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쿡서 감동먹은 좌파 '배운 녀자'
        2008년 07월 09일 1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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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재미있는 건, 결정적인 순간에 저쪽 아저씨들이 꼭 자살골을 넣어 준다는 거다. 촛불정국 시작되고 나서 진보신당,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름 ‘밤의 대통령’이라는 명예로운 별칭도 얻었건만, 지지율은 참 지지리도 안 올랐다.

    결정적 순간에 자살꼴 넣어주는 아저씨들

    특수임무수행자회가 당사 한 번 ‘댕겨가시고’ 나서 지지율 2배로 껑충(6.9%), 후원금도 듬뿍, 당원도 2000명 급증! 선관위가 눈에 불을 켜고, 사전선거운동 하지 말라 어쩌라 하는 바람에 네티즌들 간신히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날짜만 알리던 중에 우리의 조갑제 아저씨, "주경복 교수 절대 찍지 말라"는 통에, 네티즌들은 그저 그 말만 웹상에서 하면 된다. “조갑제가 주경복을 찍지 말래요.” 이거 선거법 위반 아닐 거 같다.

    <조선일보>가 하고 많은 불매운동하는 까페들 가운데 콕 찍어서 82cook닷컴에 협박공문 보내는 바람에, 그날부터 82cook닷컴은 투지로 똘똘뭉친 여전사들의 성지가 되고 말았다. 협박공문 이후 약 1만5천 명 넘게 신규가입, 7월초 현재 12만5천 대군이란다.

       
      ▲조선일보의 불매운동 경고 공문에 항의하는 82COOK 회원들 (사진=82COOK 줌인줌아웃 ‘엉클티티’)
     

    ‘이런 게 있었어? 조선아 고맙다’ 하면서 82cook닷컴으로 우루루 몰려든 여자분들 가운데 나도 있었다. 요리하는 것도 보기와는 달리(남들이 다 그런다)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데도 빠지지 않으며, 이제 좀 살림의 지혜들도 익혀야 부엌에서 손발이 덜 고생하겠다 싶었는데, 마침 잘 됐네 했다.

    ‘조선아 너 참 고맙다’

    <레디앙>이나 전에 몸담고 있던 민주노동당 ‘당게’의 그 살벌하게 피 튀기는 진검승부의 장에 익숙해 있던 나는, 이 훈훈하다 못해 따뜻할 정도로 착한 익명의 웹공간이 있다는 것이 거의 믿어지지 않았다.

    눈 씻고 찾아봐도 악플(어쨌든 <레디앙> 수준의 악플은)은 없다. 다 존대말 꼬박꼬박 하고, 장난으로라도 욕하는 사람도, 고의적인 낚시질 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남편들, 아님 82cook닷컴 누님들이 궁금해서 ‘댕기러 온’ 총각들도 있지만, 이들도 분위기에 동화되어 샤방샤방한 말투를 구사한다.

    뭔 말을 해도 어깨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뜬금없는 얘기로 분위기 싸하게 만들어도, 사람 어색하지 않게 웃으면서 잘 이해해 준다. 과거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가입한 6월 20일 경부터는 자유게시판은 95% 촛불 이야기다.

    쇠고기 사태로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새롭게 한눈에 들어오신다는 아줌마. 못 ‘배운 녀자’들 땜에 속상하다는 하소연. 질기고 질긴 <조선일보> 끊기의 애환. 삼양라면 맛있게 끓이는 법. 주민소환제 요령까지.

    최근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도 올라왔다. 아마도 두 당 중 한 당에 가입을 신중히 고려 중이신 듯. 진보신당 당원이라는 사람과 민주노동당 지지자라는 사람의 답글이 나란히 올라왔다. 판세는 약간 진보신당 쪽으로 기울어 보인다.

    최고 인기남은 진중권, 송호창

    82COOK 최고의 인기남은 진중권이다. 그는 천재에다 미학자라서 지식도 감성도 풍부하단다. 어떤 분은 배용준 이후 처음으로 유명인(?)을 좋아한다는 고백도 하신다. 그 다음은 민변의 송호창 변호사. 이 분 나오시면 남편 분들이 모두 삐치신단다. 머리 좋아, 정의로와, 거기다 잘 생기기까지…. 요즘 ‘배운 녀자’들의 새로운 로망으로 떠오르셨다.

    그렇게 며칠째 82COOK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우리나라 아주머니들의 화려한 정치적 진화를 따라가던 중, 갑자기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글이 떡하니 올라온 것을 목격했다.

    제목은 “루이비통 가방 어디서 사면 좋은가요?” 집에 하나 있는데, 잘 안 쓰고, 이번에 남편이랑 유럽여행 가는데, 남편이 하나 사준다고 해서, 어느 나라에서 살까 고민 중이시란다. 그리고 어떤 스타일로 살지에 대한 조언까지 부탁하셨다.

    순간 이것은 알바의 글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금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배운녀자들의 성지에 찬물을 끼얹고자 한 누군가의 소행?

    아니나 다를까, 몇몇 댓글은 파리 샹젤리제 매장 어디가면, 하고 알려주시기도 하셨지만, 몇 분들은 핀잔을 주신 분도 계셨다. 철없다…, 된장녀의 투정…, 그럼 그렇지. 사람 마음은 역시 비슷하다니깐 하면서, 난 안심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루이비통, 된장녀? 다양성?

    “된장녀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어쩐지 판 깰려고 일부러 한 질문 같다”고. 그리고 맘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문득 새벽에 다시 눈을 뜬 나는 중독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82cook.com의 자유게시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루이비통 질문자를 가볍게 꾸짖은 댓글들은 이미 자진 삭제된 지 오래. 내 댓글만 남아서 온갖 구박을 다 받고 있었다. 서른 개가 넘는 댓글이 어떻게 루이비통 가방 질문한다고 사람을 면박 주냐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원래 루이비통 가방 질문,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던 데다”, “아무리 시국이 그렇다고 해도 일상적인 얘기 좀 했다고 비아냥거리면 그 질문하신 분이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겠냐”, “82cook의 생명은 다양성을 수용하는데 있다”

    다양성이란 단어에 뜨끔했다. ‘그래, 이분들에겐 이것도 다양성일 수 있었구나. 난 다양성에 목숨 거는 사람인데. 왜 난 이분들처럼 루이비똥 가방을 다양성으로 생각할 수 없었을까.’

    댓글 중 압권은, “이런 댓글 쓴 사람은 평생 명품 가방 하나 못 들 거다.” 바로 밑에 분은 이 말이 너무 심했다고 보셨는지, “그래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너무 심하다”고 화가 나신 위의 분을 타이르셨다. 바로 보셨다. 난 천으로 된 가방만 든다. 그게 많이 들어가면서 안 무거우니까.

    신입이어서 몰랐던 건가 보다. 여기 회원분들에게 루이비통 가방은 일상이었나 보다. 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꼬리를 탁 내리고 변명했다.

    “객관적으로 판을 깬 건 저인 것 같다. 신입이어서 예전 분위기가 어땠는지, 이런 질문이 일상적인 것이었는지 몰랐다. 한 열흘 정도 드나들면서 한 번도 못 본 종류의 질문이기에…. 하지만 파리 루이비통 매장의 주 고객이 한국, 일본사람인 거. 유학생들이 다단계 알바로 엮여서 루이비통 사주고, 루이비통 매장에서는 이 다단계 막으려고 한국 사람한테는 하나씩밖에, 혹은 인상 봐서 알바 같으면 아예 팔지 않는 부끄러운 광경을 보면서 이 메이커에 대한 사람들의 숭배를 좋게 볼 수 없다”라고 쓰고 씁쓸하게 내려왔다.

    ‘잠이 올 리 없지’… 82cook 중독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올 리 없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양성’을 이야기하면서 명품 숭배를 너그럽게 인정한다는 건 모순이다. 자기만의 안목이 있고,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들고 다니지도 않았던 명품을 또 하나 사겠다고, 어떤 스타일을 살지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루이비통 가방에 대한 질문이 올라왔는지, 이전 게시판을 들여다봤다. 당장 네 개의 글이 올라왔다. 그 중 하나는, 다음의 패션 전문 동호회 소울드레서에서 루이비통에 대한 불매운동과 광고압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중앙일보>에 루이비통이 광고를 게재했던 것이다. ‘우린 조선에 집중하는 것이 어떨까요? 중앙까지 하는 건 벅차다’는 등의 얘기가 댓글로 올라왔다. ‘으흠, 그래.’ 다른 배운녀자들은 불매운동도 한다는데, 여긴 지금 한가하게 그거 어디 가서 사는지 알려주기 바쁘다? 그건 좀 곤란한 거 아닌가. 조중동은 한 핏줄인데, 불매운동까진 못해도, 이렇게 산다고 광고까지 내고 다니는 건 좀….

    냅다 다시 문제의 그 질문을 찾아갔다. 이렇게 좋은 반격의 논거를 찾았는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 그런데 찾아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 질문자가 자진 삭제 한 거 같다. 이럴 수가.

    다들 자기 편 들어주는 글들만 남았는데 왜 그랬을까? 아니면 운영자가? 허탈. 그러나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싸움에 더 깊숙이 발을 들이미는 것 같아 두렵기도 했던, 루이비통과의 전쟁이 스윽 사라져주자, 비로소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하루 종일 루이비통 대전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녀들의 진화가 아직은 들쭉날쭉인 것일까, 아니면 내가 혼자서만 다양성을 부르짖었지, 결국은 편협했던 것일까. 어쨌든 존경과 애정을 담뿍 보내던 82COOK의 선배들에게 호통을 들은 뒤라, 정신적 외상이 며칠을 갔다.

    ‘생활은 정치고, 정치는 생활이거든요’

       
    ▲ 82COOK 6.10 촛불번개 (사진=82쿡 나라사랑모임)
     

    잠시 중독에서 헤어 나와 있다가 오늘 슬쩍 들어가 보니, 정치이슈를 17일부터 이슈토론방으로 분리한다는 운영자의 공지가 떴다. 그러면서 루이비통 사건을 슬쩍 언급하셨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 이런 이런. 이러면 안 되는데.’

    처음엔 찬성의견이 많았는데 뒤로 갈수록 압도적으로 반대의견이 우세다. 심지어는 그새 하룻만에 전향하신 분도 있다. “첨엔 찬성했는데, 듣고 보니 반댈세”, “일상은 정치고, 정치는 일상이라고. 일상과 정치 사이에 벽을 만들면, 결코 우리가 배운녀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저는 더 이상 예전의 제가 아니에요. 82COOK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분리한다면 실망하게 될 거에요’ 등등.

    82COOK닷컴은 요동치며 진화 중이다. 회원들 간 투표를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뜨겁게 타오르고 격렬하게 충돌하고, 민주주의의 시끄러움, 다 알면서 크게 실천하지 못하는 속터짐, 학교는 다닐 만큼 다녔어도 엉뚱한 소리만 하는 주변의 “못 배운 여자”들의 억장 무너지는 소리들…, 겪어내며 이 가파른 촛불정국을 힘차게 가로지르는 중이다.

    난 더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선배언니들의 진화를 따라가 볼 참이다. 맛집 소개 코너에도 내가 가본 맛난 음식점을 하나 소개했다. 늘 이 음식점을 만방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 풀었다. 며칠 동안 추천 하나 없길래 삐치기 직전이었는데 방금 전, 누가 추천을 꾸욱 눌러줘서 맘 풀렸다.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도 먹는 얘기, 속없는 남편, 맘을 알 수 없는 여친 얘기도 좀 올라오고 그럼 재미있겠다. 생활은 정치고, 정치는 생활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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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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