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 배후와 손익계산서
        2008년 07월 08일 12: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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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백자 원고지 150매의 장문의 이 글에서 필자는 촛불의 발생, 다양한 주체와 그들의 참여 원인, 촛불 정국의 손익계산, 노동운동이 얻어야 할 교훈 그리고 전망 등 촛불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입체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말한다. "섣불리 분석하지 말라"고.

    과거의 틀, 기존의 관성으로 뜯어보면 해답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 그러나 눈 앞에서 분명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현상들을 붙잡고, 필자는 심층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실천적 함의를 함께 고민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깃발을 내리고, 체질을 바꾸자" 그리고 "공부하고 소통하자"라고.

    필자는 또 촛불 정국의 와중에서 노동운동이 했어야 됐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차분하게 현장을 조직하되 그 결과를 ‘파업’에 가두지 말고, ‘깃발’ 아래로만 끌어들이려 하지 말아야 했다고 평가한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석하도록 해야 했다고 주장한다.

    누구를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는 이 글의 말미에서 필자는 "변화하는 세상을 주도하는 노동운동"으로 재도약하는데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목차

    1. 하나의 유령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다. 촛불이라는 유령이.
    2. 배후는 없다.
    3. 얻은 자와 잃은 자
    4. 하지만 배후는 있다!
       악마/신은 디테일에 있다. 
    5.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6. 촛불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갈 수 없다.
    7. 무엇을 할 것인가?
    8. 글을 맺으며

       
      ▲사진=레디앙
     

    하나의 유령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다. 촛불이라는 유령이

    한국, 수도 서울, 그 중심 서울시청과 세종로 사거리에 촛불이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이 유령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령이 아니다. 5월 2일 시작된 촛불집회가 어느덧 2달을 넘기고 촛불문화제의 차수가 60회를 넘기고 있다.

    촛불시민들은 5월 24일 이후 거의 매일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 달이 넘게 이어진 가두시위는 대부분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5월 말까지 주저하던 노동조합들은 6월 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움직이는 배후는 명백하다. 노동조합 집행부(또는 활동가들). 그러나 배후가 명백하고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노동조합은 아직 그 힘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총파업도이 정국에 영향을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진보적인 미디어활동가들, 네트워크학자들, 사회학자들, 언론인들은 촛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이들은 매일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토론하고, 연구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이들은 인터넷으로 한국의 촛불을 모니터링 하면서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언론들은 ‘촛불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권과 보수언론은 여전히 배후를 찾고 있다. 그리고 촛불을 끄기 위한 탄압을 시작했다.

    배후는 없다

    촛불시위에 배후는 누구인가? 촛불집회에 가장 많이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배후는 없다.

    촛불시위 초반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사건 중 하나가 ‘온라인 이명박 탄핵서명’이다. 이것을 시작한 이가 고등학생(아이디 안단테)이라는 것은 다 알려져 있다. 이병렬 열사의 장례식장에 이 친구가 조문을 왔다. 정말 선하고 여린 학생이었다.

    말주변도 없고 대화하는 법도 잘 모르는 이 학생은 돌아갈 때까지 30여분간 내내 표정이 어두웠다. 화가 나고 슬펐다고 했다. 장례식장에 다녀간 어느 누구도 이런 표정을 지었던 사람은 없다.

       
      ▲사진=레디앙
     

    이병렬 열사 하관식 때 안티이명박 카페의 젊은 자원봉사자 소녀들이 펑펑 울었다. 그들의 등을 토닥거리며 동료가 하는 말. “울지마. 우리가 이명박 끌어내리면 되잖아……” 지난주부터 촛불시위에 등장한 팻말과 구호. “기다려라! 초중고 방학이다!”

    배후는 없다. 설혹 배후가 있다 하더라도 안단테를, 초중고를, 젊은이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배후가 아니다. 그들의 자발성이다. 정열이다. 거침없는 젊음이다.

    섣부른 분석과 지도 말라

    섣불리 분석하지 말라!
    이명박과 정권, 보수언론들은 이 상황을 분석할 수 없다.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이 배후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가?(이 글에서 우리란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지칭한다.) 우리의 머리로도 이 상황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전통적인 정세분석방법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다. 참여해라. 함께 해라. 초심의 마음으로 돌아가 상황을 즐기고 느껴라. 유일한 길이다.

    섣불리 지도하지 말라!
    배후가 없이 여기까지 온 시민들(물론 노동조합의 활동가들도 시민이고 국민이다)을 지도할 수 있다고 보는가? 아직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이 촛불시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 정열을 끌고 갈 수 있다고 보는가? 오만이다. 민주노총 70만 대오를 앞에 세우고 뒤를 향해 수십만의 시민들을 향해 따라오라고 외치는 것도 아니면서……

    얻은 자와 잃은 자

    배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촛불정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단체들이 몇 개 있다. 참여연대, 진보연대, 안티이명박 카페, 다음 아고라, MBC 정도일 것이다.

    참여연대는 대책위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 이 상황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의 대부분이 박원석 공동상황실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책위의 인력과 실무 역량의 많은 부분을 진보연대가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오종렬 공동대표와 박석운 집행위원장 정도가 기자회견에 얼굴을 비칠 뿐, 그나마도 집회무대와 언론에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오랜 친분관계를 통해 역량을 투입하고 있지만 배후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대책위 자체가 하나의 조직이 주도할 수 없는 구성이기도 하다. 검찰이 진보연대를 배후로 지목하고 싶어 초반부터 주목했지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진보연대를 중심에 놓는 조직사건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령 ‘다음 아고라’

    안티이명박 카페(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회원수가 18만 7천명에 달하는 엽기적인 조직이다. 인터넷 카페(동호회) 중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자랑하는 이 단체는 참여연대나 진보연대와는 틀리게 노골적으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단체의 목적 자체가 이명박을 끌어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선명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 카페의 초기멤버들은 상당수가 (구)노사모에서 이어진 것으로 보여지나, 대부분의 회원들은 노사모와 관련이 없다.

    다음 아고라는 실체가 없으면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령이다. 다음 아고라가 없었다면 촛불정국이 이렇게 확산되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이어지지도 않았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 아고라 자체가 네트워크 안에 살고 있는 유령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전혀 새로운 각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촛불이 주목 받는 이유의 절반은 다음 아고라에 있다.

    이러한 유령조직의 깃발이 서울시내에 등장했다.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이것이 2008년 서울, 촛불의 대표적 상징이다.

    MBC는 PD수첩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물론 100분 토론도 커다란 역할을 했고, 각종 뉴스의 보도기조도 보이지 않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모두 동일한 이득을 보고 있지는 않다. 이 정국에서 무엇인가를 얻은 자들은 누구일까?

    재미를 본 곳들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지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냥 나열해 보자면 안티이명박, 참여연대, 아고라, MBC, KBS, 오마이뉴스, 다함께, 공공노조, 운수노조,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친박연대 등을 꼽을 수 있다.

    안티이명박은 촛불정국을 통해 회원을 10만 명 이상 늘렸다. 동호회의 회원수가 뭐 중요하냐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에서 파워는 회원 숫자에 절대적 영향력을 받는다. 전국 정모(노동운동 식으로는 집회)를 소집해 수천명을 모을 수 있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 조직의 성과가 (구)노사모에게 돌아갈지, 리버럴한 자유주의자들에게 돌아갈지, 아님 보다 나은 어디론가 갈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참여연대는 이제 대책회의 내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민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유명무실한 단체들이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1,700개 시민단체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다음 아고라는 무엇을 얻긴 얻었는데 누가 얻었는지가 모호하다. 다음이라는 인터넷 포털업체도 큰 이득을 보았고(정권에게 미움을 받아 세무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아고라를 주도하는 명망 있는 네티즌들도 이득을 보았고, 아고라 때문에 이득을 보게 된 단체들도 많고, 이득을 보려고 들락거리는 자들도 늘어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네트워크를 통한 세상의 변화와 네트워크의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음 아고라는 여전히 유령으로 보일 것이다.

    공공노조, 보이지 않는 최대 수혜자

    MBC, KBS는 공영방송에 대한 중요성을 확산시킨 성과를 남겼고, 시민들과 진보적인 활동가들에게 인지도를 높였다. 언론이나 방송이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 보다 더 큰 성과가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가장 득을 많이 본 언론이다. 그 중심에는 생중계가 있었다. 의사결정권자들의 과감한 선택과 이를 뒷받침한 이용자들의 자발적 시청료는 공중파 방송을 뛰어넘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변방언론 오마이뉴스를 중심언론으로 끌어올리는 대단한 성과를 남겼다. 최소한 네티즌들한테만큼은…… 물론 오마이뉴스 외에도 진보신당 칼라TV, 아프리카 등도 큰 성과를 챙겼다.

    다함께는 5월 말까지 촛불시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가장 큰 성과를 남겼다. 그 결과 하루 수천 장의 맞불이 판매되는 성과까지 남겼지만, 몇 번의 상황판단 오류로 인해 성과를 많이 까먹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함께가 이 정국의 최대 수혜자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 그만큼 열심히 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진=레디앙
     

    공공노조는 보이지 않는 최대 수혜자이다. 손 안대고 코 풀었다는 표현이 딱이다. 선전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싸우지도 않고 가스민영화는 철회되었다.(그래도 민영화 시도는 계속될 것이고, 앞으로 진짜 싸움이 남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는 가스를 팔지 않겠다는 말을 들으리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영화 식코 개봉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하긴 했지만 건강보험의 민영화도 큰 싸움 없이 막아냈다. 촛불집회 초반부에 대규모 선전전을 통해 이름도 많이 알렸다. 이제 꽤 많은 시민들이 공공노조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운수노조, 민노-진보신당, 친박연대도 남는 장사 

    운수노조 또한 큰 성과를 남겼다. ‘운송거부’라는 선택은 ‘노동자도 아닌 폭력이기주의집단 화물연대’라는 잘못된 국민여론을 순식간에 ‘촛불의 희망 화물연대’로 바꾸어 버렸다. 운수노조의 깃발은 어디를 가나 환영 받고 있다.

    5월 중순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부산집회는 언론의 관심과 시민들의 폭발적인 지지 속에 열렸고, 6월 초 화물연대의 파업은 조중동조차 비난 보도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파업의 결과가 만족스러운지는 조직내부에서 판단해야 하겠지만, 외부에서 볼 때 화물연대의 파업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적은 없어 보인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은 대선, 총선 참패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양측 모두 당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진중권의 칼라TV로 인해 심상정,노회찬 대표는 국회의원 못지 않은 지명도를 확보하게 되었고, TV 노출 빈도도 강기갑 의원에 필적하고 있다. 강기갑 의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끝으로 친박연대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대상이 친박연대이든, 한나라당 내부의 친박계든 모두 다. 초중반부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사람은 "이명박을 끌어내려달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어야 하는데…”라는 시민들의 반응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촛불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촛불정국을 통해 친박계의 입지는 넓어졌고 정치적인 성과도 많이 챙겨갔다.

    잃은 자들은 누구일까

    그렇다면 이 정국에서 무엇인가를 잃은 자들은 누구일까? 뭐 1순위는 이명박 정권일 테고…… 2순위는 한나라당일 것이다. 그 외에 뉴라이트세력, 조중동 등이 있을 테고, 통합민주당도 거론할 수 있다.

    통합민주당은 딱히 잃은 것은 없지만 딱히 얻은 것도 없다. 통합민주당의 지지율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싫지만 통합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 국민들의 여론인 것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뉴라이트, 조중동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반감이 확산되면서 일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대중의 힘은 아직 이들을 끝장내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인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끌어내릴 수도 있지만, 뉴라이트나 조중동은 그것조차 쉽지 않다. 뉴라이트와 조중동의 영향력 자체를 지속적으로 축소시키기 위한 운동 또는 행동이 고민되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자, 얻은 자, 잃은 자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여전히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공적만이 존재하는 정국이다. 촛불들이 외치는 모든 상대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고, 뉴라이트이고 조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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