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광화문, 최악의 진압
    2008년 06월 29일 06: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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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였다. 소통이 막힌 광화문 일대는 폭력과 이에 따른 상흔만 낭자했다.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어린 여학생도, 시민도, 기자도 무차별 폭행과 묻지마 연행을 당했다.

‘6.28 반민주정권 심판 범국민대회’가 열린 28일 밤. 시민들은 반말을 했다는 이유로,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인도에서 시위를 지켜봤다는 이유 등으로 경찰청장 어청수가 예고한 ’80년대 진압 방식’으로 연행됐다. 대통령도 경찰청장도 미쳤다. 시민들 폭도로 몰아부치는 그들이야말로 폭군이었다.

   
  ▲28일 밤 서울시의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프레스센터 앞 소방전에서 물을 끌어와, 전경버스를 향해 물대포를 뿌리고 있다
 

평소 인도로 몰아내던 ‘강제 해산’이 아닌, ‘강제 진압’을 위한 최악의 진압 작전이었다. 시민들도 이젠 더 이상 ‘비폭력’을 연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으샤’로 추임새를 넣어주며, 충돌을 막는 예비군을 향해서도 ‘나서지 말라’ 고 항의했다.

우중 전투, 부상자 속출

특히, 이날은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시민과 경찰이 주고받은 공중투석전으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날 쉴새없이 가장 바쁘게 뛰어다닌 의료진들은 "부상자의 수가 사상 최다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에 따르면 새벽 3시까지 파악된 시민 부상자 수는 약 40여명이며, 경찰도 40여명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시민들을 자극 시키기 위해 ‘작심’이라도 한 듯 시민들을 향해 돌맹이, 쇠파이프, 신발, 소화기, 깨진 유리병 등을 마구던졌다. 이로 인해 시위 현장 곳곳에서는 난데없이 날아든 물체를 맞고 쓰러지는 시민들이 속출했고, 시민들은 기자들을 볼 때마다 경찰들이 던진 돌맹이 등을 보여주며 먼저 취재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오지수(23)씨는 “돌멩이 등을 던지는 것은 시위 진압 방법에도 나와있지 않은 불법 진압행위이며 경찰의 진압 방법이 명백히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해주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상은 기자도 비껴가지 않았다. 이날 시민과 대치 현장에 있던 한겨레,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MBC, 통일뉴스 등의 기자 20여명이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폭행과 돌맹이 등을 맞아 일부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전경들이 시민들을 향해 던진 것들. 그리고 전경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는 시민들.
 

이날 시민들은 종로를 거쳐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하지만 행진을 마치고 9시께 광화문에 도착한 5만여명의 시민들을 맞이한 건 형광색소 물대포와 무차별적인 소화기였다.

노란색, 분홍색 형광색소가 섞인 물대포는 전경차 위에서만 뿌려지는 평소와 달리 차 아래, 차 사이 틈새, 전경차 창문 등을 통해서 전방위적으로 뿌려졌으며, 수압 또한 점점 높아져 직격탄으로 잘못맞은 시민 중 일부는 목에 마비가 오고 실신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쉴새없이 뿌려대는 소화기 가루는 시민들을 질식하게 만들며 광화문 사거리 일대의 시야를 가려버렸다.

던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진 경찰

같은 시각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남아있던 시민들도 <동아일보> 앞에 세워진 차벽 앞에서 격렬하게 대치했다. 특히, 이곳의 시민들은 인근의 소화전에 호스를 연결해 경찰의 채증 카메라를 겨냥해 맞물대포를 발사했다. 전경들도 인근의 보도블럭 등 던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시민들을 향해 공격해, 이에 따른 시민들의 부상이 속출해 곳곳에서 피자국이 목격됐다.

12시께 광화문의 차벽이 시민들의 저항으로 뚫리는 순간 전경들이 쏟아져나와 순식간에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5만여명의 시민들을 인도 위로 몰아냈다. 수많은 인권 단체 관계자와 기자들이 있었지만, ‘의료진’을 애타게 찾는 함성과 고통스러운 비명, 곤봉으로 맞는 둔탁한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장완수씨(38)는 “경찰들은 오늘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곤봉까지 써가며 폭력을 가하는 등 ‘80년대 진압방식’을 도입한 것 같다”며 “시민들도 오늘 경찰의 ‘80년대 진압방식’에 맞게 대응한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광화문 진압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동아일보> 차벽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전경에게 무참히 맞으며 대한문까지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 일부는 인근의 플라스틱 의자와 식탁 등을 던지고 경찰과 맨몸으로 격렬한 육탄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방패와 곤봉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김길수씨(47)는 “이제 ‘비폭력의 한계’가 온 것 같다”며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한테 가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많은 시민들이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며 “비폭력의 기조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은 이런 경찰의 불법 폭력에 맞서 자기를 보호할 최소한의 방어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광화문 교보빌딩 뒤에도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시민들과의 대치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서울시청 앞 광장에 남아있던 시민들은 새벽 2시께 종로를 거쳐 광화문 사거리에 남아있는 대열로 합류해 밤새 이어진 폭우에도 아랑곳 없이 노래와 춤으로 흠뻑 젖은 몸을 녹이며 새벽을 맞이했다.

한편, 국민대책회의는 29일에도 촛불문화제를 이어갈 예정이며, 30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오후 6시 서울광장에서 ‘국민존엄을 선언하고 국가권력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 시국회의 및 미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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