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도, 여성단체도 말하지 않는 것
        2008년 06월 30일 0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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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필자는 현재 임신 6개월째 되는 예비엄마로 오는 10월 중에 첫 출산이 예정돼 있다. 필자는 임신 초기(4개월)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고, 회사는 권고사직을 ‘강요’했다. 필자는 회사를 그만 둔 후 직업교육 대상에서 배제되는 등 임산부로서 겪는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으며,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이 글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 필자 모습. 
     

    나는 임산부, 즉 예비엄마다. 지금 내게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자신의 존재를 엄마에게 알리기 위해 툭, 툭 발길질을 하는 아기가 있다.

    아기의 태동을 느낄 때면 나는 아기가 세상을 향해 노크를 하는 건 아닐까, 세상에 말을 걸기 위해 슬슬 몸 푸는 준비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그 발길질을 느끼며 ‘엄마가 되는 건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이젠 익숙해진 호칭 ‘임산부’

    ‘임산부’라는 명칭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규정하는 명칭이 임산부라는 사실이 꽤 낯설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임산부가 된다는 상상을 나는 몇 번이나 했을까. 미혼에서 곧장 아기엄마가 되는 줄로만 어렴풋하게 생각했을 뿐, 그 중간지대의 임산부라는 기간을 나는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임산부가 되고 보니 알겠다. 내 상상 속에 왜 임산부가 또렷하게 자리 잡지 못했는지를. 그리고 임산부는 우리 사회에서 확실하게 위치가 지워져 있지 않은 ‘낀 기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처음에는 나도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그토록 요구하는 재생산의 과제-그게 ‘과제’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이행에 어쨌든 기여했다는 마음으로 산처럼 나온 배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임산부는 노동시장에서는 노동력을 완전하게 갖추지 않아 다루기 힘든, 불편한 여성 노동자일 뿐이었다. 임산부와 관련된 네이버나 다음 까페에 들어가면 임신으로 인한 권고사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 줄을 잇는다. 나 또한 직장에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들은 첫마디가 “축하해요. 그런데 그 몸으로 앞으로 일할 수 있겠어요?”였다.

    임산부, 다루기 불편한 여성 노동자?

    여성노동자가 임신으로 인해 스스로 직장을 박차고 나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태어날 아기를 생각하면 그동안에 없던 근로의욕도 불끈불끈 솟구치는 것이 오히려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에게는 90일간의 산전후 휴가와 2년에 걸친 육아휴직을 부담해야 할 도덕적 의무는 있을지언정 안타깝게도 법적 의무는 현실에서는 너무나 멀리 있다.

    해고를 하더라도 대놓고 ‘임신해고’라고 하지 않고 ‘근무태만’이라고 하면 여성노동자로서는 핏대를 세우며 싸우지 않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 노동청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더라도 노동위원회를 오가며 사측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쳐야 하는 일은 아기를 가진 임산부로서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엄마가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을 때 해고를 권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기는 뱃속에서 우리 사회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우리의 아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임신 후에야 비로소 내가 ‘남성 노동자’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임을 더욱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맞벌이를 해야만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고, 가사를 돌보는 여성보다 일하는 여성이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이중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 더욱 늘어나야 할 수입이 퇴직으로 오히려 감소하고 임신과 출산으로 자신의 경력이 단절될 것을 두려워하는 임산부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태아에게 평화롭게 태교동화를 들려주는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입덧과 프로 근성?

    대기업 사원이거나 공무원, 교사가 아닌 여성 노동자가 운이 좋아 산전 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모두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비는 남아있다. 구토와 울렁증, 잦은 피로감과 졸림, 두통, 빈혈 등을 동반하는 임신 초기의 입덧은 개인차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임산부들이 겪는 공통의 증상이다.

    유산 위험이 높은 이 시기에 임산부들은 특히 안정을 취해야 하지만, ‘프로답게’ 보이기 위해서는 입덧‘쯤’은 숨겨야 한다. 회사 화장실에 가서 소리를 죽이며 토하거나, 갑자기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기침처럼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현행 노동법이나 남녀고용촉진법은 임신 초기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보호방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구로공단의 한 화학회사에서 늘 약품 냄새를 맡으며 일을 해야 하는 한 임신한 여성 노동자는 화학약품이 태아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느라 노심초사 걱정했다.

    그는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하면 해고될까요? 아이 교육비를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화학약품 냄새가 아기에게 혹시라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돼요”라고 까페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해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다른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인다며 “가끔 헛구역질이 올라올 때면 사무실에서 참느라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소연하는 여성 노동자도 있었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는 2주일에 한 번 이상은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 병원 진찰을 위해서라도 임신 초기 여성에게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의 휴가는 필요하다. 노동조합도, 여성단체도 이런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권고사직과 좌절감 

    나 또한 임신 초기 회사에 임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숨죽이며 화장실을 오갔다. 퇴근 후에는 파김치가 될 정도의 피곤함으로 지쳐서 잠이 들곤 했고, 다음날이면 부랴부랴 아침을 대충 때우고 출근대열에 합류했다. 입덧이 심해 조퇴를 하고 병원 진찰을 받은 다음날 아침, 임신 사실을 회사에 알렸을 때 되돌아온 말은 “개인도 중요하지만 회사 사정도 생각해야 돼요”였다.

    ‘권고사직’을 사실상 받아들였을 때 한동안 나는 좌절감으로 마음이 아팠다. 아기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었기에 이런 소식을 들려줄 수밖에 없어 미안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현실에 암담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상으로부터 희망을 품으며 태어나야 할 아기들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먼저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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