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단, 시청 앞 단식 돌입
        2008년 06월 30일 09: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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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단식 기도에 들어간다. 사제단은 30일 “서울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국민들의 상처가 아물때까지 곡기를 끊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매일 저녁 7시 광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니 광장으로 집결해 달라”고 당부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미사 시작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사제단이 주최하는 ‘국민존엄을 선언하고 교만한 대통령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회의 및 미사’는 이날 당초 계획보다 1시간 20분여 늦은 7시 20분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사제단에서 소형 앰프를 준비했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자 급하게 대형 방송차량으로 교체했기 때문이다.

    전경 버스가 태평로 쪽을 가로막고 서울시가 갑자기 잔디 교체를 한다는 이유로 광장을 헤집어 흙바닥이 되는 등 불편한 점이 투성이었지만 시민들은 점점 모여들어 미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3만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진보신당 심상정, 노회찬 공동상임대표와 민주노동당 천영세 대표, 강기갑, 홍희덕 의원, 통합민주당 김근태, 천정배 의원,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속속 모여들었고 사제단과 함께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도 자리를 잡았다.

    미사는 성가와 함께 사제단이 손피켓을 들고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40대의 한 시민은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천주교 행사는 처음보는데, 그냥 지금까지 느꼈던 절망감, 고통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다”며 “이 참에 천주교를 믿어볼까”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 시민이 묵주를 손에 쥐고 미사를 드리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미사 주례에 나선 전종훈 사제단 대표는 “오늘 이자리는 국민이 주인임을 확인하는 자리”라며 “이 자리는 내가 주인임을 아주 간결하게 외쳤던 민주주의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 발원지를 지켜 우리 국민이 승리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올 수 있기를 주변 사람들과 다짐하는 의미로 기쁘게 평화의 인사를 나누자”고 말했다.

    전 신부는 기도를 드리면서도 “지난 20년 푸르게 가꾼 민주주의 나무가 한 지도자의 교만과 무능의 도끼날에 무참히 꺽이는 슬픈 참상을 지켜보며 괴로움 중에 미사를 도모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정자들이 사대주의에 굽신거리고 공권력이 국민을 거슬러 몽둥이를 마구 휘두르는 불의를 저지르고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이의 마음을 꾸짖어 회개로 이끄시고 국민에게 불의에 맞서 용감히 싸울 수 있도록 굳센 의지와 지혜를 갖게 해주소서”라고 기도를 올렸다.

    이어 전 신부는 ‘대통령의 힘과 교만함을 탄식함’이라는 성명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회개 및 보수언론의 공정보도를 촉구했다. 그는 △장관고시 철회 및 쇠고기 전면 재협상 △국민과의 대화 △언론의 왜곡보도 금지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 연행자 및 대책회의 구속자의 전원 석방 △국민들의 비폭력 시위를 요구했다.

    신도들과 시민들은 전 신부의 기도, 말 하나하나 ‘아멘’으로 응답했으며, 여러 차례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다소 차분한 분위기에서 미사를 보내다가도 봉헌성가를 부를 때는 경쾌하게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성가와 함께 ‘광야에서’와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을 부를 때는 한 손에는 촛불, 한 손에는 피켓을 들고 흔들기도 했다. “미사 매일하자”고 연호가 쏟아지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사제단 김인국 총무는 “미사가 끝나면 바로 가두행진을 시작하게 된다. 평화의 원칙을 부디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어 “촛불을 지키는 힘은 비폭력이며 평화가 깨지면 다시는 서울 광장을 되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교인들과 시민들.(사진=정상근 기자)
     

    이어 “남쪽으로 행진해 더이상 대통령을 찾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돌보지 않아서 소실된 남대문을 찾아갈 것으로 남대문의 참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행진을 준비했으며 이들은 남대문, 한국은행, 소공동, 을지로를 거쳐 광장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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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단 성명서 전문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 7,15)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하여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한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다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심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 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는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합니다.

    4. 과잉폭력 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께도 호소합니다. 촛불이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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