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화국은 내전 중"
    2008년 06월 26일 06: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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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은 내전에 돌입했다. 70년 전 스페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2008년 6월 25일 대한민국은 총성 없는 내전 상태에 들어갔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과의 추가협상 후 여론이 많이 좋아졌다고 판단한 듯 쇠고기 정국에 대한 정면돌파 입장을 결정했다. 그리고 정부는 25일 해가 지기 전에 현직 국회의원과 초등학생을 포함한 47명의 시민을 강제연행하면서 자신들의 의지가 얼마나 강고한지 과시했다.

시민도 경찰도 달라졌다

자정 무렵부터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물대포가 다시 등장했다. 물대포에 이어 경찰은 20세기의 유물인 토끼몰이 진압을 부활시켰다. 새벽까지 이어진 경찰의 진압은 눈에 띨 정도로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결국 전경이 한 시민의 손가락을 물어 끊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거리의 시민들도 지금까지의 촛불대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다음 아고라는 정권과 경찰에 대한 격한 감정을 담은 글들이 쏟아졌다. 이미 언론은 시민의 분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부 시책에 대한 소박한 반대에서 시작한 운동이 50일 만에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확장됐다. 대통령은 취임 120일 만에 시민사회를 뒤집어 놓고 국민을 투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촛불에는 배후가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진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바로 촛불을 횃불로 만들고 있는 주범이요 배후세력인 것이다.

   
  ▲25일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이 경찰의 물리력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는 정권임을 드러냈다. (진보신당 칼라TV 제공)
 

축제에서 항쟁으로, 뿔난 시민들

25일 촛불 문화제는 여러 면에서 의외였다. 우선 장기간 지속된 일정, 정부와 미국의 추가협상 종료, 보수의 반격 등 여러 이유로 참여 동력이 떨어지고 있었고 25일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줄기는커녕 참석자가 늘어났다. 이건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공이다.

문제는 참석자들의 수가 아니라 분위기다. 네티즌들은 장관고시 강행 소식이 인터넷에 뜨기가 무섭게 집결장소와 시간을 공유하고 행동에 들어갔다. 광우병대책위가 상황 파악에 주력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리고 이들이 경복궁역 인근에서 첫 번째 연행자가 됐다.

이후 세종로에서 진행된 집회에서도 대책위는 기획보다 방송지원 수준에 그쳤다. 대중들은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바라는 목포와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켰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일치가 다수의 행동통일로 연결된 것도 25일의 특징이다.

대책위에 대한 서로 정반대되는 불만이야 애초부터 계속 있었고 그래서 대책위와 상관없이 나의 길을 걷는 대중도 꾸준히 존재했지만 지도부로부터 자유로운 대중들이 개별이 아니라 집단으로 행동한 것은 50일이 지난 촛불이 다른 형태로 변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비폭력과 마조히즘

요구조건 또한 정권에 대한 분노와 민주주의의 문제로 정리됐다. 개별사안에서 일반적인 문제로 확장된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띤 것은 그동안 촛불문화제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반복된 ‘폭력 vs 비폭력’ 논쟁이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정신 차릴 틈을 안주고 몰아붙인 경찰 탓이기도 하겠지만 비폭력을 목숨처럼 고수하던 이들이 경찰의 폭력성을 목도하고 충격을 받는 모습도 쉽게 관찰됐다. 이는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지켜보던 사람들에게서도 강하게 감지됐다.

사실 폭력이란 물리력이 아니다. 폭력이란 멀쩡한 대학생을 잡아다가 물고문하고 죽이거나, 거리를 온통 둔덕으로 채워서 장애인은 집밖에도 못나오게 만들거나, 커피는 여직원이 타야 제 맛이라고 굳게 믿는 것이다.

최루액을 탄 물을 자연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스피드로, 그것도 사람을 향해 쏘아대는 집단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폭력이 아니다. 비폭력이란 예를 들어 대열에서 이탈해 시위대 안으로 들어온 전경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때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휘관이 굳이 명령을 하지 않아도 시위대를 흠씬 두들겨줄 각오와 준비와 훈련이 돼있는 사람들 앞에 서서 ‘너희가 내 몸에 무슨 짓을 하건 난 그냥 맞아줄게’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폭력의 숭고함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마조히즘일 뿐이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는 현 정국에서 최대의 미스터리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지금 어떠한 분석과 예측도 거부하고 있다. 일부러 악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면 이명박 대통령은 빠져나오려고 몸부림 칠 때마다 스스로를 더 파묻는 그야말로 기가 막혀버릴 상황에 놓여있다.

대통령 스스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철저하게 혼자다. 내각은 사표를 제출한 좀비들이고, 국회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지 오래고, 여당은 지도부 뽑는다고 정신이 없다. 관료들은 정권 핵심으로부터의 결정 기능이 마비되면서 간단한 업무의 집행조차도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손을 놓고 있다. 보수언론은 대통령을 방어하기는커녕 광고 문제 등 자기들을 방어하는 데도 숨이 차다.

믿었던 미국은 이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시는 방한을 취소했고, 미의회는 차기 주한미대사 결정을 늦추는 외교적 결례를 범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항의표시는 고사하고 ‘동맹강화’라는 뜬구름만 잡고 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어떠한 미련도 없음을 50일 동안 거리에서 목 놓아 외쳤다. 그런 이명박 정부가 지금 기댈 것은 경찰과 군대 딱 둘 뿐이다. 군대는 계엄령이 필요하니 사실 경찰 하나만 남는다. 지금 이명박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야구팀 하나도 못 만들 숫자의 신임 청와대비서진들과 경찰력이다.

신임 대통령이 공안정국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대통령이 현재 가진 유일한 통치수단은 경찰집단 뿐이다. 경찰로 권력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두고’, ‘패고’, ‘잡아들이는’ 일이다. 다른 말로 ‘공안정국’ 만들기다.

‘실용주의자’ 대통령은 취임한지 반년도 안돼서 이 나라를 게슈타포 국가로 변모시켰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경찰이라는 이름의 폭력집단

촛불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서 매번 드러났고, 특히 25일과 26일 새벽의 강경진압을 통해 더 이상 한국 경찰이 ‘공권력’이 아님은 분명해졌다.

지금 이 나라의 경찰은 무장한 폭력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일본경찰이 좌익에 강경하고 야쿠자에게 취약하듯이, 한국경찰도 우익 강경파들과 이상한 협업 관계임이 밝혀졌다.

시민을 보호하고 법을 지키는 일은 한국경찰이 가장 마지막에 떠올리는 임무다. 시민들이 아스팔트에 발만 디뎌도 경기를 일으키는 경찰이 정작 전경버스로 차선 메우기, 도심에 컨테이너로 블록 쌓기, 광화문 앞에서 세종로 사거리까지 점거농성하기 등 불법이란 불법은 다 저지르고 있다.

우익단체가 시민들을 폭행할 때 이를 막아주는 정의로운 역할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집회할 때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경찰이 무장한 채 떼로 몰려다니면서 하는 일은 바로 정권을 보위하고 저항세력을 분쇄하는 것이다. 국민세금으로 유지되는 경찰이 왜 정권 경호부대로 둔갑한 것일까. 간단하다.

한국경찰은 제주도에서부터 서울까지 경찰청에 절대종속 돼있고 경찰청은 특정세력이 장악하고 있으며 특정세력 내부의 출세 문제는 정권의 결정사항이다. 집권세력은 경찰 수뇌부의 충성만 확보하면 전 경찰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거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경찰은 그래서 공권력이 아니라 정권의 의지가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한 것이다.

경찰은 25, 26일 양일간 모두 120명의 시민을 연행했다. 경찰청장은 아마도 대통령의 취임 120일 선물로 120명의 연행자를 바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현 정권에 대한 경찰의 충성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민주당 살고 싶으면 전원 의원직 사퇴하라

시민들이 장관고시 강행 소식을 접하고 자발적인 저항행동에 돌입했을 때 민주당은 국회에 모여 등원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철학적인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민주당은 촛불투쟁 50일 동안 정국의 주도는 고사하고 정국의 유의미한 세력 역할조차 못했다. 이들의 역할은 그저 논평하고, 동요하고, 눈치 보는 것뿐이었다.

이 소심하고 무능력한 정치세력은 대중에 영합해 주가를 올리는 정치인 특유의 친화력은 고사하고 촛불이 대세가 되었을 때도 ‘우리가 촛불을 들면 너무 과격해보이지 않을까’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대중들이 ‘재협상’이라는 요구안을 자생적으로 만들어갈 때도 ‘그래도 한미FTA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딴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했던 것이 민주당이다.

지금 민주당은 갈 곳이 없다. 민주당은 국회를 거부했으면 거리에 서든가, 거리가 싫으면 국회로 돌아가든가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 것도 없이 어정쩡하게 두 달을 보냈다. 이제는 등원하자니 폼이 안 나고 싸우자니 뒷북인 난감한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외부세력이 국회를 해산할 수 없는 현행 헌법 상 18대 국회를 해산하는 방법은 민주당 소속의원 전원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제아무리 용가리통뼈라고 하더라도 사실상의 단독국회를 유지할 수는 없다.

18대가 자연스럽게 해산하고 조기총선이 치러진다면 민주당은 현 의석수보다 훨씬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민주당이 살려고 하면 죽고 죽으려고 하면 크게 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민주당의 현역의원들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질 만큼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었다면 이명박이 그렇게 쉽게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내 진보정당과 원외 진보정당은 연타석 히트를 날리고 있지만 1905년 러시아혁명과 같은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이상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갈 일은 없어 보인다.

총파업 선언한 노동운동

민주노총은 장관고시 강행시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진짜 산별총파업은 물론 아니다. 수입쇠고기를 운송할 화물조직부터 시작해 가능한 사업장으로 파업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기는 했지만 민주노총의 파업지침은 26일 새벽 하달됐다. 단위노조 간부들이 비상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새벽에 떨어진 파업지침은 언론과 국민을 향한 성명서 성격이 더 강해 보인다.

재벌총수님들은 두 명만 모여도 ‘노동조합 등쌀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엄살일 뿐이다. 만약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어느 나라에서 시민들이 정부시책을 놓고 열흘만 시위를 벌였으면 그 나라의 노동조합은 재깍 총파업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조합은 시민들이 50일 가까이 싸워도 총파업을 선언만 해보는 그런 수준이다. 이런 노동운동을 두고 ‘강성노조’라고 우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한국재벌들이 분명 ‘글로벌 스탠다드’에 취약하긴 한 모양이다.

산별총파업은 중요하다. 시민들이 50일을 싸웠다. 대단하다. 그러나 앞으로 100일, 150일을 더 싸우는 것은 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총파업을 통해 평일 낮에 딱 5일 싸우는 것이 평일 저녁과 주말에 150일 싸우는 것보다 더 위력적이고 효율적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이 선언에서 실행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내전을 종식시키는 방법

25일자 한겨레신문은 멀리 독일에서 울리히 벡 교수가 보내온 특별기고문을 실었다.

울리히 벡 교수는 기고문의 말미에서 "한국인들이 ‘시장이 알아서 조절할 것’이라는 이론과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이론을 앞에 놓고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섰다"고 썼다.

물론 그가 추천하는 답은 긴 쪽인데,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건 이명박이 대통령의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시장이 알아서 다 조절한다면 CEO형 대통령은 필요 없다. 반면 이명박이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는데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기고문을 다르게 해석하면 ‘이명박이 계속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야 할 이유는 100가지쯤 된다’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기껏해야 ‘선출직 고위공무원 1호’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임기를 다 못 채우고 물러난다고 해서 국민이 불행해지는 일은 없다. 총칼로 권력을 빼앗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일지라도 대통령의 직무를 다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이 입증됐다면 물러나야 한다. 주권자인 시민에 의해 대통령이 해임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도 우리 역사에 건강한 양분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을 포기했다. 그럼 국민은 주권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헌법이 보장한 ‘행복해질 권리’, ‘죽지 않을 권리’,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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