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군정치는 전쟁의 그림자
        2008년 06월 26일 0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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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 집안을 들여다보면 할아버지 때부터 권력투쟁을 해온 풍비박산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쳐내고 정권을 잡았다. 자신이 행한 부도덕한 일로 인해 태어날 자식들도 자신에 맞서 권력투쟁을 벌일 것이란 공포심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의 공포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는데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삼켜버렸다. 즉, 태어난 자식들을 모두 죽였다. 하지만 가장 나중에 태어난 아들 제우스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았고 결국에는 제우스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식을 집어삼킨 크로노스의 범죄행위는 현대시대에서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면 정적 처단에 해당될 것이다. 크로노스는 물론 독재자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식에게도 권력을 내주기를 원치 않았다.

    크로노스, 스탈린, 김일성

    크로노스와 같은 독재자는 누구도 자신에 맞서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경쟁자가 생겨나면 암살을 하거나 사회에서 격리시키면서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크로노스는 스탈린이라는 인물과 대비된다. 스탈린은 죽고 난 뒤 소비에트 내에서까지 독재자로 낙인찍혔다.

    자신의 경쟁자였던 트로츠키를 추방한 뒤 암살했고 부하린 등 수많은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들을 제국주의의 스파이니 반계급분자니 하는 명분으로 처단했다. 즉, 자신과 다른 정치적 의견을 가진 경쟁상대는 모두 제거했다. 경쟁상대가 없으니 당연히 그는 죽을 때까지 당서기장과 소비에트의 지도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독재를 위해 다른 경쟁자를 허용하지 않았던 사례는 남한이나 북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군정을 등에 업고 출범했던 이승만 체제도 스스로 독재의 길을 걸었다. 여운형, 김구, 조봉암을 암살하거나 사형시키면서 정적들을 제거한 뒤 죽을 때까지 국부(대통령)로 남길 희망했다. 하지만 4.19항쟁으로 인해 그의 꿈은 좌초돼버렸다.

    북한에서는 소련군정을 등에 업고 출범한 김일성의 최대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조만식과 박헌영이었다. 특히 김일성의 가장 큰 경쟁자였던 남로당 당수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처형됐다.

    정치적인 경쟁세력이나 경쟁자가 완전히 제거됐으니 죽을 때까지 ‘수령’으로 지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더구나 경쟁세력이나 비판세력이 전무한 상태였으니 자식에게까지도 권력을 세습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한 번 대표가 되면 죽을 때까지 대표로 남는 바티칸의 교황제도와 유사한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바티칸은 종교적 신비성과 전통을 존중하고 이에 따라 운용돼 온 조직체로 공산당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공산당은 바티칸에서 강조하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그대로 베껴 ‘공산당의 무오류성’을 주장했고, 신의 대리자라고 신격화시키는 교황처럼 공산당의 지도자를 신격화내지 우상화시키는 일을 자행했다.

    이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최고의 기치로 내세워 투쟁한다는 공산당을 스스로 기만하는 발상이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비에트에서 이렇게 시작했는데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은 오죽했겠는가. 당연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변형시켜 유사이론까지 생산해낸 뒤 죽을 때까지 국가의 지도자로 남아있는 경우가 수두룩했고 어떤 곳에서는 지금도 그렇게 버티고 있다.

    이같은 절대적인 독재를 위해 소비에트체제는 철저한 통제와 감시가 필요했다. 소비에트의 공산당 관료조직은 모든 것을 알기를 원했다. 모든 조직체나 일터에 스파이나 비밀경찰들을 심어놓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기 원했다. 심지어는 개인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까지 알기를 원했다.

    이처럼 민중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았던 구시대의 공산주의자들은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처럼 민중들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것을 두려워했다. 이미 혁명을 통해 민중들의 폭발적인 역동성을 체험한 바 있던 공산당의 관료들이 두려움을 가졌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하는 사람보다 감시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 때문에 수많은 민중들을 통제하거나 감시하기 위한 거대한 비밀경찰조직이나 정보부 조직이 확장을 거듭했다. 통제를 위한 비밀조직들은 인력이 확충돼갔고 엄청난 예산이 배정됐다.

    당연한 귀결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됐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노동문화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한 명의 인부가 땅을 파고 있으면 그 주위에는 보통 두 세 사람이 서서 잡담하고 있는 모습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일하지 않는 두 세 명이 일하는 한 명을 감시하는 체제가 돼버린 것이다. 소비에트체제가 창조한 또 다른 지배계급인 ‘노멘클라투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특권계급이 존재하는 한 공산주의 사회가 소중한 가치로 내세우는 평등이라는 이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노동자나 농민들이 이용하는 국영상점의 선반은 질 낮은 상품들이 차지해 있거나 그나마 비어있는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특권층들이 이용하는 호화로운 상점에는 서구사회에서 수입된 화려한 물품들이 넘쳐 났고 블랙마켓에서는 국영상점에서 빠져 나온 물품들이 두 배나 세 배의 가격에 팔렸던 것이 당시 소련이나 동구권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이었다.

    소비에트연방이나 북한이 군사독재체제로 굳어져 간 역사적 과정에서 전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꼽을 수 있다.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이후로 소비에트는 끊임없이 전쟁에 참여했고 이를 통해 확장을 거듭해왔다.

    혁명 후에 러시아 전역에서 벌어진 백군과 서구 제국주의 군대들에 맞선 내전과 세계2차대전, 그 후 계속되는 중국혁명전쟁과 한반도의 6.25전쟁과 베트남전 등의 굵직한 국지전들에 항상 참여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과의 무한군비경쟁 등은 소비에트를 항시적인 군사독재체제로 만들어 놓았다. 당연히 민간이 주도하는 민주주의적 체제가 들어설 공간이 없었다. 북한의 역사에서도 6.25전쟁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역사적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라 할 수 있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도 북한은 일상적인 사회주의체제로 전환하기보다는 항시적인 전시체제를 유지하면서 군사독재체제를 굳혀갔다. ‘장군님’이나 ‘선군정치’ 같는 용어는 북한이 여전히 6.25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러시아혁명은 대중들의 폭발적인 참여하에서 일어난 민주적인 혁명이었다. 존 리드가 쓴 『10일 동안 천지를 흔든 대사건』이란 책을 보면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존 리드는 미국 출신의 언론인으로서 러시아혁명 기간 동안 페테르부르그에 머물면서 혁명의 진행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가는 곳마다 노동자, 군인, 농민, 노동자들의 즉흥적인 토론과 자유연설이 행해졌다”고 적고 있다. 더욱이 그는 즉흥연설에서 들은 내용들까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민주와 자유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분위기에서 러시아혁명은 시작됐지만 많은 전쟁들을 치르면서 점차 획일적인 독재체재가 자리잡아갔고 민중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졌다.

    전쟁처럼 사람들의 삶을 가혹하게 만드는 시간도 없다. 전쟁은 인간의 역사를 뒤흔들면서 지난 삶을 송두리째 잃게 만든다. 잃어버린 삶은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채우면서 망각이라는 여유를 제공한다.

    망각이 없는 삶을 사는 인간에게는 정신병이라는 무서운 그늘이 위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 속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전쟁의 시간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면서 그들의 표정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앗아간다. 살얼음처럼 차가운 기나긴 겨울은 봄이 오리란 희망까지도 짓밟으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악마처럼 만들어간다.

    마치 분노한 천사의 얼굴이 악마처럼 변하는 것과도 같다. 전쟁이라는 겨울 속에서 자란 가슴의 멍울은 봄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한 번의 봄이 아니라 몇 번의 봄이 와야 겨우 지울 수 있다.

    전쟁은 군사주의적 문화를 낳고 획일적 명령이 지배하는 독재체제를 굳힌다. 물론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전쟁을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굳어가는 군부독재체제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의식적으로 개혁해내지 못한 책임은 결국 사회주의 세계 지도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과거의 러시아혁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고 해서 그 의의가 평가절하될 수는 없다. 90년이 지난 과거의 역사지만 러시아혁명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노동자가 권력을 쥔, 천지가 개벽할만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러시아혁명은 프랑스대혁명을 능가하는, 인류역사를 뒤흔들어 놓은 가장 큰 이변 중 하나였다. 왕조가 무너지고 우체국 청소부가 갑자기 우체국장이 되고 선반공이 공장의 대표가, 거리의 청소부가 시청의 국장이 되는,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뒤바뀐 사건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꿈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가난과 굶주림에 지친 노동자 농민들의 탄식과 절망의 한숨소리가 희망찬 행진과 구호로 바뀌어 거리와 광장을 메우던 시절이었다. 이제 다시 노동자 농민들의 한숨과 탄식은 러시아혁명을 역사의 뒷전으로 밀어내버렸다. 그 시대의 희망은 왜곡되면서 절망으로 변했고, 그 시대는 가난과 질곡의 역사로 도색돼버렸다.

    과거의 러시아혁명이 실패했다고 해서 미래의 혁명이 완전히 사장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혁명을 역사의 무덤에 묻어버리려 해도 혁명의 조건이 존재하는 한 혁명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혁명이 일어날 조건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서나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명의 불씨는 남아 있다

    어디에나 가난이 득실거리고 불의와 부정이 판을 치는 그런 세상을 단지 침묵하면서 받아들이기만을 강요당하면서 살아가는 민중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세계가 그런 세상이 되고 말았다.

    잘못된 것, 왜곡된 것과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돼버렸다. 더 이상 첩첩산중으로 들어가 세상과 연을 끊고 살아갈 수도 없는,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통제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제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야 하며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 집단주의라는 명분으로 인간의 개성과 능력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각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절대적으로 존중받고, 개개인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주의체제를 여는 그런 혁명이 와야 한다.

    사회주의란 명목으로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집권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대로 권력을 세습하는 그런 혁명은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 사회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민족을 침공하여 학살하고 식민지화시키는 그런 사회주의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된다.

    반전평화주의와 반군사주의가 충만하여 평화와 자유와 민주가 지배하는 그런 사회주의 세상이 와야 한다. 통제하고 착취하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참으로 평등한 그런 사회주의 세상을 위한 혁명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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