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 같은 5년 반, 생매장 당한 세월"
        2008년 07월 15일 11: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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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례 당사자인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지회 40대 중반의 조합원 갑씨는 "법정투쟁을 겪으면서 사회의 모든 연결 고리가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엮여 있다고 느껴져  마치 생매장당하는 것 같았다"면서 "(이번 판결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아직 이름을 밝힐 수는 없어

    사측의 횡포에 가족이 너무 시달려, 또 사태가 해결되는 민감한 시기라 이름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갑씨이지만 15일 <레디앙>과 전화 인터뷰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는 "대법원도 비정규직 문제가 전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번 판결을 내린 것 같다"면서, "정식으로 복귀하면 원청 정규직 직원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같은 식구로서 당당하게 사장과 면담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우리 판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는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사진=금속노조
     

    – 대법 판결까지 5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 우선 소감이 어떤가?

    = 정말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아직도 실감이 나지않는다. 고법에서도 졌는데 과연 누가 이기라고 기대를 했겠는가? 그간의 법정투쟁을 겪으면서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고, 재판 결과를 사측에게 먼저 통보하는 행태 등을 보며 사회의 모든 연결 고리가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엮여있다고 느껴져 마치 생매장 당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대법 판결로 비로소 사람들이 우리 투쟁에 관심을 갖고 우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모두 일만 하며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었는데, 매번 죄인 같은 심정으로 가시방석에 누워 밤마다 잠도 못잤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이혼, 알콜 중독 등 힘든 투쟁 기간

    – 해고된 후 조합원들은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 조합원 30명의 미포조선 평균 근속은 20년 안팎이고, 평균 나이는 45세이다. 우리는 미포조선 초창기 멤버로 안해본 일이 없었고, 행여 비라도 많이 쏟아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몸과 마음을 다해 새벽에도 달려나가 그저 묵묵히 일만했다.

    기계를 많이 만지는 작업을 하다보니 모두 귀가 난청이 돼버려 해고를 당할 시에는 이미 다른 곳에 취직도 안되고 오갈 데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지켜낸 회사였는데 조직은 냉정했다. 당사자들 뿐 아니라 조합원들의 전 가족들까지도 사측의 압박과 횡포에 시달려 모두 크고 작게 가정에 금이 갔고, 아이들 학업이 일제히 중단됐다. 

    이혼으로 알콜 중독과 우울중으로 약물 치료를 받는 사람도 있었고,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외지를 떠돌며 일용직으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갔다.  과거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이제는 과거를 잊으려한다.

    –  미포조선과 유사한 사례가 제조업 현장에 만연해 있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울산의 다른 비정규직 사업장의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크게 영향을 받거나 동요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 같은 명백한 상황과 달리 요즘에는 도급과 원청과의 관계에 대해 사측이 확실히 선을 그어 간접 고용에 대한 피해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쓰는 사업장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무런 비전과 희망이 없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 20년을 일하면 뭐하나? 열심히 일한 장기근로자들에게는 인센티브를 주고 정규직화시키는 제도 등으로 뭔가 나아지는 미래와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선진국과 경쟁하는 쪽으로 가야지 노동자를 탄압하고 임금을 깍는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금속노조, 미포조선 노조 방문 예정

    –  대법 판결 후 사측의 반응이나 연락은 없었나?

    = 공식, 비공식적으로도 아직 연락이나 반응이 전혀 없다.  부산고법으로 환송조치 돼 정리되면 그때 뭔가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간 법정 소송 과정에서도 사측은 대법원의 판례가 나오면 따르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아마 요즘이 임단협 시기라서 거기에 매진하느라 분주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미포조선 정규직 노조에서도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조만간 금속노조가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사측에게 공문을 보내고 미포조선 노조를 방문할 계획이다. 

    –  대법원 판결 후 향후 어떤 계획인가?

    = 일단 부산고법으로 환송돼 정리되는 과정을 기다려야 한다. 고법 과정이 마무리되면, 그간 못받은 임금을 받는 것과 전원 원직 복직 문제가 남아 있다. 또 그간 조합원들의 전가족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도 보상을 요청할 예정이다.

    – 비슷한 사유로 싸우는 기륭, KTX 승무원, 코스콤 등의 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우리도 줄기차게 투쟁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서로 생활이 워낙 어렵다보니 동료간에 안보이는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  쉽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줄 수 있도록 단결해야 한다.

    물론 상황이 어려운 건 알지만 다른 어딘가에는 그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와 같은 좋은 판례들이 쏟아져나와 이제는 사회도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곧 알아줄 것이다.  아마 대법원도 비정규직 문제가 전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번 판결을 내린 것 같다.

    대학 중도 포기한 아이들 교육 시켜주고 싶어

    – 복귀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은가?

    = 정식으로 복귀하면 원청 정규직 직원이 그랬던것처럼 우리도 같은 식구로서 당당하게 사장과 면담하고 싶다.(웃음) 과거 우리는 용인기업이 폐업하기 전 사장 얼굴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수 차례 방문했었지만,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통로 자체가 완전히 차단됐다.

    대학을 중도 포기한 아이들의 교육을 마저 시켜 부모로서 역할도 하고 건강도 추스려 가족들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다. 또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와 다시는 우리와 같은 해고사태가 발생하지 않게하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저희도 그 동안 싸우면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명백한 증거들이 있어 대법까지는 기필코 끝까지 가자고 모두 마음을 먹었고, 그러다보니 마지막 희망의 문이 열렸다.

    대법까지 가는 세월과 과정이 너무 힘들었는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례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노동 문제만 전담하는 별도의 법원이 설치돼 시급한 노동 분쟁이 조속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사례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유사한 비정규직 판결에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라며 조금 욕심을 낸다면 우리 판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는 선례가 됐으면 좋겠다. 또 사측의 사고 전환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열심히 일을 한다면 뭔가 희망과 비전을 찾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 결국엔 사측도 여러 손실을 입어 서로가 동시에 상처를 입으며 피해자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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