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에 '정치적 집단폭행', 왜?
    2008년 06월 27일 01: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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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PD수첩이 아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고 다시 조중동이다. 질문 하나. 돈(자본)과 힘(권력)을 움켜쥔 지배세력이 기존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비판하는 개인/집단을 물리적인/상징적인 방식을 동원하여 통제하는 것. 이것은 무엇일까? 정치적 폭력이다.

지금 PD수첩에 대해 겉으로는 보도의 정확성을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적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물리적 폭력행위자라면 조중동은 상징적 폭력행위자이다.

물리적 폭력과 상징적 폭력

   
  ▲김평호 /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PD수첩에 대한 폭력은 지난 4월 29일 방송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로부터 비롯된다. 그 프로그램의 내용을 한마디로 줄이면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으로부터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검역문제에, 또 광우병과 관련한 국민건강문제에 철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매우 상식적인 주장과 내용이 왜 문제인가? 말할 나위 없이 PD수첩이 아니라 그 어떤 방송 프로그램도 잘못이 있다면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 등은 PD수첩의 번역에 문제가 있다, 의도적인 편파/왜곡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전체를 두고 본다면 번역의 오류라는 것은 전혀 없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또 광우병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PD수첩이 사안을 의도적으로 과장했다는 말 역시 맞지 않는다. 더구나 유사한 이야기를 이미 조중동 스스로도 했고 농림수산부도 한 바 있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의 잘못은 지엽말단의 미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PD수첩은 지금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이 자행하는 정치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는 우선 PD수첩을 마녀로 낙인찍는 사냥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같은 마녀사냥이 가지는 자기최면의 효과이다.

즉 마구잡이 폭력을 휘두르는 사이 어느새 PD수첩이 이번 사태의 원흉이지 우리는 아니라는 거짓믿음에 이명박과 조중동은 도취되고 만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스스로를 용서한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 더욱 과격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우리들 책임이 아닌데 자꾸 책임을 물으니까.

이들은 앞으로 더 과격해질 것이다

정치적 폭력은 나쁜 것인가? 물론이다. 왜? 이성적 대화와 신뢰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성적 대화와 신뢰는 중요한가? 물론이다. 왜? 그것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언론은 중요한가? 물론이다. 왜? 그것은 언론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증진시키는 이성적 대화의 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중요한가? 물론이다. 왜? 그것은 사회적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신뢰에 바탕한 건강한 공동체의 삶을 이루어내는 가장 큰 책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는 PD수첩이 아니다. 문제는 갈등해소와 신뢰회복의 길을 끝내 거부하면서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물리적/상징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성숙도를 감안할 때 이들의 폭력은 외형적 양상만 다를 뿐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80년 광주의 전두환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아닌게 아니라 26일자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어청수 경찰청장은 ‘대책회의가 경찰의 진압을 과잉 폭력 진압이라고 얘기했는데 ‘대책위한테 진짜 80년대식 진압이 무엇인지 보여줄까’라는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그러면 왜 조중동은 이번에 언론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일까? 굉장히 중요한 연구 주제임에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몇 가지 가설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연구주제, ‘조중동은 언론인가’

기자들의 역량이 부족한 탓일까? 내부검열이 있기 때문일까? 서로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감시체제가 작동하는 것일까? 이념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것일까? 사장부터 간부들이 기자들을 그렇게 훈련시킬까? 애초 조중동은 신입기자를 선발할 때부터 특정한 방침이 있는 것일까?

이들 신문에는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만 살아남거나 승진하는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것일까? 특정사안별로 이들 간에 드러나지 않는 어떤 공조체제가 구축되어 있는 것일까? 이들 신문이 다져온 길고 긴 역사적 전통일까? 물론 약간의 예외가 있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그렇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3무로 요약된다. 무지와 무능, 그리고 (후안)무치함이다. 이들은 사실 정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 인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집단으로 보인다. 정치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공동체의 각종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를 없애면 모를까, 촛불집회에 찬반을 막론하고 참석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시민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최상위 10-20% 정도만을 의미할 뿐이다. 나머지 90-80%는 동원, 훈육, 더 심하게는 착취와 배제의 대상 정도로 여겨진다. 문제는 90-80%에 대한 폭력이 지속되면 사실 나머지 10-20%의 안전도 끝내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면서 그동안 비장의 무기를 갈고 닦은듯하더니 이들은 결국 3무의 집단임을 내보이고 있다. 비극이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의 말마따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해방이후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뜨는 집단이 바로 조중동이다.

촛불이 우리의 희망인 이유

해방 이후 60여년 넘게 대한민국을 명목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지배해온 수구/보수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대한민국으로서,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도 기가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촛불은 위대하다. 예측하기 어려운 놀라움으로 가득 찬 촛불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들의 일상에서 생활의 정치라는 방식으로 힘있게 작동할 것이다.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촛불의 힘은 이미 지난 6월 지자체 선거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이 힘은 앞으로 2년 후 지자체, 4년 후 국회, 그리고 그 해 대통령 선거에서 유감없이 발휘될 것이다.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촛불은 그래서 우리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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