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 원내-포괄정당 돼야 한다”
        2008년 06월 24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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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정치 시위를 ‘직접민주주의’라고 아전인수로 평하는 것은 지식인 관념의 넋두리이고, 이번 기회에 현재의 민주주의를 넘는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모든 정국에 강령을 갖다붙이는 운동권의 버릇이다.

    한편, ‘제도정치가 중요하다.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단순 반복은 구체적 정세와 현실 주체를 묻어버린 일반론일 뿐이다.” – 이재영, 「최장집 비판, 진보정당이 거리에 남아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레디앙>, 6. 19

    위 이재영의 최장집 비판의 글을 역으로 해석해보면, 요즘 운동권과 좌파지식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촛불시위 이후 정국과 역할과 관련하여 요즘 운동권과 좌파지식인들은 본성상, “좌파(左派)는 좌파(座波)로 끝나선 안된다”, “대중정당정치를 강화해야 한다”, “정권퇴진으로 나가야 한다”, “주체의 재형성이다” 등의 논리를 펴는 것 같다.

       
    ▲ 채진원 전 민주노동당 정책1국장
     

    이런 고민들과 제안들은 옳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하는데, 필자가 본 것들을 고려해 주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촛불시위에 3번 참가했었다.

    촛불시위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열리고 형성된 시민들의 ‘자유발언대 운영’과 관련된 부분으로, 필자는 이것을 소통으로 표현되는 대안권력의 맹아, 즉 소통권력이라고 보고 싶다.

    자유발언대와 거버넌스

    유심히 보니까, 자유발언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사회자가 필요한데, 광우병대책위에서는 사회자를 선출하는 데까지만 관여하고, 나머지는 시민들에 의해 추대되거나 뽑힌 사회자의 운영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되었다.

    필자는 광우병대책위가 사회를 보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와 판단으로 시민들에게 자율권을 넘긴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본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런 부분이 광우병대책위가 가장 잘한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것을 필자는 학술적인 용어를 빌어 ‘거버넌스’라고 부르고 싶다.

    전문가의 조언이 있어야겠지만, ‘거버먼트’(통치)에 대비되는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우리말로 협치(協治), 공치(共治)라고 말할 수 있다. 거버넌스는 쉽게 말해서, 정부나 정당 등의 공적 기구가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독점적으로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시민사회 등 다양한 행위자에게 권한과 권위를 분산시키고 위임하여 참여시킴으로써, 운영을 공동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일종의 새로운 통치양식이다.

    즉, 바다 위의 배를 움직인다고 했을 때, ‘노젓기’는 다양한 행위자들이 하는 것이며, ‘방향 제시’는 정부와 정당이 하는 식으로 협동하는 것이다. 거버먼트가 아닌 거버넌스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성숙에 따른 ‘통치방식의 변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성숙은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단적으로 드러난 통치의 어려움은 촛불시위의 발단이 된 이명박 정부의 통치 실패에 있다.

    정부의 국정운영과정에 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정부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경우다. 좌파든 우파든 어느 파가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이다. 정당도 마찬가지이고, 대중조직도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운영에 참여시키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운영을 보장할 수 없다.

    촛불집회에서 꽃핀 자유발언대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광우병대책위도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자유발언대의 운영권을 시민들에게 넘김으로써, 거버넌스를 하였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함으로써, 그나마 촛불시위를 이끌면서 지도력과 신뢰를 인정받았다고 생각된다.

    만약에 거버넌스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운동권들은 소통부재로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곤경에 처했을 것이고,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퇴진당했을 것이다.

       
    ▲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하는 어린이
     

    촛불시위 이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좌파든 우파든, 운동권이든, 정부든 정당이든, 민주노총이든, 시민단체든,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은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독점적인 권한과 권위를 다양한 행위자에게 위임하고 분산시킴으로써, 다양한 행위자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광우병대책위가 마련한 시민대토론회는 의미가 있다. 그곳에서 향후 전망이 나올 것이다. 선험적이고 폐쇄적인 운동권과 좌파지식인들만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무엇보다도 특히, 정당의 거버넌스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정당 거버넌스의 핵심은 정당이 기존에 누려왔던 권위와 권한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사결정과 후보자선출방식을 당원이 아닌 일반시민들에게도 개방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장집 교수 등이 강조하는 ‘강한 정당’ 또는 ‘대중정당모델의 강화’라는 슬로건은 ‘정당 거버넌스’라는 개념과 배치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대중정당모델의 한계와 그것의 나쁜 이데올로기

    특히, 대중정당모델의 시대적 한계는 거버넌스가 절실히 요구되는 지구화, 후기산업화, 정보화로 표현되는 시대전환적 상황에 적합하지 못하다. 대중정당모델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던 정치를 일반대중에게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화, 조합원과 비조합원간의 분화 등 유권자의 이익이 파편화되는 시대적 상황은, 비교적 단일한 계급적 동질성에 뿌리를 내려 분명한 이념적 정파적 노선을 추구하려고 했던 ‘대중정당모델’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반대로 특정한 계급과 계층의 집단적 충성심에 의존하기보다는 ‘포괄정당(Catch all-party)’의 경우처럼, 포괄적인 이해관계자의 평균적인 입장에 맞춰 ‘실용적인 정책정당’을 추구하는 ‘원내정당모델’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원내정당모델의 시대적 적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대중정당모델의 시대적 한계는 대중정당모델을 추구했던 민주노동당의 한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민주노동당의 탄생이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이 모인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탄생할 수도 있었지만, 역으로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 이외의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등을 포함하는 서민들의 포괄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못하는 ‘딜레마적 한계’이자 ‘태생적 한계’와 연관되어 있다. 즉, 민주노동당의 한계는 지지층 확대의 한계이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이 그 탄생에서부터 대중정당모델을 지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민주노총의 이해관계는 민주노동당의 친노동-사회주의적 이념에서부터 민주노동당의 대의체계(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최고위원회)에 ‘부문할당’이란 방식으로 항상적으로 관철되고 있다.

    대중정당모델의 나쁜 이데올로기가 있다. 첫째, 분화된 노동계급의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 다. 대중정당모델은 결과적으로 비정규직과 비노조원들의 이해를 무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규직 조합원 노동자의 이해와 기득권만을 대변할 일종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의 나쁜 이데올로기의 둘째는 진성당원제도이다. 대중정당모델은, ‘진성당원제도’가 가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경직성과 폐쇄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숨긴다.

    왜냐하면, 민주노동당에서 ‘진성당원제’는 명분적으로는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노동당내 이념적 정파적인 편향성이 강한 소수의 정파활동가들에 의해 당과 당원들이 포획되어 있기 때문에, 정당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유권자들의 평균적인 선호를 대변할 수 없는 왜곡된 후보선출이나 정책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7대 대선후보결정일 것이다.

    방향 모색 : 진보정당의 원내정당화, 포괄정당화

    한국 정치의 위기는 대의민주주의 위기이다. 대의민주주의 위기는 정당의 위기이다. 따라서 그 출발은 정당모델을 개혁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진보정당이 한국에서 유의미한 제도권 정당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이탈했던 지지층을 불러들이고, 다양한 수준의 비정규직과 사회적 약자 등 포괄적인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대중정당모델에서 벗어나 원내정당모델(포괄정당화)로의 개혁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그 방향의 핵심은 원내의원들의 개인적 자율성을 기초로 하는 의정활동의 영역을 활성화시켜야 하며 당원이 아닌 일반 지지자와 유권자들도 당의 공직 후보자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개혁방향을 민주노동당의 예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민주노동당의 원내정당화는 종전과 다르게 정파/정규직/노조원 조직으로서의 정당(Party as organization)을 약화시키거나 또는 대신해서, 정당의 다른 측면인 정부 내 정당(Party in government)/유권자 마음속의 정당(Party in the electorate)/다양한 수준의 유권자(비정규직)가 상대적으로 살아나고 강화되면서 이 둘의 길항적 관계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한 기본적인 개혁방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의원들과 의원총회의 정책능력, 소통능력, 정책결정권한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것을 지원하기 위한 원외 당 정책위원회의 기능을 단계적으로 원내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

    둘째, 개방형국민경선제(open primary)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의 핵심은 정파 또는 이념의 영향력에 있는 당원보다 당파성이 적은 일반유권자의 투표참여비율이 절대적으로 크면, 클수록 그 순기능을 발휘하는 제도라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개방형 국민경선제’의 성격과 정반대인 이른바, 이념적 정파적인 편향성이 매우 강한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단체가 주요하게 참여하는 ‘민중경선제방식’은 철저하게 지양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민중참여경선제는 한편으로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운동권’ 조직을 묶는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일반 유권자들과 당을 단절시키는 방식이고, 다른 한편으로 조합원 교육의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조합원 대중을 단순 동원대상으로 삼는 방식으로, 시대착오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셋째, 민주노동당이 포괄적인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서 정규직노동자와 노조 조합원의 편향성에서 벗어나, 다시 말해서 이들의 기득권을 축소하고, 비정규-비노조원, 농민, 상공인, 여성,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 각 부문이 골고루 균형있게 반영되도록 당내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당의 대의기관인 대의원과 중앙위원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정규직과 노조에 편향적인 ‘부문할당제도’를 폐지하고, 각 부문의 이해도 동일하게 반영되도록 부문비율을 동일하게 조정해야 할 것이다.

    넷째, 당내 정파들의 ‘이념적 정파적 편향성’을 약화시키는 대신 ‘정책과 소통능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정파등록제’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서 이념적인 편향성이 강한 정파들은 원내정당모델에 부응하는 원내정파모델로 전환할 것이다.

    다섯째, 당의 이념과 이미지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이념도 민주-반민주, 자본주의-사회주의, 진보-보수 등의 이분법적 이념구도에서 벗어나 이념의 다원화와 다차원성, 세계주의-민족주의, 생태주의-개발주의, 여성주의-남성주의, 공화주의-자유주의/포퓰리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심상정 대표가 ‘생활 속의 푸른 진보’노선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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