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폭력" 구호 대신 '환호성'
        2008년 06월 26일 03: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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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한 촛불들은 꺼질 줄 몰랐다. 이명박 정부는 소화기로, 25일 만에 다시 등장한 물대포로 촛불을 끄고자 했지만 오히려 더 강하게 타올랐다. 이명박 정부가 고시를 강행하고 게재하는 25일과 26일 밤사이, 시민 120여명이 연행되고 한 시민의 손가락이 전경에 물려 절단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의 살수차 진압(사진=정상근 기자)
     

    정부의 장관 고시 강행 발표가 난 이날 촛불 시위 분위기는 여느 날과는 조금 달랐다. 분노가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분위기였다. 광화문에서 연좌농성을 하던 시민들이 자유발언과 토론을 거쳐 서대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9시 20분경이었다. 시민들은 서대문으로 이동하던 도중 갑자기 방향을 틀어 새문안교회 등 전경 수가 적을 만한 곳을 선택해 집중 공략했다.

    이들은 26일 관보게재가 되면 더 이상 재협상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세진(24)씨는 “재협상 충분히 할 수 있을 때도 미국에 빌빌 기던 이명박 정부가 고시까지 낸 마당에 재협상을 하려고 하겠나”라며 “더 이상은 용서 없다. 이제 이명박 퇴진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폭력" 대신 환호

    이들은 "오늘 안에 반드시 결판을 내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전경 버스 옆 벽을 허물었다. 예전 같으면 ‘비폭력’을 연호했을 시민들도 담이 허물어지자 환호성을 질렀다. 시민들이 벽을 허물자 당황한 경찰은 시민들의 얼굴에 소화기를 뿌려댔고 방패를 휘둘렀다. 선두 대열에 있던 한 여성은 탈진으로 빠져 나온 뒤 “전경들이 휘두른 방패에 맞았다”고 증언했다.

    시민들에 의해 밀리는 듯한 경찰은 곧 병력을 충원해 이미 부서진 벽으로 나온 많은 시민들을 밀어냈고 좁은 문밖에 퇴로가 없던 시민들은 밟히고 채여 가며 비명과 욕설이 오갔다. 아수라장이었다.

       
      ▲한 시민이 목이 잡힌 채 연행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어 무차별 연행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작심한 듯 봉고차 두 대를 연행차량으로 만들어 시위대 앞에 서있던 남성들을 무조건 끌어냈으며 인도까지 점령하고 길을 터주지 않았다. “인도에서 물러나라”는 시민들의 외침에 스피커폰을 잡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경찰관은 “여기에 인도는 없다”는 황당한 말을 하기도 했다.

    연행자들에게는 연행 사유와 미란다 원칙이 제대로 고지되지 않았다. 반항하지 않는 시민들의 목을 잡고 끌고가는 등 연행과정에서 폭력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연행이 법에 따라 이루어졌냐는 질문에 한 직업경찰관은 "알려줄 사항은 다 알려줬다"고 말했다.

    전쟁터 방불

    결국 이 자리에서 주간지 <시사IN> 기자까지 연행되는 등 봉고차 두 대에 시민들을 가득 태워 보냈다. 기자들과 시민들은 이를 막아서며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외쳤지만 봉고차의 자리가 남는 대로 선두대열 시민들을 모두 끌고가 봉고차에 함께 실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이명박 때문에 고생이다”며 혀를 찼다. 

    몇몇 시민들은 경복궁역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촛불을 밝혔으며 대부분의 시민들은 감리교본부 인근 골목과 새문안교회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남은 2000여명의 시민들은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경찰선을 넘어가고자 했다.

       
      ▲경찰과 대치 중인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사진=뉴시스)
     

    하지만 돌아온 건 25일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물대포였다. 지난 5월 31일 물대포 직사로 거센 비난을 받은 경찰은 다시 한 번 시민의 머리 위로, 강한 물대포를 쏘아댔다.

    시민들도 만만치 않았다. 어디선가 들고 온 우비로 무장하고 여성들을 중심으로 연행될 때 불으라며 호루라기를 나누었다. 전경에게서 빼앗은 방패를 앞세워 물대포를 막고 버스에 줄을 연결해 힘을 모아 끌어냈다.
     
    전경버스가 끌려오면서 내부에 탑승해 있던 전경들도 함께 끌려왔다. 시민들에 의해 끌려내려온 전경들에게 일부 시민들이 장구를 빼앗으려 했지만 예비군 시위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위대가 이들을 둘러쌓아 보호하고 반대편 골목을 향해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예비군 시위대와 일부 시민간의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의 장구를 빼앗지 않으면 다시 그 장구가 시위대를 공격한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우리의 목표는 이들이 아닌 이명박”이라며 온전히 돌려보낼 것을 주장했다.

    손가락 절단 사고도

    양 골목에서 물대포와 소화기를 맞아가며 버스를 끌고 대치하던 시민들은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대로로 몰려 나왔다. 경찰은 새문안 교회와 서대문 방향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대놓고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대며 시청방향으로 시위대를 몰아붙였다. 이 과정에서 조원일(54)씨가 고려쇼핑 앞에서 전경에게 손가락이 깨물려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이 절단되는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또한 20대 청년은 “경찰이 진압하는 도중 전경 한 명이 다가와 뺨을 때렸다”며 “밟히거나 그런 건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뺨을 맞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동영상을 찍은 사람이 있을 텐데 반드시 찾아 고소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리는 등 강경진압이 이어졌다.

    인도까지 올라서 시민들과 충돌한 경찰들을 막아선 것은 맨몸이었다. 한 중년 남성은 방송차 밑에 누워서, 유모차와 함께 나온 한 여성은 살수차 앞에서 침묵 농성했다. 방송차를 막은 남성은 “이제 나는 잡혀가게 생겼지만 상관없다. 이 정부 반드시 끌어내자”고 외쳤고 유모차 아이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뒤로 빼라"는 말만 남겼다. 

       
    ▲쓰레기 게양되는 동아일보(사진=정상근 기자)
     

    한편 청계천 소라광장 인근 도로까지 몰린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연좌농성을 시작했다. 일부는 흠뻑 젖은 몸을 불에 녹이기 시작했고 몇몇 시민들은 조선일보사에 현판을 떼어내고 종이에 ‘일본신문’을 써 붙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태극기가 내려지고 그 자리에 쓰레기가 올라가기도 했다.

    조선일보사에 ‘일본신문’ 써붙이기도

    날이 밝았지만 시민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여전히 청계광장 인근에는 1000여명의 시민들이 연좌농성을 하고 있고 전경도 방어선을 구축하고 양측이 계속 대치중이다. 시민들은 이곳저곳 분산되어 길에서 잤고 전경들도 길에서 교대로 눈을 붙혔다.

    완전한 아침이 되자 경찰은 다시 대오를 정비하고 방송차를 이용해 경고방송을 계속했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경찰방송이 시작하자 다시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고 있다.

    한편 경찰은 날이 밝아지자 그제서야 순찰차를 이용해 조 모씨의 절단된 손가락을 찾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소문으로만 들려오던 손가락 절단사고가 진실로 드러나자 크게 분노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을 향해 소리지르며 "이제 평화시위는 없다"고 경고했다.

    한편 경찰의 진압작전은 새벽 5시 40분부터 재개되었다. 경찰은 연행보다는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붙히는 데 주력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청으로 몰렸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 20여명의 시민들은 이동하면서 거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출근길 시민들이 이들에게 경적을 울리며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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