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모차도, 중고생도, 넥타이도 여전
        2008년 06월 21일 04: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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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시간 국민행동 첫날 도심을 가로지른 만여 개의 촛불은 조중동의 축소 보도에 비웃음을 보냈다. 2주일여 전 72시간 국민엠티를 경험한 시민들에게 48시간은 소풍이나 다름없었고 그들에겐 시위장에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장면은 이제 친숙한 장면이 되었다.

    이 날은 광화문 점거에 나선 시민들에 대해 경찰이 일찍 강제해산에 나서면서 일부 몸싸움이 벌어졌다. 큰 충돌 없이 시민들은 인도로 밀려났고 광화문 사거리 일대 차량통행이 재개되면서 상황이 끝나는 듯 보였지만 이 과정에서 1명의 시민이 연행된 것으로 알려지자 다시 시민들이 모여 밤샘농성을 이어갔다.

       
      ▲ 유모차, 넥타이, 중고생 모두 여전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틀간의 철야농성을 위해 서울시청 광장 곳곳에 세워진 천막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시민들을 맞았다. ‘PD수첩-이명박 정부의 프레스 프렌들리편’을 방영하며 조중동 구독거부 운동을 펼치는 곳도 있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 대한 전시물을 걸어놓은 곳도 있었다.

    천주교 단체 ‘빈민사목’도 이곳에 천막을 설치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커피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한 수녀는 “도시빈민들과 함께하는 신부님과 수녀님들, 신도님들이 함께 나왔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거리로 나온 시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이런 봉사를 자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윤철 감독 "이 대통령 미국에 너무 친절"

    광장 뒤쪽으로는 철도노조가 제공한 화장실이 눈에 띄었다. 이동식 화장실 네 동은 그동안 화장실을 가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했던 시민들에겐 가장 중요한 장소가 되어주었다.

    이날 자유발언에는 ‘말아톤’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연출한 정윤철 감독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서울시장 때인데 그때는 친절하고 소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학생들에게 싸인 해주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너무 친절하셔서 그런지 너무 쉽게 미국에 가서 싸인을 해 버리셨다”며 쇠고기 협상을 비판했다. 그는 “스크린쿼터가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한국 영화와 미국 영화는 구분이 되지 않나? 하지만 한국 쇠고기와 미국 쇠고기가 어떻게 구분이 되냐?”고 말했다.

       
    어머니와 거리행진에 참가한 어린아이가 한 시민에게 물을 건네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이어 연단에 오른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은 “지난 10일 100만 촛불이 일어나고 잠깐 쉬는 사이 보수언론들이 우리의 촛불이 줄고 있다고 난리다. 하지만 이 자리에 여전히 1만이 넘는 촛불이 켜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일(21일) 8000번 버스를 타고 청와대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올리자, 만약 우리가 간다고 버스 노선을 바꾼다면 이 정부의 소통이 단절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일 명박산성을 쌓으면 국민토성으로 대응해 이 정권을 심판할 것”을 제안했다.

    8시 40분부터는 행진이 시작되었다. 시청을 빠져나온 대오는 명동을 지나 종로 1가를 거쳐 광화문으로 이어졌다. 많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행진을 계속했고 각자의 구호를 외쳤다. 조중동은 시민들의 수는 줄고 ‘좌파’가 점령해 나간다고 했지만 유모차도, 중고등 학생도, 넥타이들도 여전했다.

    앞서 행진을 주도하는 사회자는 19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상기시키며 “우린 당분간 아침이슬은 부르지 않는다”고 말해 웃음을 샀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장훈(38)씨는 “대통령이 사과해도 달라진 것도 없고 내일 쉬길래 촛불이라도 하나 들까 해서 나왔다”며 “촛불이 줄어든 것 같아 걱정했는데 오늘 보니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웃었다.

    광우병 대책위는 행진 중 구호를 잠시 멈추고 20여분간 시민들의 자율구호를 제안했다. 길게 늘어져 지나가는 시민들은 크게 16개 정도의 그룹을 형성해 구호를 외쳤으며 이중 “이명박은 물러가라” 구호가 10개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민주시민 함께 해요”란 구호가 5개, 나머지 하나는 “협상무효 고시철회”였다.

    9시 30분경 광화문에 도착한 대오는 광화문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은 전경버스 앞에 정복차림의 경찰을 배치해 전경버스의 파손을 막고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으려 했다. 중간 중간 욕설과 고성이 오갔지만 흥분한 경찰과 시민들은 양측이 각각 즉각 제지하며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10시 15분경 광우병 대책위는 “시청으로 돌아가 내일 투쟁을 준비하자”며 “오늘 12시 시코 상영이 있다”고 홍보했다. 이에 대부분의 대오가 흩어지거나 시청으로 이동했고 도로농성을 계속하던 300여 명의 시민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시민 연행된 후 거리농성

    이어 10시 50분경 정복경찰이 이들을 인도로 밀어 붙였고 이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는 시민들과 경찰간의 고성이 오갔다. 하지만 곧 차량통행이 재개되었고 시민들은 인도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멜로디언-새로운 투쟁 물품의 등장(사진=정상근 기자)
     

    끝날 것 같던 시위가 다시 점화된 것은 한 시민의 연행소식이 전달되면서부터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청 앞에서 ‘식코’를 보던 시민 3000여 명이 합류해 거리농성을 이어갔고 잠시 철수했던 전경차벽이 다시 들어섰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전경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어내고자 했고 파손을 가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다른 시민들의 제지로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찰은 새벽 1시경 전경을 투입해 다시 시민들을 인도로 몰아내는 작업을 했고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이 팔에 골절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지휘자는 “협조해달라, 경찰한테도 욕을 안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최대한 시민들을 자극시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찰의 해산과정에서 이미 폭력을 당한 시민들은 경찰의 사과를 요구하며 항의했다.

    곧 거리농성은 종료되었고 경찰들이 광화문 주위를 완전 둘러쌓았다. 이에 시민들은 신호등을 건너며 촛불시위를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경찰이 가로막아 시민들이 항의했다. 광화문 앞에서 두 번째 국민엠티는 이렇게 경찰의 완강한 저지 속에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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