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소수 과격파 아니라 모범시민"
        2008년 06월 27일 05: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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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미 쇠고기 위생조건 장관고시를 관보에 게재한 26일. 거리로 쏟아져나온 5만 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가 전쟁을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도 경찰은 살수차와 소화기를 쉴새없이 난사하며 광화문 사거리와 새문안교회 뒷길에서 시민들과 격렬하게 대치했다.

       
      ▲물대포 떄문에 물러갈 ‘물 같은’ 시민들이 아니다.(사진=김은성 기자)
     

    오후 9시 경에 40대 남성과 <민중의 소리> 사진 기자가 새문안 교회 뒤 좁은 골목에서 경찰과 대치 중 경찰이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응급 후송됐으며, 전경 또한 1명이 실신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김성철(50, 자영업)씨는 "정부가 갈 때까지 가보자고 국민에게 자존심 싸움을 거는 것 같다"면서 "국민을 자꾸만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는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전쟁은 시작됐다"며 비감하게 말했다. 

    평소와 달리 이날 시위는 이른 시간부터 격렬하게 시작됐으며, 민주당 의원들이 ‘인간 방패’를 하겠다며 시위대 앞에 나선 새벽 2시 경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날 시위에서는 두 개의 ‘인간띠’가 만들어졌다.

       
      ▲21세기 광화문 한 복판에서 토성을 쌓게 만든 ‘옛날식 정권’이 국민들을 뿔나게 만들고 있다.(사진=김은성 기자)
     

    하나는 광화문 흥국생명 앞 공사현장에서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 흙주머니를 나르는 인간띠이고, 또 하나는 새문안교회 뒤 경찰차를 밧줄로 끌어내리는 인간띠였다. 국민토성을 쌓기 위한 모래 트럭 반입이 불가능해지자 시민들은 홍국생명 앞 공사현장에서 맨손과 종이, 삽 등으로 흙을 파 인간띠를 통해 광화문 사거리까지 운반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국민 토성이 쌓이는 동안 새문안교회 뒷 길에서는 동시에 1천여명의 시민들이 경찰차에 밧줄을 묶고 끌어당기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방송 등을 통한 경찰의 협박과 소화기 및 살수차의 무차별 난사에도 불구하고 밧줄을 당기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만 갔다.

    이 과정에서 <동아일보> 사진기자가 밧줄을 당기는 시민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찍자 시민들은 동아일보 사진기자와 실랑이 끝에 카메라 메모리를 압수해 사진을 지웠다. 이아무개(30)씨는 "전경들이 시민들을 때리는 건 하나도 안 찍으면서 왜 우리 얼굴만 정면으로 찍느냐?"며 "그것 찍어서 경찰에게 넘기려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밧줄을 끌어당기던 사람들이 물대포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사진=김은성 기자)
     

    주변 시민들도 ‘전경 프락치 기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이상한 것 찍으려고 왔느냐?’며 <동아일보>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감을 드러냈다. 주변에 있던 한 시민은 "우리는 언론에서 떠드는 것처럼 강경파도 일부 과격파도 아니다. 모범시민 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과 직접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곳에서는 소화기와 살수차에서 뿌려지는 분말과 물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며, 허공에서는 생수통부터 시작해 돌멩이, 수건, 소주병, 까나리 액젓 등이 정신없이 날라다녀 순간 순간 사람을 긴장케 했다.

    그 과정에서 극소수의 흥분한 시위대는 쇠파이프나 대나무 등의 막대로 전경을 향해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어느 덧 물대포와 소화기에 적응이 됐는지 경찰의 공격에 차분하게 맞섰다.

       
      ▲물대포 방어무기의 진화.(사진=김은성 기자)
     

    사람들은 물대포에 파라솔과 은박 돗자리로 맞섰으며, 앞 사람의 등 뒤로 고개를 숙여가며 피해를 줄이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했다. 자정부터 경찰의 강제 해산이 시작돼 시민들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청계광장으로 밀려났다.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되려는 순간 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 의원 6명이 폭력 진압을 규탄하며 인간방패가 되겠다고 나섰다. 이날 민주당에서는 천정배, 손학규, 추미애 의원 등 30여명의 의원들이 촛불문화제에 다녀갔다. 6명 의원들은 시위대 앞에서 전경들을 향해  평화시위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민주당 의원들.(사진=김은성 기자)
     

    "지켜달라"며 응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노당은 연행하는데 왜 민주당은 가만히 있냐?", "너무 늦었다. 왜 이제 오는가?", "사진 찍으러 왔냐?"라는 등 따져묻는 사람들도 많았다.

    경찰과 의원이 대치하는 동안 청계광장 대치선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시민이 연행되자 이에 항의하던 안민석 의원 외 3명의 의원이 전경들로부터 끌려갔다 풀려나기도 했으며, 보좌관 1명은 연행됐다.

    경찰은 2시께 또 한번 강제 진압에 나서려 했으나 시민들과 의원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시민들을 시청 앞 광장까지 밀어내는 데 그쳤다. 그 후 시민들은 전경들에게 초코파이, 소세지 등을 나눠주고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새벽을 맞이했다.

    또 이날 시민들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앞에서 폐간을 촉구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나, 전경들이 두 신문사를 애워싸고 지켜 시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조선일보 앞에서 대기중인 전경을 보며 이경수(40)씨는 "이명박 정권은 국민이 아니라 전경이 지킨다. 이제는 화가 나다 못해 측은한 생각까지 든다"면서 혀를 찼다.

    이에 앞서 진행된 촛불문화제에서는 지난 25일 연행됐다가 풀려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무대에 올라 많은 박수를 받았다. 이 의원은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고시철폐와 협상 무효를 외쳤다고 범죄자냐, 내게도 11살 난 아들이 있어 어머니 된 심정으로 버스를 막은 것이 잘못이냐?"며 "국회의원이면 뭐 어때, 곧 풀려날 건데 일단 태워라고 말하는 게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라고 경찰을 규탄했다.

    한편, 국민대책회의는 이번 주말인 28, 29일에는 ‘1박2일 투쟁’ 형식으로 촛불문화제를 치르고, 민주노총의 총파업일인 7월 2일에는 집중촛불집회를, 5일에는 ‘100만 촛불대행진’을 개최할 예정이다. 또 당분간 촛불문화제의 성격을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재협상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으며, 오는 27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3차 국민대토론회’도 잠정적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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