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임산부에게 '미래수당' 지급해야
        2008년 07월 02일 05: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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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불교에서 태교란 부모가 현생에서 쌓은 업을 소멸시켜 자신에게 좋은 인연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수행의 과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임신기간 동안 임산부는 자신의 삶을 조용히 돌아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바른 몸가짐을 가지고 명상과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태교를 평소에 듣지 않던 모차르트나 태교음악을 부지런히 듣고, 예쁜 여배우 사진을 보면서 ‘우리 아기도 예뻐져라’고 기도하는 것으로 묘사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불교의 태교 정의를 듣고 나서야 “바로 이게 진짜 태교법이야”라고 생각했다.

    진짜 태교법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부모 자식 간 인연을 맺게 되기를 기다리는 10개월의 기간 동안 아기와 더불어 새로운 인생을 다시금 꿈꾸고, 희망한다. 새 생명의 탄생은 부모에게도 삶의 가치관과 방식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하는 전환점과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10개월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매일 성당의 아침미사를 다녀오는 것으로 나는 불교 태교법의 일부를 실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임신 기간을 집에서 무작정 보낼 수만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출산 후에도 재취업으로 직장생활을 계속해서 영위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노동부가 지원하는 직업훈련 참여였다. 제과제빵, 한식요리, 컴퓨터 활용, 재무회계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직업훈련학교를 통해 제공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집인원은 한정적이었다. 강의를 수강하고자 하는 지원자는 많지만 직업훈련학교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고 있었다.

    나는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평소 듣고 싶었던 재무회계 분야를 택해 한 직업훈련학교에 온라인으로 수강 접수했다. 며칠 후 그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친절하지만 매우 사무적인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누구든’에 임산부는 포함되지 않았다

    “0월 0일까지 학원으로 면접 보러 오세요. 면접 후 평가를 통해 합격 여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합격자 선발 기준은 뭔가요?”
    “특별한 지원 자격 같은 건 없습니다. 현재 고용지원센터에 구직등록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임산부다. 그들이 말한 ‘누구나’의 개념에 나 또한 포함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갔다. 게다가 어차피 면접을 보러 가면 한눈에 나의 모습을 알게 될 터였다.

    “현재 저는 임산부입니다. 제가 강의를 지원하는데 별 무리는 없겠죠?”
    “임산부이시면 곤란합니다. 출산을 하면 아기도 돌보셔야 할 텐데, 그럼 취업하기가 힘들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취업 의지와 가능성이 높은 사람 위주로 선발합니다.”

    “제가 의지와 가능성이 떨어진다고요?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그리고 직업훈련은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취업률이 학원의 성과가 아니겠습니까. 임산부나 주부는 취업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보니까…. 그건 우리뿐 아니라 다른 훈련기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한 차별이었다. 임산부는 직업훈련 기회마저 제공할 필요가 없는, 노동시장에 편입되기 어려운 존재로 이미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 심각하다고 얘기할 때는 언제고

    나는 이 사실을 몇몇 친구에게 알렸다.
    “저출산이 심각하다며 얘 낳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러니 누가 마음 놓고 아기를 가지겠어. 차별이 더 심해지는 거잖아 이건.”
    “방법? 정답이 있겠어? 그냥 떠들고 따지는 수밖에 없지. 제도가 제대로 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인이 알아서 목소리 높여 쌈을 붙이는 수밖에.”

    다음날 나는 고용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나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직업훈련 선발대상에서 제외될 경우에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딱히 방법은 없어요. 학생 선발권은 직업훈련학교에 있고, 노동부는 취업률을 가지고 그 학교의 지원을 결정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취업률이라는 효율성을 따지는데 임산부는 밀려날 수밖에 없죠. 지원자는 많고 학교는 한정돼 있으니 굳이 임산부를 선발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성보호를 강조하는 노동부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앞뒤가 좀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현실은 또 다르니까요.”

    나는 더 이상 말해도 뾰족한 해답은커녕 정부에 대한 실망감만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그들에게 ‘효율성’이란 오로지 생산력을 높이 끌어올릴 수 있는 노동력만을 의미했기 때문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무력감이 밀려왔다.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이란 일도 하고, 아기도 낳아야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보장되는 것은 없었다.

    임신 해고자는 휴가, 휴직급여도 없어

    미취업 임산부가 받는 차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전후 휴가 급여(90일간 통상임금)와 육아휴직 급여(월 50만원)는 일하고 있는 여성에 한해서만 적용될 뿐이다. 임신으로 해고를 당했거나 구직의사가 있는 여성은 그야말로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지원 대상으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취약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일하고 있지 않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외된다.

    정부가 모성보호를 위해 상정하고 있는 조건은 임신을 이유로 해고를 당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심한 입덧과 유산 위기를 겪더라도 묵묵히 직장을 다닌 여성이다. 그들에게만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는 셈이다. 전체 여성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임을 감안한다면 과연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성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49만7천명인 반면, 산전후 휴가급여 수급자는 5만8천명, 육아휴직급여 수급자는 2만1천명으로 나타났다. 여성 1명이 1년에 1명의 아기를 낳는다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면, 전체 임산부 중 11.6%, 4.2%만이 산전후 휴가급여와 육아휴직 급여를 각각 수급한 것이 된다. 오직 소수의 여성 노동자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를 우리는 과연 정부의 대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며칠 전 나는 은행에서 2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육아휴직 처음 1년 동안은 휴직 전 임금이 그대로 나와. 그래서 여자 직원들이 임신에 대한 걱정은 없는 거 같아.”

    모든 임산부에게 미래수당을 지급해라

    출산 후 1년 동안 마음 놓고 아기도 돌보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보안이 철저한 은행의 두꺼운 문 안에 들어가 안락한 보호를 받는 자와 문밖에 서 있는 보호받지 못한 자처럼 친구와 나 사이에 두꺼운 벽이 가로놓여 있는 듯 했다.

    대한민국에서 똑같이 태어나는 아기이지만 엄마의 취업 여부와 회사규모에 따라 출산지원이 결정되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직업훈련 대상에서마저도 제외되는 이 나라에 과연 저출산 의지와 해법은 있는 것일까.

    아기를 가진 모든 엄마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미래인 아기를 생산하고 키우기 위한 수당 즉 ‘미래수당’(이 명칭은 나의 신랑이 붙였다)을 지급받는 날은 언제가 될까. 그래서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차별보다는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날은 언제가 될까. 그날이 부디 멀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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