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박 퇴진’을 외쳐야 되는 이유들
        2008년 06월 26일 06: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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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밤과 25일 새벽에 걸친 제2차 국민대토론회는 어수선했다. 행사 진행도, 토론 사회도, 토론자들의 발언도 어수선했다. 기술적으로 조금 더 정돈된 모습을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상황 자체가 어수선하니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국민대책회의가 준비한 토론거리는 여러 가지였지만, 사회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이야기는 ‘정권 퇴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를 맴돌았다. 시위 방식을 바꾸자든지, 선전을 어떻게 할지 하는 고민도 결국은 무엇을 목표로 한 시위이며, 무엇을 선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운수노조 정책실장 정호희와 고려대 학생 김지윤은 ‘정권 퇴진’을 강하게 주장했고, 생태지평 부소장 박진섭과 전농 정책위원장 이창한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민주노총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 목숨 걸고 막겠다. 패배해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패배주의가 물을 흐려서 지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이기고 있다. 승리를 두려워 말자”는 정호희의 발언은 촛불을 토론하는 장보다는 파업 결의대회에 훨씬 어울리는 한총련식 승리적 낙관주의처럼 보였다.

    말로는 ‘혁명’하고, 결국에는 ‘월급봉투 개량’만 하는 민주노총의 전통이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변화하길 간절히 염원한다.

    가장 조리 있게 이야기한 것은 김지윤과 ‘차 끊기기 전’인 1부 자유발언의 여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은 ‘정권 퇴진’을 주저하는 논리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남미 사례를 들고, 진보신당의 국민투표안을 비판했다. 모두 <맞불>에 나와 있는 그대로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김지윤 학생의 논리는 대부분 타당했지만, 언제나 “거리에서” 시작해 “거리로” 끝날 뿐이었다. 남의 가게 앞에서 노점 하다 풍물시장 열려 좋긴 하겠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노상이나 가두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다.

    방법이 없다는 논리는 옳지 않아

    “퇴진시킬 방법이 뭐냐?”는 박진섭의 반대성 질문은 지나친 메타 논리다. 국회에서 불신임될 가능성이 적다거나 아직은 국민소환제가 없다는 논리대로라면 1,825일마다 돌아오는 선거를 마냥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

    굳이 초법적이고 무서운 ‘혁명 상황’을 상정치 않더라도 데모 때문에 권력자가 물러나는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서든 드물지 않은 정치현상이다. 그 구체적 방법이 무엇이냐는 20년 넘게 운동한 박진섭 같은 사람들이 내놓아야지, 아고라 네티즌에게 물을 일이 아니다.

    “지금 정권 퇴진을 외쳐야 한다”거나 “당장 퇴진시킬 방법은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는 얼핏 의견대립인 듯 보이지만, 1980년대나 90년대 초의 기준으로 보자면 같은 의견이다.

    그즈음 장명국씨가 내던 <새벽>이라는 잡지에는 노동자 군대가 한강을 도강하여 청와대를 접수한다는 둥의 황당한 계획서가 실렸었는데, 지금 그런 의미에서의 ‘정권 퇴진’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김지윤의 “정권 퇴진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라는 발언은 지금 집권을 위한 전술행동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옛 방식으로 분류하자면, ‘정권 퇴진’에 대한 갑론을박은 그것을 선전슬로건으로 간주하는 공통된 인식 위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것을 지금 내걸 것인가, 조금 뒤로 미룰 것인가 하는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정권의 퇴진을 목표 삼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는 세 개의 판단 기준이 있겠다. 첫째, 민중의 이익이나 안위 등 특정한 가치 실현에 정권의 진퇴가 매우 결정적인 조건인가? 둘째, 국민 사이에서 정권 퇴진의 필요성이 넓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가? 셋째, 퇴진시킬 힘이 있는가?

    퇴진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우선 선전인 이유

    첫 번째 기준은 생략하자. 두 번째에 관련해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국민 여론이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다”라는 논리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물론 ‘조금 더 지켜보자’는 국민 정서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촛불운동이 당장 정권 퇴진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정권 퇴진의 필요성을 알려나가는 것도 섣부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 공감이 크지 않다는 논리는 사실이 아닌 듯하다. 선출직 공직자의 기능 부전은 자신이 패퇴시킨 후보의 지지율보다 낮아지는 지점 정도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명박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저 기록을 거듭 갱신하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의 정권 반대 여론보다 더 광범위하고 일방적인 여론은 월드컵 한일전 때 누구를 응원할 것이냐 따위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정권 퇴진’이 아직은 선전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여론 지지가 적어서가 아니라, 세 번째 조건 즉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힘은 집회에 백만 명쯤을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정치 상식에서 이명박을 내친다는 것은 누군가를 대신 앉히자는 말이나 진배 없는데, 촛불운동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을 들이밀 자신이 없는 것이다.

    냉정하게 평하자면 이명박은 정치적 위기에 처해 있지 않다. 지지율이 엄청 낮다는 것도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낮은 지지율이 현실화할 선거가 2년이나 남았을 뿐더러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야당이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의 사회문화적 인기 없음을 정치적 위기로 이행시키기 위해서는 대체권력의 성장이 필수적인데, 이명박의 추락은 너무 빠르고 진보정당의 발걸음은 너무도 더디다.

    하지만 대안 없음이 우리의 사고를 가로막게 해서는 안 된다. 폭풍이 몰아칠 때는 항구가 작든 나쁘든 가까운 곳에 우선 배를 대야 하는 법이다.

    정상정치 흔들어야 한다

    우리가 ‘명박 퇴진’으로 나아가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신자유주의로 수렴된 정상정치를 흔들어놓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1987년의 영광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곰곰이 되짚어 보면 1960년 이후 48년 동안 단 한 명의 대통령도 물러나지 않았다. 간헐적 선거에서 포섭된 투표를 하고, 인민으로부터 격리된 장에서 사회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정상정치가 너무 오래 유지되지 않았을까.

    “국민대책회의는 ‘정권 퇴진시키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정권 퇴진을 포함한 강력한 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는 박석운 진보연대 운영위원장의 변명은 비겁하다. 이제, 시민에 대한 존중은 묵묵히 듣는 데서 벗어나 “정권을 퇴진시키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 국민대책회의의 의견이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 달라”는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

    정권 퇴진 요구가 더 많은 지지를 얻게 될 때 그 구체적 방법을 어찌해야 하는지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절차나 법률은 법률가나 행정가들에게 짜내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것은 법률이나 절차가 아니라, 그런 법제를 생산하는 사회권력의 재구성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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