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은 세상 모든 시민들을 열광시킬 모델
        2008년 06월 30일 04: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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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년 6월 26일 10시, 야후 프랑스-AP통신이 전하는 ‘한국’

    AP통신이 한국에 대해 전하는 슬라이드 사진

    AP : 이 미국 통신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최대규모의 통신사이다.

    26개의 사진들은 3가지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광우병 정국 : 21컷(80.77%)
    58주년을 맞은 6.25전쟁 : 2컷(7.69%)
    북핵 관련 : 3컷 (11.54%)

       
      ▲ 야후 프랑스에 실린 AP 보도사진의 일부
     

    광우병 정국

    1. 사진

    1. 사진

    A = 인물사진 : 21컷 중 3컷 (14.3%)
    정부의 미국산쇠고기 협상 담당자 : 3컷 중 3컷 (100%)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정치인, 학계, 시민사회단체 : 0 (0%)
    B = 시위사진 : 21컷 중 18컷 (85.71%)
    1. 군중사진 : 18컷 중 2컷 (11.11%)
    2. 경찰과 시위중인 시민의 대치 사진: 18컷중 16컷 (88.9%)
    시위하는 군중과 경찰의 대치 : 16컷중 6컷 (37.5%)
    시위하는 시민 1인과 경찰의 대치 :16컷중 10컷 (62.5%)
    폭력장면 : 16컷중 13컷 (81.2%)
    비폭력장면: 16컷중 3컷 (18.8%)
    경찰없이 평화시위중인 군중 장면 : 0컷 (0%)
    다양한 사회각층
    (학생, 아줌마, 수녀, 할머니 등)이 한데 모인 시위장면 : 0컷 (0%)
    서울 사진 : 18컷중 17컷 (5.5%)
    지방 사진 : 18컷중 1컷 (94.5%)

    2. 사진 설명

    AP의 서울 사진 17컷에 대한 설명
    O 청와대 근처까지 진출한 시위대 : 17컷중 6컷 (35.3%)
    O 청와대를 향해 가고 있는 시위대 : 17컷중 10컷 (58.8%)
    O 설명없는 사진 : 17컷중 1컷 (5.9%)
    시위대가 청와대를 공격할 목적을 가진 것처럼 묘사한 설명 17컷중 16컷(94.12%)
    다수의 비폭력 시위대를 묘사한 설명 : 0컷 (0%)

       
    ▲ 야후 프랑스에 실린 AP 보도사진의 일부
     

    3. 결론

    이 슬라이드 사진들을 본 독자들에게, 정보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반복적인 사진을 통해 글보다 더 빨리 전달된다. 따라서 이 사진들에 대한 의견은, 긴 고민 보다, 사진들을 통해 형성되는 첫 인상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AP의 사진들이 전하는 인상은 대략 이런 것이다. 이 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전체 국민들의 행동이 아니다.(게다가 지방에서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거의 대부분 몇몇 돌출적인 시민들의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 얼굴들이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본능적으로 우린 그들이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다행이도 경찰이 있어, 시민들을 그들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최고 권력을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다.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없다.(유일하게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사진마저도 바로 앞에 경찰과 대치하는 사진을 골랐다) 서울의 이 일부 광폭하고 무책임한 젊은이들을 제외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저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체 시민들은 물론이고, 정치인, 노조, 지식인, 예술가, 과학자 아무도.

    충동적이고 폭력적인 젊은이들?

    사진 밑에 달린 글들은 시위대의 공격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그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것은 그들의 청와대로의 진격을 방해하는 바리케이트를 무력으로 격파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청와대에 매우 근접해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현재하는 직접적인 위험 그 자체이다.

    뒤를 잇는 모든 설명 글은 모든 책임을 시위대에게 전가하고 있다. AP는 각 사진에 대한 설명에서 정부의 시각을 반복하고 있다. 시위대는 정부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 시위대는 반민주적 난동을 일삼는 도발자가 되어가고 있다.

    AP는, 전세계 어디서나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거대 미디어의 이미지에 걸맞게 현실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작업을 이 보도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AP는 독재자에 대한 전 국민들의 저항과 탁월한 직접민주주의를 구사하는 이 시민운동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정치,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독재자 2MB를 흥분한 폭도들로부터 정당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수호자로 묘사하면서, 상황을 정반대로 역전시키는데 성공했다.

    AP는 우리의 가여운 이명박 대통령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관용으로 상황을 대하고 있고, 일에 대한 넘치는 열정과 의지를 여전히 갖고 있다고 묘사한다. “대통령 이명박은 정국을 마비시키고 혼란을 자초하는 저항을 뛰어넘어 미래로 가자고 온 나라에 호소했다”고 AP는 적고 있다. AP는 2MB의 선동을 위한 탁월한 동반자다.

    결국, 간추리자면, AP의 보도 속엔
    정보 : 0%
    선동 : 100%
    중립성, 정직성 : 0%
    언론의 윤리 : 0%
    언론의 자유 : 0%

    덧붙이는 말

    AP는 뭔가 상당히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히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다.(대단한 숫자의 사진을 보라!)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더 능수능란한 거짓말을 하기 위한 새로운 수법에 불과하다 : 시민운동의 현실(예외적인 수준의 전국민적 동의, 모든 연령층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사회 분야의 참여, 1987년 6월 항쟁에서밖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통적인 정치적 지향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왜곡하고, 시민운동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전략은 이중적이다. 시민운동을 평가절하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양키 자본주의의 이익에 복무하는 하인에 불과한 무책임하고 독재적인 정권의 색깔을 숨기는 것이다.

    이는 선동의 탁월한 사례이다. 시민들이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강력한 운동을, 이 믿을 수 없는 놀라운 현장을 경험하지 않아, 그 현실에 대해 논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로서는 전혀 사건의 본질을 감지할 수 없게 하는 선동이다.

    수십 년 전부터 미국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식민지가 된 한국에서 발생한 역사상 그 전례를 찾기 힘든, 발랄하고 예기치 않은 이 사건은 저 광적인 신자유주의 독재에 억눌린 세상의 모든 시민들을 열광시킬 모델이 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시민들을 열광시킬 모델

    따라서 모든 정치권력과 언론, 경제 권력들에게, 이 시민운동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거나, 그것을 감추기 힘들 때엔, 본질을 철저히 왜곡하고 평가절하시키는 것은 절대적인 철칙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지구상의 신자유주의 권력은 그리하여, 한국의 놀라운 사례를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중이다. 이 사건이 그들의 억눌린 시민들을 깨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정치, 경제 권력은 여전히 1968년에 프랑스에서 발발하여 세계를 진동시켰던 시민운동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권력자들은 68혁명의 모든 흔적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프랑스의 사르코지는 공공연히 68혁명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며 그 유산들에 대한 파괴 계획을 언급해 왔다.

    분명 현재 진행되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프랑스의 68혁명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 초기의 미미한 출발, 예기치 않았고, 예측할 수도 없었던 갑작스런 도약, 정당과 거대 노조로부터의 독립성, 그 때와 같은 열정, 용기, 명석한 반전, 같은 활기, 환희, 우리의 삶을 훔치던 저 숨막히던 뚜껑을 열어 제끼는 행복, 때때로 반짝이는 유모어, 모든 세대에서 느껴지는 젊음, 어제 우리가 존중하던 것들에 대한 희열에 찬 도전.

    거짓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부당한 권력, 저 낡아빠진 위계, 돈과 권력에 대한 비굴한 존중, 예의범절과 사회적 규범의 속박, 특히, 우리로 하여금 그 무엇도 이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하게 하는 것은 없었던 숨막히던 바로 그 시점에서 이 두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68과 2008년 한국의 촛불은 닮아 있다.

    68과 2008년 한국의 촛불은 닮아 있다

    미국지상주의의 선전선동이 모든 생각을 정성스럽게 자물쇠 채워 놓고, 오직 소비라는 당근만이 모든 사람이 꿈꾸는 것이 되도록 조작된 사회에서, 정치경제 권력이 아직 68의 거대한 악몽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세상에서, 아직 완벽하게 모든 68의 흔적을 신자유주의의 불도우저 속에 밀어넣지 못한 상황에서, 지구 저편 작은 나라, 머릿 속 깊은 곳까지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이상이 각인된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시민들을 사로잡은 깨달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의 노예, 황금만능, 소비지상주의, 미국식 라이프스타일, 미국식 사고방식, 그들의 자아를 틀어막던 이 모든 조작된 이상 속에 자발적으로 굴복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이 된 기쁨을 표현하고 손가락으로 자유를 가리키며, 그들의 놀라운 집단적 힘을 발견하고 인간된 존엄을 회복한다.

    어제, 물신주의의 집단적 신드롬에 사로잡혔던 그들은 오늘, 그들의 존엄성과 인간성을 되찾고 동시에 하나의 진리를 발견한다. 이명박과 그의 공모자들은 국민들에게 죽음의 씨앗을 뿌리는 족속들이며, 그들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2MB들, 조지 부시들, 사르코지들, 버어마의 군부, 그들 이전에는 대처, 레이건, 클린턴, 블레어, 몬산토(미국에 있는 세계최대의 종자회사. 유전자조작곡물의 총본산), 엑손, 나이키, 피파, 삼성, 맥도날드, 디즈니 그리고 모든 다른 권력을 점한 그들은 모래로 채워진 천조각으로 만들어진 허접한 꼭두각시들이고 제도화된 조폭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걸어다니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우리의 삶을 훔치고 착취하며 축적한 산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돈은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한 거대한 도구들을 – 법과 미디어, 허수아비 민주주의, 비디오 게임, 소비, 축구, 교회- 구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들의 도구들은 우리, 돈 없는 자들이 가치도, 재능도 없는 하등한 존재임을 설득시키며, 결과적으로 돈 있는 자, 자칭 엘리트이며 신의 선택을 받은 그들을 존중하여야 함을 강제하기 위해 쓰인다. 실제론 모래만 가득한 천박한 존재일 뿐인 그들. 그들의 천조각을 터뜨리자.

                                                          * * *

    * 이 글의 필자 다니엘 꾸항(필명)은 한국에 거주한 적이 있는 68세대 프랑스인으로 최근 귀국해 현재는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는 6월초 촛불문화제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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