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내장, 방광염에도 병가 못썼다"
        2008년 06월 25일 03: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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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음 졸이며 화장실조차도 정해진 곳에 정해진 시간에만 갔다. 5년을 근무한 저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실행된다는 말에 정규직처럼 보호받을 수 있는 줄 알고 하루 하루를 정말 가슴 설레며 희망으로 보내고 있었다"(이랜드)

    "백내장으로 병가를 신청했으나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허락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쓰러져 결국 수술을 해야 했다. 이를 보다못한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라리 자기가 그만둬 희생하겠다고 나섰다. 왜 이런 고통분담을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해야 하나?"(학교 무기계약직)

    연봉, 정규직은 최고 3억, 비정규직은 2천만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에게 업무를 지시받고 똑같은 일을 했다. 비정규직이 무엇인지조차도 몰랐는데, 정규직은 최고 3억을 넘는 연봉을 받고 비정규직은 최고 2천 만원을 받았다. 평일에 이어 주말에도 신문배달, 주유소 등의 아르바이트까지 했는데 왜 삶이 나아지지 않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코스콤)

       
     
     

    종로 한복판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5일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증언대회를 열고 ‘비정규직 보호법’이 지난 1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거리로 내몰았는지 고발했다.

    이날 행사에는 학교비정규직, 사내하청 비정규직, 단기계약 후 해고된 사례 등을 증언하기 위해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3권을 촉구하며 덤프, 퀵서비스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단기계약 반복 후 2년을 2개월 앞두고 대량 해고돼 제2의 이랜드 사태로 불리는 주택금융공사 비정규지부 조용환씨는 "계약을 늘려준다는 말을 믿고 광주에서 안양으로 오느라 아내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도 전학했는데, 받은 건 3개월 짜리 계약서와 계약 만료에 따른 해고 통지였다"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가장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써 정부가 자화자찬한 무기계약 전환의 최대 수혜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기계약 전환’이 상시적 고용불안과 처우의 악화로 귀결됐다고 밝혔다.

    주장 강하다고 근무평가 꼴찌

    경기 학교비정규직지회 조영선씨는 "학생수가 줄었다는 이유로 (무기계약 근로자 표준계약서에 따라) 예산감축을 위해 비정규직을 내보냈다. 정규직이 당연히 쓰는 병가자 휴직은 요구할 수조차도 없다"면서, "저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근무 평가 꼴찌를 받았다. 그 외에도 업무와 무관한 다른 일을 시키고 인격 침해 등의 부당한 탄압을 받아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주화를 통한 비정규직법 악용으로 투쟁의 상징이 된 뉴코아 조합원 이경자씨는 "하반신 마비증세와 방광염이 찾아왔지만 일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더 열심히 일해 서비스 만족도 1등을 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정규직은 하루 휴가에 포상금이 주어지지만 비정규직인 저에게 돌아온 건 외주화에 따른 해고 통지서였다"고 밝혔다.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 이상용씨는 "기아자동차 ‘모닝’의 생산공장인 (주)동희오토는 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들만 있다. 이들은 모닝이 고유가로 대박을 이어가는 동안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한다"면서,"사내 하청 업체가 교체되면서 많게는 5년 적게는 3년 일한 노동자가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는 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연의 절박함을 시민들에게 호소함과 동시에 연대와 투쟁에 대한 결의도 잊지 않았다. 코스콤 비정규지부 전용철씨는 "생존을 놓고 싸우는 게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 싸움을 손에서 놔버린다면 일하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없어질 것 같아 우리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면서,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의 전선도 물러서게 된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가들이 포기하지 않는 만큼 우리도 강하게 조직해서 싸우자"고 호소했다.

    생활 유지 위해 집 팔아

    뉴코아 조합원 이경자씨도 "모두가 생계에 힘들어 하지만 저는 집을 팔아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며 이 투쟁에 끝까지 참여할 수 있었다"면서 "저희와 함께 싸운 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준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절대 지고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겨누는 불법엄단과 공권력 화살의 끝은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지금 이렇게 증언대회가 열리지만 현장에서는 (비정규법 확대시행일인) 7월 1일을 앞두고 모두 마음 조리며 또 한 번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니만큼 모든 노동자가 연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의 간절함이 시민들에게 전달됐을까? 시민들의 반응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를 아느냐와 모르느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었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아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안모씨는(85) 가던 길을 멈추며 이들의 사연을 들었다.

    시민들의 두 가지 반응

    김씨는 "당해보거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안타깝고 답답하다"면서 "결국 이 문제를 풀려면 정부가 법과 제도적으로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데, 투기꾼으로 만들어진 현 정부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고 말했다.

    반면, 이미영(39)씨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명박이 대통령까지 된 마당에 저렇게 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것 같다. 결국 저 사람들만 다치고 손해를 볼 것이다"면서 "저 분들도 가족이 있을텐데, 무작정 세월만 보내지 말고 다른 일자리를 좀 알아보는 등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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