검토하여 치밀하게 접근했어야 한다. PD수첩이 되었든, 일간지가 되었든, 아님 <오마이뉴스>에라도 2탄을 터뜨리도록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고 강제해내었어야 한다.

또 하나 아쉬운 것은 이병렬 열사의 투쟁을 확대시키지 못한 것이었다. 열사는 이용되었어야 한다. 이병렬 동지는 분명하게 “쇠고기 수입반대, 민영화 반대, 이명박 퇴진”을 내걸고 분신했다. 이 동지의 목적은 “나를 이용해서라도 세상을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뜻에 화답하지 못했다.

그 뜻에 화답하면 제2, 제3의 희생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확산시키지 말자는 것이면 차라리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열사를 이용하지 말자”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고 유언이 관철될 때까지 싸우자”는 주장은 아니다. 분신부터 장례까지 3주간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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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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