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 파도에 밀려 상황 더 절박"
        2008년 07월 04일 1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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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철을 맞아 어떤 이들은 물가와 들판에 천막을 치고 자연을 즐기지만, 어떤 이들은 ‘끝장 투쟁’을 위해 천막을 친다.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된 지난 1일. 기륭노동자가 끝장 단식 21일차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KTX 승무지부와 이랜드 노조도 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천막을 세웠다.

    이에 앞서 코스콤 비정규지부도 지난 3월 11일 폭력 침탈 후 같은 장소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다해본 이들은 ‘끝’이라고 호소하지만, ‘촛불 쓰나미’에밀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절박해져가고 있다.

    ‘촛불 쓰나미’에 밀려 상황 절박

    4일 다시 ‘거리’로 나선 이들을 만났지만, 분주히 갈길 재촉하는 여느 시민들에게 그들 각각의 목소리가 전달되기에는  너무 낮았다.

       
      ▲피켓 시위 중인 조합원들.(사진=김은성 기자)
     

    서울역 광장에는 KTX 승무지부 천막이 ‘또’ 세워졌다. 이젠 몇 번째인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360여명의 조합원들은 10분의 1인 3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번 천막은 ‘끝날 때까지’ 철거하지 않는다. 

    숨이 턱 막히는 매연을 내뿜는 도로변 옆 천막은 밤이 되면 노숙자 및 취객들과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 한다. 아침이면 천막 주변의 오바이트 및 각종 오물들을 치워내는게 승무원들의 첫 일과일 정도이다.

    이날 오후 승무원들을 잠깐 만나는 동안에도 한 취객이 천막을 건드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지나갔다. 때문에 밤에는 승무지부 천막 옆에 또 다른 천막을 치고 철도노조 남성 조합원들이 대기한다.  

    지난 6월 이철 사장에 이어 강경호 신임 사장이 취임했지만, 교섭은 고사하고 아직 첫 상견례 조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승무원들이 교섭을 촉구하며, ‘끝장투쟁’을 위해 천막을 세운 것이다.

    오미선 KTX 승무지부 대표는 "어떤 이들은 ‘너희들 취업할데가 없어 그러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수를 꼽기도 한다"면서, "지난 3년을 ‘한’이 아닌,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들려면 마무리를 잘하고싶다. 다시 결의를 모아 ‘나와의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천막을 세웠다"고 말했다.

    ‘나와의 싸움’을 위해

    가처분결정이 떨어져 서울역에 들어갈 수 없는 승무원들은 화사한 노란색 티를 입고 역 근방에서 방송 선전전과 1인 시위 등을 진행한다. 벌써 삼년 째 이건만 승무원들은 그녀들을 무심히 지나다니는 여느 시민들처럼 ‘투쟁’을 말하는데 여전히 수줍어하고 어색해했다. 또 애써 강한 갑옷으로 포장하려 하지도 않았다.

    오씨는 "노동운동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이곳을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를 ‘색안경’을 끼고 재단해 이질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정말 외롭다"면서, "세상은 저만치 막 가고 있는데, 마치 우리만 이 세상에 혼자 동떨어져 떠있는 섬같아 지치기도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모두가 하나같이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은 하는데, 정작 쇠고기 촛불이나 민주노총 총파업을 보면 여전히 남의 일일 뿐"이라며, "계속 장기화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이번 촛불 국면에서 국민에게 인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어야하지 않았나 싶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오씨는 선풍기마저도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 천막 안에서 진땀을 흘리며 "제아무리 절망속이라고 해도 찾아보면 반드시 또 다른 길은 생기지 않겠느냐?"며 웃으며 반문했다. 이날은 KTX승무지부 투쟁 857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랜드 텐트에 붙어 있는 현수막.(사진=김은성 기자)
     

    1년 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이랜드 상암점은 그 아우성의 흔적조차 없이 쇼핑하는 시민들로 평화롭다. 매번 이랜드 노조원과 홈에버를 분리하던 차벽도 완전히 철수했다. 잔뜩 벼르고 천막치기를 시도했으나 아무런 제재도 없고, 매번 꽁무뉘를 쫒던 정보과 형사도 찾아오지 않았다. ‘촛불 쓰나미’ 효과였다.

    정보과 형사도 나타나지 않는…

    ‘자체발광’ 미모의 이경옥(32)씨, 화끈수다로 배꼽빼는 박영숙(44)씨, 각종 먹을거리를 챙기는 윤수미(37)씨는 ‘미운 정’이 들었는지 경찰조차도 보이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다. 간혹 이들의 투쟁을 안타깝게 지켜본 ‘용역’이 이랜드 노조원들 얘기를 묶어 최근 출간된 인터뷰 르포집 구입을 문의하는 정도가 ‘끝장 천막’에 대한 반응의 전부이다.

    이랜드 노조는 오는 8월 경까지 진행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홈플러스 기업결합 심사 승인 후 홈에버 인수가 끝날 때까지 또 다시 대화를 기다려야 한다. 물론 교섭은 그간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노조 측은 홈플러스를 압박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알려내기 위한 문화제 및 영화제 등 다양한 투쟁전술을 고민 중에 있으나 힘이 부친다. 이와 관련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이번 총파업에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부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힘든 결단으로 총파업에 돌입한 만큼 정말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전제하고, "지난 1일부터 비정규직 법이 확대 시행되고, 신용보증기금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절박한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와 구조조정이 빠진 것은 결정적인 실수"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총파업의 결정적 실수"

    그는 "코스콤 폭력 침탈, 이랜드 노조 비판 후 교섭 결렬, 기륭 회장 경제인수행 동참 등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초이자 최악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 뒤에 자본이 있는 숨은 그림을 민주노총이 국민에게 드러내고, 촛불의제를 비정규직 문제로 확산시켜 횃불로 만드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목숨을 건 단식으로도 사회적 이슈화가 되지 않는데, 민주노총마저도 우리를 소외시킬 줄 몰랐다"면서, "곧 이 대통령이 한미 FTA나, 노동법 개악 등 사정없이 치고들어올 텐데 과연 누가 어떻게 싸울 수 있을지 막막하고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투사’가 되고 싶지 않은 조합원들은 당장 코 앞에 닥친 생활이 걱정이다. 파업 후 과도한 스트레스로 뇌경색을 얻은 박영숙씨가 "방학이 되면, 아이들 셋이 달려들어 수시로 텅빈 냉장고를 기웃거리며 먹거리를 찾을 텐데, 어찌 감당해야 할지 여름 방학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날은 이랜드 투쟁 377일이 되는 날이었다. 

       
      ▲사진=김은성 기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분주히 지나다니는 여의도 빌딩 숲. 여느 날 처럼 북과 박수 소리에 맞춰 코스콤 노동자들의 힘찬 함성이 여의도 증권 거래소의 아침을 깨웠다.

    그러는 와중에 개인파산자 신분으로 ‘하자 있는’ 사장에 선임돼 지난 1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코스콤 정연태 사장이 갑자기 등장해 말했다.(사진)

    급작스런 코스콤 사장 출현

    "여러분과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싶다. 새로운 사장이 오기 전까지 제가 운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하겠다. 이런 식의 농성말고 인간적으로 대화해서 7월 중 해결하도록 하자"

    순간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 마당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파업 투쟁을 벌인지 297일만에 사장과 직접하는 면담은 처음이었다. 또 그간 몇 차례 실무진과 외부에서 했던 교섭마저도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던 터였다.

    회사 앞 천막마저도 폭력적으로 침탈하고, 심지어 교섭위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용역 경비원을 고용해 왔던 사측이었으나, 이날은 노조 대표들이 사측의 ‘안내’ 를 받으며 정 사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예상치 못한 사장의 방문에 면담장에 앉아있으면서도 노조 대표자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법원 판결 의식한 행보인 듯"

    10여 분간 첫 면담을 진행한 끝에 이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서로 안을 준비해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같은 면담 결과를 알리자 천막 주변에서 기다리던 조합원들은 함성으로 화답했다.

    정인열 코스콤 부지부장은 "사측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앞이 깜깜했던 터널 속에서 무작정 달렸다면 이번 첫 면담은 마치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사측의 이같은 태도는 오는 18일 예정된 근로자 지위 존재확인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며, "만약 위장도급 판정이 날 경우 회사는 더 이상 발뺌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가 항소할 경우 긴 시간에 장사없듯 코스콤 투쟁의 해결도 요원해진다.

    코스콤 비정규지부 또한 가정의 가장들이 많아 당장 대학등록금이 없어 자녀가 입학 후 바로 휴학을 하고,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지 못하는 등 생계비 마련에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100여명으로 시작한 조합원들은 생계투쟁 등으로 주력부대 50여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동시에 인근 우리은행 콜센터 중규직(?) 직원들이 투쟁 기금을 모아주고, 인근 증권사 노조들이 연대를 표하는 등의 희망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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