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 가로지른 '침묵의 촛불'
        2008년 07월 02일 12: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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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촛불이 서울도심을 가로질렀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앞장 선 촛불대행진은 사제단의 당부 그대로 평화를 의미하는 침묵시위로 펼쳐졌다. ‘이명박은 물러가라’와 ‘협상무효 고시철회’의 함성이 지배하던 거리는 만 여명 시민들이 높게 든 촛불과 손 피켓이 대신했다.

       

      ▲촛불과 피켓을 높이 든 ‘침묵 시위대'(사진=정상근 기자)

     

    이날 미사는 6시 30분 준비미사를 거쳐 7시부터 서울교구의 나승규 신부의 주례로 이루어졌다. 나 신부는 “오늘 임채진 검찰총장이 정부정체성을 파괴하는 불순한 세력이 촛불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불순한 세력이 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대통령이 여중생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때

    주례를 보좌하던 김인국 신부는 “사제들이 서울광장을 누가 훔쳐갈까봐 사제들이 천막을 치고 밤을 지샜다”며 “그런 우리를 보며 꼬마 손을 잡고 와서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혀를 차고 가시는 분들도 계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하지만 어제는 정말 기쁜 밤을 보냈다. 비폭력은 인격의 키로 우리는 주먹으로 싸우지 말고 인격의 키로 싸워야 한다”며 “인격은 약한 자를 대하는 태도이고 인격자는 키가 작은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눈을 마주치는 것”이라며고 에둘러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또 “우리에겐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는 원로가 필요하다”며 “그 원로가 바로 촛불을 처음 들었던 여중생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 여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요구조건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오늘 아침 경찰 두 분이 찾아와 ‘신부님들 덕분에 우리 경찰가족이 두 달 만에 12시 안에 들어갔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며 “오늘도 사랑하는 전경들과, 경찰가족들과 행진하고 일찍 들어가자”며 행진 후 해산을 권했다.

    "침묵시위가 더 힘든 것 같아요"

    8시부터 행진이 시작되었다. 행진코스는 어제와 같은 숭례문 방향에서 명동을 거쳐 돌아오는 코스였다. 김 신부는 “오늘은 침묵시위를 할 것”이라며 “구호는 잠시 참고 따뜻한 눈으로 시민들을 바라봐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행진은 아무 말 없이 출발했고 구호 없이 도심을 누볐다. 중간 중간 가두 행진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시위대를 향해 시비를 걸어 언쟁도 있었지만 주변 시위대의 제지로 충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5명의 시민은 행진 중 종각으로 가서 강하게 농성하자고 주장했지만 시민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긴 촛불행렬은 1시간에 걸쳐 행진했으며 소공로를 통해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다. 직장인이라고 밝힌 최 모씨는 “침묵시위가 더 힘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힘들어도 비폭력 기조로 나가는 것이 맞다. 사제님들이 참여한 이후 촛불들도 더 힘을 얻고 있고 정당성도 우리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강경파들도 있었다. 행진 중간에 종각 쪽으로 가자던 한 시민은 “비폭력은 이미 우리가 사용했었지만 소용없었던 방법”이라며 “일요일처럼 게릴라성 산발시위가 필요하다. 시청광장에서 아무리 외쳐봤자 이명박은 듣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천주교 신도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9시 시청광장으로 돌아온 시민들은 사제단의 권고에 따라 9시 30분경 자진해산했다. 이들 중에는 5일, ‘100만 촛불항쟁’ 포스터를 한 묶음씩 들고 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청에 남아있는 시민들은 촛불로 ‘2MB OUT’, ‘조중동 OUT’이란 글씨를 만들었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시민들을 위해 김인국 신부가 한 어린이를 초대해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그 어린이는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불렀고 남은 시민들은 이에 맞춰 촛불을 흔들었다. 어린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어른들에게 “친하게 지내요”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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