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변 냉각탑 폭파 쇼, 무엇이 문제인가?
        2008년 07월 01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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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해결의 진전, 한국 정부의 부재 현상

    오랫동안 큰 진척이 보이지 않던 북핵 문제의 해결 과정에 있어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북한이 플루토늄의 총 추출량을 중심으로 신고서를 제출했고, 미국은 이에 화답해 적성국교역법 적용을 해제하며 의회에 테러지원국 삭제도 공식 통보했다. 그리고 27일에는 영변 핵 시설의 냉각탑이 폭파되는 이벤트도 있었다.

       
     
     

    그런데 폭파 현장에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등 미국 관리들은 보이는데 한국 관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관리만 없었던 것은 아니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관리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한국만 왕따 당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냉각탑 폭파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한국인데 남북관계가 불편해져 막상 한국 정부 관계자는 초청받지 못한 것이 사실인지, 북한이 6자회담의 각국 수석대표를 다 초청했으나 쇼에 놀아난다는 역풍이 두려워 모두들 참석하지 않은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현재의 진전에 대해 그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혹시 모를 역진을 최대한 막아내려고 하기 보다는 협상의 부족한 면을 오히려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부재 현상, 분명 문제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정부의 부재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정리하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향후 전개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및 동북아안보공동체 관련 포럼 등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포럼의 경우 3, 4자 논쟁도 있었는데 남북관계가 불편해질 경우 3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 한국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혹은 북한이 전통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북미평화협정’을 주장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경수로 등 핵시설 포기와 관련한 반대급부의 논의에 있어 소외되고 그 부담만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 핵 폐기와 동반한 북미, 북일 관계 진전이 상당히 이루어질 경우 북한에 대한 투자 러시 현상이 빚어질 때 한국이 오히려 소외됨으로써 경제적 이득도 놓치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부재 현상이 보여주는 대북 정책에서의 소외 현상 그 자체의 불편함과 함께, 이런 우려들이 꽤 설득력이 있어서인지 한나라당내에서도 대북 정책의 기조 등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핵을 가진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다가 핵 문제 해결 논의과정에서는 배제되고, 경수로 건설 등 부담만 졌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핵 문제 해결 및 그와 연동된 한반도 및 동북아평화체제 형성에 있어 적극적 행위자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많은 전문가들은 일단 6.15 및 10.4 공동성명과 합의문을 존중하고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라고 한다. 남북 간의 평화공존 및 화해협력의 기존 정책의 성과를 인정하고 그 기조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과연 그런 의견들을 수용할까? 촛불 집회의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뚝심(?)으로 보아 그럴 리가 없다는 분석 및 예측이 있는가 하면,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 사로잡히지 않고 국익이라는 잣대에 충실한 실용 정부라면 현재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예측이 갈리기는 하지만, 후자가 바람직하며 그래야 한다는 주장을 소위 중도적 인사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상당수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과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대안이자 주장일 수 있는가?

    기존 대북 정책의 한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의 한계로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들로는 첫째, 그것이 북핵 위기의 재연과 북한의 핵능력 증가,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했다는 것, 둘째, 북한 인권 문제가 해결의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 등이 있다.

    사실 핵 위기가 재연된 것은 한국의 대북 정책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탈냉전 이후 심화된 체제불안의 문제에 대한 북한의 국가안보 정책과 미국의 패권유지 정책의 충돌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의 관계 진전만으로는 안보와 평화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 사실은 한국도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무릅쓰고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의 꼬인 틀을 해결할 생각도 없었고, 북한도 말로는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면서도 한국에게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이른바 로드맵 등을 잘 설계해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목표와 해결 방식이 거의 유사한 중국과 공조하며 미국과 북한을 설득하는 데 만족해왔다. 그 와중에 북한 등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미연합훈련은 지속·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인정 등 한미동맹의 재편은 미국의 의도대로 거의 실행되었다.

    그리고 핵무기 개발 이전에도 지속되었던 한국군의 군비증강은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체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군사력을 통해 막겠다는 것이 핵 개발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북한 군부가 쉽게 그것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북한 인권의 경우 흔히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이동의 자유 등 자유권으로 등치되면서 그것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지금 당장 실현되기는 힘들다는 둥, 북한의 특수성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권리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는 둥의 대립이 있다.

    하지만 자유권 중 고문 등 자의적 폭력, 공개처형, 탈북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 혹독한 연좌제 등은 체제의 특성만으로 합리화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화해·협력 정책의 성과물로 흔히들 이야기하는 생존권에의 도움도 일시적인 구호 정책에 그쳤을 뿐, 구조적 문제는 거의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핵 문제 해결의 와중에 한편에서는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의 북한 현실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2세대 인권이라 하는 근로, 건강, 교육, 문화, 사회보장권 등을 포괄하는 사회권이나 3세대 인권이라 이야기되는 평화권, 발전권의 문제는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초기에는 당국간에 대화도 거의 끊긴 극심한 불신의 상황이었기에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내걸지 않는 것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뢰가 조금씩 쌓여가는 와중에도 한국 당국이 그것을 정책의 우선 순위, 혹은 중요 순위에 놓고 조용하고 줄기차게 노력을 해왔는지는 의문이다.

    혹자는 아직 그런 문제에 본격적인 힘을 쏟기에는 남북관계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고 반론을 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이라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왜 이런 한계는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지속되었는가?

    한계의 원인 찾기

    지난 10년 혹은 노태우 이후 20년간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전쟁 재발 방지와 화해·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 기반의 조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대북정책에의 호응도 기본적으로는 자신도 이런 기조하에 남북관계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내 진보진영 다수도 이에 대안적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전통적인 적대적 정책의 고수를 주장하는 수구적 세력과의 전선을 주장하며 정권의 그런 정책 기조에 기본적으로 찬동했다고 할 수 있다.

    동조의 논리 중에는 그 전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분단의 현상 유지, 국가안보 절대화 정책이라는 비판적 시각과 당시 정부의 정책은 그것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다는 판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기본적 정책은 동맹유지, 국방력 증강의 군사안보 기반 위에 경제를 중심으로 한 교류․협력 정책 추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도 북한 정권과의 평화공존 및 경제적 교류를 우선 추구하는 그런 기존의 정책의 궤를 따른다면, 이제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존 정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주장한다. 미국의 정책변화로 북한 정권과의 공존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으며, 경제적 교류도 핵 문제가 풀리는 것과 함께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안정적일 것인지는 의문이며, 무엇보다 그것으로 충분한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 단락에서 지적한 한계의 원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첫째, 대북정책의 기조에 깔린 국가안보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고와 정책이다. 북한은 탈냉전 이후, 특히 90년대 중반의 내외 위기와 부시 행정부의 압박 전략 속에서도 국가주권 및 체제를 지켰다. 그리고 숙원이었던 북미수교와 평화협정의 체결까지도 이룰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인민은 미국의 공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아에 의해서 수십만∼수백만이 목숨을 잃었다. 북·미간에 제네바합의가 타결된 직후의 상황이다. 인간 개개인의 안보를 위해서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국가주권 보호를 기치로 하는 국가안보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웅변해주는 사례이다.

       
     
     

    남북 모두 인간안보에 실패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인간안보에 있어 그 공포와 궁핍의 원인이 단지 외부의 적이나 그들의 경제적 봉쇄뿐만 아니라 공적인 폭력을 독점한 국가권력과 그들의 무능일 수 있음을 북한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쉽게 이야기해 국가안보라는 면에서는 아직 유보적 평가를 할 수 있으나 인간안보라는 면에서는 북한은 명백히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평가는 한국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내릴 수 있다. 1차 북핵 위기가 수습된 이후 한국은 비록 이따금씩 국지전이 있기는 했지만 전쟁의 공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특히 북한이 자국을 군사적으로 침공하여 점령하리라는 위협은 일부 노장층을 제외하고는 거의 느끼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정권 측에서도 남북 간의 전쟁 위협은 사라졌다고 선전했다. 핵실험 이후에 북한 측은 핵무기는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천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 내에서 상당수의 일반 시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의구심과 반감의 재연, 대북 정책에 대한 회의, 미국과의 안보동맹의 필요성이 재확산되는 것을 제어할 수는 없었다.

    앞서도 이야기한, 김대중 정부 이후에도 튼튼한 국가안보의 기반 위에 화해·협력의 추진이라는 명분하에 추진된 군비증강의 흐름이 그 이후 더욱 가속화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제동력이 현저히 약해졌다.

    군비증강에도 불구하고 비대칭적 전력 면에서의 격차는 오히려 심화되었지만, 그에 따른 위협의 극복을 위해서도 한미동맹은 불가피하다는 국가안보, 군사안보의 논리가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재강화되는 냉전 시대의 거울 이미지 효과(혹은 적대적 의존 관계)가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 어떤 이는 그것이 북한의 의도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 것이고 과도적 현상에 불과할 것이므로 국가안보 자체가 그다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국가안보의 상황 및 방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적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추진되는 군비증강은 단지 핵실험이라는 우발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화해·협력 정책의 추구 과정에서도 일관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책의 결과는 복지 등 사회적 안전장치 강화에 저해요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정책의 목표와 결과, 방법에 대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약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나의 삶이 해고의 공포와 저임금의 궁핍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서민들에게 남북간의 평화를 위한 투자는 당위적으로는 옳을지 모르나, 표를 던질 정책이 되기에는 매력을 많이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남북한 모두 국가안보와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나 한국 민중, 북한 인민의 인간안보 측면에서는 실패가 분명하다. 특히 민주사회인 한국의 경우 상대와의 평화를 추구한다면서도 그 평화정책의 수혜자이자 지지자인 시민대중의 평화와 안보에 기반한 사고의 부재는 우선 정책 지속의 동력 확보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국가안보 우선의 담론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위기의 재연시 이와 같은 상황은 거의 필연적이다.

    인간안보 부재가 평화통일정책 실패 원인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통일의 실질적 기반 조성 측면이다. 많은 이들이 대북정책의 목표로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야기하지만 그 실 내용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따지면 현실적 목표로서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세계시장에로의 개방을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이 바람직한 북한의 미래인가에 대해서는 회의할 수밖에 없다. 미국보다도 극심한 중국의 빈부격차를 고려한다면, 발전의 성과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가 진보 진영이 잊지 않아야 할 잣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북간 경제협력이 한국에게 경제적 성과를 가져다 주리라는 의견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이 지체되거나 경제적 성과가 아직 미미한 이유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 지속 등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낙관적으로 보아 그것이 해결되고 경제협력이 전면화되면 문제는 없을 것인가? 그것은 분명 일부 임계점에 다다른 중소기업 업종에게는 활로가 될 것이고, 물류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한국의 노동자 등에 직접적 이익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개혁․개방과 경제협력의 목표와 결과로 인민과 민중의 생활 개선이 빠지면 그 정책의 결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때 불평등이 심화되고, 이것은 다시 피로감의 증가와 함께 이질성을 부각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결론에 대신하여

    평화협정의 체결은 지금까지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지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존 정권에서 추진되던 대북 정책을 현실화시키는 실질적 기반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형성이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그것에만 머문다면 그리고 기존의 안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군비축소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기존 대북정책의 과정과 결과에 있어 북한 인민과 한국 시민의 배제, 그들에 대한 효과의 미미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화와 통일의 내적 기반 형성은 허약하거나 요원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지금까지의 대북 정책의 한계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남북 모두 국가안보론의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유격대 국가, 선군정치를 기치로 내건 북한이야 그렇다 치고, 민주화된 한국 특히 진보진영에서도 이런 정책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충분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말로는 평화에 대한 확대된 시각을 이야기하면서도 한반도의 평화는 전쟁 방지를 위한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거나 평화 및 안보, 통일정책에 있어 분석 수준과 목표로서 국가 우선성을 사실상 인정한 것 아닌가?

    이것은 평화 안보를 사고하는 데 있어 단지 군사적 위협이나 전쟁의 부재만을 평화나 안보로 생각하는 주류적 시각에서 자유롭지 않고, 대안적 시각에서 구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지 반추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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