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의 격렬함, 민족주의 & 민주주의
        2008년 07월 05일 09:0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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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는 뉴스가 연일 일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 역시 최근 바닥을 향하고 있다. 후쿠다 정권은 G8 정상회담을 주최하여 어떻게든 지지율을 회복하고자 부심하는 모습이다. 지지율의 측면에서 보자면, 한일 양국 정권은 닮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정세를 보고 있노라면, 이명박 정권의 정치 이념은 차라리 몇 년 전 고이즈미 정권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고이즈미 정권은 재임 기간 중 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점에서는 달라 보인다.

    이명박과 고이즈미

       
     
     

    고이즈미 정권은 어떻게 높은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던가. 그것은 국내외적으로 공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우선 나라 안에서는 여당 내부의 숙청을 단행했다. 자민당의 낡은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던 고참의원들을 ‘저항세력’이라 칭하며 개혁자로 등장했으며 또한 성공했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에 강한 의지를 보이면서 아시아 각국, 특히 남북한이나 중국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했다.

    그렇게 고이즈미는 아시아 안에서 일본은 고립시켜 놓고는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국민에게 설파했다. 그는 내정에서도 외교에서도 과감히 적과 맞서는 강한 리더의 면모를 연출했다.

    따라서 고이즈미 정권을 비판한 이들은 개혁의 적으로 간주되었으며, 그의 독단에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현재 일본사회는 고이즈미 정권이 밀어붙이 개혁의 폐해로 신산(酸)을 핥고 있다.

    한편 이명박 정권은 적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스스로가 국민의 적이 되어버린 듯한 인상이다. 친미·경제성장 노선은 고이즈미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미국을 따르는 모양새가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적을 만들어낸 고이즈미와 적이 된 이명박

    고이즈미 정권 역시 실상은 미국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지만 국민이 반발하지 않았던 까닭은 아시아를 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고립된 사정은 사실 고이즈미 수상 개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야기된 것이나, 그 고립감은 사회 전체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미국을 추종하는 태도를 받아들였다.

    매스컴의 보도를 보더라도, 고이즈미 수상의 재임 기간은 전후 일미관계가 가장 돈독했던 한 시기로 평가된다. 여러 매체는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의 절친한 관계를 되풀이해서 보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인들은 아시아 각국에서 일어나는 반일시위를 접하며 소외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아시아에서의 고립감을 미국과의 관계로 달랜다는 병리 현상이 고이즈미 정권을 향한 지지로 이어졌다.

    이명박과 고이즈미 두 사람의 정치적 수법은 일본에서는 정권에 대한 높은 지지, 그리고 한국에서 정권을 향한 강한 반발로 나타났다. 그 방향성을 보건대 사회적인 반응은 분명 정반대였다. 그러나 거기서 환기된 에너지의 질은 닮은 것이 아닐까.

    고이즈미 정권은 그 에너지를 능숙하게 동원했지만, 이명박 정권의 경우는 그 에너지가 역류하고 있다. 그 에너지를 내셔널리즘이라 명명한다 해도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 민중의 에너지와 내셔널리즘

    내셔널리즘은 종종 오해를 사지만 지배층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중 속에 잠재해 있다. 바깥에서 자극을 받으면 이따금 터져 나온다. 정서적이고 비합리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행방을 보인다.

    고이즈미 정권 시기 일본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은 몇 차례 분출했지만, 정권이 파놓은 ‘친구의 적’이라는 분단선으로 흘러들어 갔다. 무정형한 격렬한 흐름이 이윽고 꽉 짜인 정적인 흐름으로 회수되고 말았다.

    지금 한국에서 그 에너지는 민중에게 있다. 격렬함 그 자체로 말이다. 격렬한 민중의 에너지가 향후 어떤 모습으로 자기 전개를 해나갈지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한국 민중의 격렬한 에너지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는 1950년대에 내셔널리즘을 재고한 적이 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었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국가 내부 구심력을 높이면서 바깥을 향해서는 배타성을 지닌다는 기존의 내셔널리즘 개념으로는 한국전쟁이라는 사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은 국민국가라는 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반도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민족마저 가차 없이 갈라놓았다.

    일본사회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힘으로

    그때 한국의 내셔널리즘은 사멸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민주화를 향한 고난의 여정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에서 민중 속에 잠재해 있던 에너지는 고갈되는 법 없이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작용해왔다. 그 역사적 장면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는 안으로 웅크리고 바깥으로는 적대감을 표출하는 내셔널리즘과 달랐다. 한국의 운동은 내셔널리즘과 민주주의의 만남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머금고 있었다.

    물론 지금 한국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에너지를 내셔널리즘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 에너지를 반미라는 단순한 배타성으로 환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50년대에 통찰했듯이 내셔널리즘이 그런 양상을 보인다면 세계적인 맥락에서 의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분출하고 있는 힘이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연대를 향해 열린다면, 그것은 국경을 넘어 고이즈미 정권 이후 침전하고 응고되어 버린 일본사회의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문제는 이명박 정권 규탄에 머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곳 일본에서 거리로 흘러넘친 저 한국의 에너지를 주목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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