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 한나라당’ vs ‘New 진보야당’
        2008년 06월 24일 03: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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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글에서는 ‘야당 부재’의 현상을 진단하고 ‘야당 재편’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면, 이 글의 주된 내용은 한나라당의 ‘변화’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여, ‘대안야당’의 컨텐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1. 한나라당과 진보정당, ‘같은 시기’ 분당된 이유

    07~08년 사이에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졌다. 보수진영도 당이 갈라졌고, 진보정당도 당이 갈라졌다. 그냥 각자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민노당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소수파들의 ‘분열행위’로 치부하면 끝일까? 혹시 어떤 시대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보수의 갈라짐과 진보의 갈라짐은 시대변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동일한’ 본질에서 초래된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었다. 이명박 시대 한나라당은 ‘신 보수’이며,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의 맹아)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왜 ‘신 보수’일까? 그리고 이것은 07년 대선과 08년 총선에서 보수가 ‘압승’을 거둔 것과는 무슨 관계일까? 왜 국민들은 압도적인 표차로 이명박을 밀어줬던 것일까?

    2. 이명박이 ‘신보수’이고, 한나라당이 ‘New’ 한나라당인 이유

    한국의 전통적 보수는 안보중심의 ‘냉전적’ 보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은 ‘경제적’ 보수(=시장주의적 보수)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명박은 한국적 특성에서는 분명 ‘새로운’ 보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보수인 ‘냉전적’ 보수는 한국전쟁을 그 기원으로 두고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의 핵심은 군사적 한미동맹이며, 이들의 논리적 존립 기반은 한국전쟁의 파트너였던 북한이다. 그렇기에 이들과 대립쌍으로 짝궁을 이루는 세력은 NL(민족해방파) 세력이 가장 근접해있다.

    ‘냉전적’ 보수였던 한나라당이 미국을 군사동맹의 파트너로 삼듯 ‘냉전적’ 진보인 NL세력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을 파트너로 삼는 소위 항미연북(抗美連北) 노선을 고수해왔다. 이들은 서로 1953년에 끝장내지 못한 ‘한국전쟁’을 아주 최근까지도 치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경제적’ 보수라는 점에서 그 이전의 안보중심의 냉전적 보수와 성격을 달리한다. 이명박이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에서 실용의 시대’를 언급했던 것은 사실 보수의 세력 변화를 상징하는 표현인 셈이다. 이들에게 자장 중요한 이념은 ‘시장주의’이다.

    세력으로 치자면 재벌 등의 ‘경제적 이해집단’의 영향력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친미는 ‘경제적’ 친미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회창이 자유선진당을 따로 만들고, 이명박 계파와 박근혜 계파의 권력투쟁은 이렇듯 ‘신보수’와 ‘전통’ 보수의 세력다툼으로 볼 수 있다.

    3. ‘범보수’ 정당 지지율이 ‘범진보개혁’ 정당 지지율을 ‘압도’하고 있는 근본 이유

    나는 앞서 썼던 글에서 최근 ‘강력한’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범보수 정당 지지율 합계가 범진보개혁 정당 지지율 합계보다 최소한 10% 이상을 꾸준히 앞서가고 있음을 지적한 적이 있다. (평균치를 기준으로, 범보수는 45.4%, 범진보개혁은 35.4%)

    그 비결의 열쇠는 한나라당이 먼저 ‘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명박의 국정운영 능력은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새로운’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는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4. 07년 대선과 08년 총선 – ‘보수 유물론 vs 진보개혁 관념론의 대결’

    지난 06년 지방선거, 07년 대선과 08년 총선은 모두 ‘변화’에 성공한 보수 유물론과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 진보개혁 관념론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범보수는 위의 세 차례 선거에서 모두 6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양극화로 인한 외부 충격에 대해 한나라당의 New 보수는 각종 유물론적 공약을 내걸었다. 뉴타운을 통해 386세대에게 집값을 올려주겠다고, 자립형 사립고를 통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물론 이들의 유물론적 공약이 ‘지속가능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진보개혁세력은 관념적인 ‘윤리론’으로 대응했다. 열린우리당 세력은 평화민주세력의 대단결이라는 복고풍의 윤리론을 떠들었고, 민주노동당 내 대선 후보들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연대를 하자는 ‘고상한’ 윤리론을 설파했다. 그래서 지금 현재, 내 절박한 욕망을 어떻게 해결해줄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명박 시대 한나라당은 ‘New 한나라당’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진단의 실천적 의미는 이명박이 지지율이 떨어져도 ‘당 대 당’ 대결에서 현재의 야당이 한나라당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의미한다. 야당의 변화 없이 ‘포스트 이명박 시대’가 설령 온다고 할지라도 결국 한나라당의 것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역시나 New 진보야당의 컨텐츠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수준을 뛰어넘어 전면적인 ‘야당 재편’의 헤게모니를 발휘하겠다는 관점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5. 70%가 넘는 비민노당 출신 신입당원들은 왜 ‘진보신당’에 입당했을까?

    New 진보야당의 방향성과 관련하여 진보신당의 새로운 당원 가입은 우리에게 생각할 꺼리를 준다.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라 생각되기에 잠시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예컨대, 내가 속한 서울시 지역구의 경우 3월 16일 진보신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할 때 당원이 30여명이었다. 그런데 4.9 총선 이후 60여명으로 늘어났고, 최근에는 11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놀라운데,

    첫째, 늘어나고 있는 비율 면에서 놀랍다. 불과 3개월 사이에 4배가 늘어났다. 둘째, 전체 당원 중에서 민노당 출신은 30%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셋째,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의 성분인데, 상대적으로 고학력 고소득 가치지향적 유권자들이라는 점이다. 동네병원 원장이라든가, 전문직종 종사자, 연구소 연구원, 노조 없는 사업장의 중소병원 간호사 등이다.

    과거 민노당 시절 이곳은 노조와 학생회 당원들이 전체 당원의 70%에 육박할 정도였다. 전통적 운동권 대중조직인 노조와 학생회에 기반한 정당이었다. 그러나 현재 진보신당 성동 가입자 중 노동조합 또는 학생회에 소속된 사람들은 현저하게 낮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가입을 꺼려하다가 이제 와서 가입을 하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은 이들이 심상정 비대위와 문제의식이 같았기 때문이다. 심상정 비대위는 당시에 민주노동당의 한계로 민주노총당, 친북당, 데모당(운동권당), 반대당의 이미지를 지적했는데, 이들 역시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민노당에 가입을 주저하다가 이제는 마음 놓고 결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심상정 비대위의 직관은 이들과 ‘코드’가 일치했던 셈이다. 그리고 그러한 직관이 옳았음이 이들 신규 당원 가입자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그렇게 볼 때, 다시 ‘분당’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혁신안’의 좌절이 아쉬운 것이다)

    6. 진보신당의 신입당원들, New 진보야당의 나아갈 바를 ‘암시’하다.

    이러한 진보신당 신입당원들의 가입 동기와 성분은 향후 ‘진보 야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과거 민노당은 조직과 세력 중심 결합체였는데, 진보신당은 무엇보다도 ‘가치 지향 중심’의 진보정당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초록+복지’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또한, 진보신당의 신입당원들이 상대적으로 고학력, 고소득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언급했는데, 전통 좌파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에 대해 중산층 정당으로 우향우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이다. 각종 여론조사 데이터를 보면 ‘진보’와 가장 상관 관계가 높은 척도로 잡히는 것은 ‘계층’이 아니라 ‘학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단지 한국적 현상만이 아니라 진보정당이 발달한 유럽을 포함한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서민 계층이 진보정당의 지지층이 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에 의한 ‘복지 경험’이 필요하다. 

    7.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1가구 1주택은 ‘강령’이지 ‘정책’이 아니다

    New 진보야당이 정책을 고민함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과거 민노당 시절의 ‘낡은’ 접근 방법과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NL과 PD세력 양자에 공히 있었던 편향들인데, ‘정책’을 ‘강령’으로 대체하려는 흐름이 바로 그것이다. (그 결정판 중 하나가 전진의 대선강령이었다.)

    예컨대,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1가구 1주택은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중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종의 ‘강령’이다. 복지국가 만들자는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뿐이다.

    정책과 공약이란, 자신이 실제로 당선되었을 경우 임기 내에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진정성에 관한 문제이며, 성실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지난 4.9 총선에서 임기 내에 실현가능한 ‘핀란드형 교육특구’ 공약을 내세웠던 심상정 선본의 경우 위력적인 뒷심을 발휘했던 반면, 그런 점이 부족했던 노회찬 선본의 경우 실현가능한 정책, 공약의 부재로 인해 홍정욱 후보에게 막판 추월을 허용한 것을 목격해야 했다.

    그 동안 ‘강령’을 정책과 공약으로 대체하려는 좌파적 무사안일함과 실력 부족으로 인한 점이었다는 점에서 전당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8. 오직 ‘국민의 편’에서 – ‘절발은 맞고’, ‘절반은 틀린’ 주장들을 넘어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의보 민영화 반대를 비롯한 공공성의 가치에 60% 이상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범보수정당 지지율이 더욱 높다. 이는 얼핏 보면 넌센스 같지만 어떤 ‘일관성’을 간직하고 있다.

    공기업 혁신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현재의 ‘공기업’에 대해 만족하느냐 묻는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불만족을 표시할 것이다. 거꾸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50% 이상이 갸우뚱해할 것이다.

    우파 집단은 전자의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하여 ‘공기업 개혁’ 공세를 하고, 좌파집단은 후자의 국민적 공감대에 기반하여 ‘민영화 반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둘 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진보진영의 올바른 해답은 ‘민영화가 아닌 공기업 혁신 대안’을 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주 오랜 세월을 운동권(?)으로 있으면서, 민주노총이 되었건, 민주노동당이 되었건, 민영화가 아닌 공기업 혁신 대안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간 좌파집단은 결과적으로 ‘현행 유지’를 주장한 셈이다. ‘국민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아니라 ‘노조의 눈치’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거의 모든 쟁점과 이슈에 해당한다. 교원평가제의 경우도, ‘정부방식이 아닌 대안적 교원평가제’가 정답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이 논의조차 된 적이 없다.

    뉴타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낡은 동네를 그냥 현상유지 하자는 것이 아니라면, ‘진보판’ 재개발 정책은 무엇인지 대안을 제출해야 했다. 영어교육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영어 몰입교육은 문제가 있지만 영어공교육에 대한 진보적 대안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듯 우파와 좌파가 서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주장을 평행선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지난 10년간의 형국이다.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고, 좌파는 그간 반대의 핑계아래 ‘현행유지’라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한 꼴이 되어 버렸다.

    대안야당으로 우뚝 설 ‘New 진보야당’은 무엇보다 위와 같은 진보진영의 낡은 관성과 단절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진보신당의 신입당원들이 ‘진보’에게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시에 한국사회 ‘민주파’ 유권자들이 절박하게 갈망하는 대안적 내용이기도 하다.

    New 진보야당은 세계화와 지식정보화의 큰 흐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정의로운’ 세계화와 ‘정의로운’ 지식정보화가 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사회의 우파와 좌파의 지루한 공방을 벗어나 ‘정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정답’을 말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는 국민적 동의와 엄호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노동자의 권리와도 결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9. 새로운 한국정치의 10년 – ‘New 진보야당’의 시대를 맞이하자

    2007년 대선에서 통합민주당 정동영 후보는 26%를 얻었다. 이것은 딱 20년 전이었던 1987년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후보가 얻었던 표가 26%였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당선될 때 49%의 득표였으니, 정동영 후보는 그간 불려놨던 지지층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셈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 정치의 ‘한 기간’이 완전히 끝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이기도 하다. 87년 김대중은 그 ‘시작’을 열었고, 정동영은 그 ‘끝’을 알렸다.

    과거 김대중의 민주당이 호남+개혁적 386의 결합이라는 ‘선명성’에서 시작했던 것처럼, New 진보야당 역시 ‘최초의’ 선명한 결집력 20% 지지층을 모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색깔이 분명하고, 앞서 언급한 정책적 변화들을 수반하게 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시대적 임무가 없는 정당인 민주당을 공중분해시키고 한나라당과 맞짱을 떠야 한다. 마치 영국에서 자유당이 사실상 소멸하고 보수당과 노동당의 양강 대결이 되었던 것처럼, 한국정치는 ‘New 한나라당’과 ‘New 진보야당’이 양강 대결을 벌리는 정치판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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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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