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초가삼간 태운다
    2008년 06월 20일 11: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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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칭 ‘명박산성’으로 불리게 된 설치예술이 있었다. 다량의 컨테이너박스를 쌓아 도심 한 복판,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를 3면 입체로 차단함으로써 건축사에 남을 역작을 만들어 낸 이 정권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계엄사령관을 자처하고 있는 어청수 휘하 경찰들은 도로교통법과 문화재 관리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자신들의 작품을 성공작이라며 자평한다. 도대체 이들의 위법행위는 누가 처벌할 수 있는 걸까?

컨테이너 박스 뒤편에선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는 수십만에 달하는 엄청난 촛불들이 모여 컨테이너 박스 뒤편에 웅크리고 앉아 바람을 피하고 있었던 ‘쥐박이’ 무리들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판의 양상은 과거 어느 집회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고 새로웠다.

소위 ‘운동권’의 사열대식 집회문화가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하는 와중에 아고라는 시민들이 쏟아놓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조중동의 방해공작은 네티즌들의 현장중계로 좌절되고, 동원된 보수진영의 ‘맞불’ 집회는 그들의 몰상식을 드러내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87년 항쟁의 와중에 울려대던 ‘비폭력’의 구호는 기시감을 느끼게 하며 시위대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그리고 “아직 15년 밖에 못 살았어요”라는 여학생의 재기발랄한 구호는 드디어 ‘오~! 필승 코리아!’가 진정 ‘민주공화국’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정치철학적 사고로 전환된다. 광장으로 나선 촛불의 물결이 바야흐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애초 이 촛불들의 봉기는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을 반대하는 소비자 동맹 차원에서 확산되었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이명박 정부의 선택은 고색창연한 색깔론이었고, 배후소동을 일으킴으로써 대중의 비웃음과 공분을 함께 사버렸다.

건설회사 CEO 출신 대통령의 삽질에 준하는 판단 덕분에 문제제기의 범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같은 개별적 사안에 대한 것에서 벗어나 국정을 담당한 정권의 성격에 대한 비판 및 주권자로서 국민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로 승화되었다.

   
▲ 촛불집회 자유발언에서 헌법 1조 국민주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참석자
 

이 과정에서 촛불의 위력을 확인한 일군의 사람들은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선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점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제도적 실행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논의는 물론 오늘에 와서 새롭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이 확산되던 가운데 제기된 바가 있고 그 이전에도 각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바가 있다. 즉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라는 소위 직접민주주의 3종 세트를 헌법에 명시하는 개헌 논의가 그것이다.

문제는 87년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현행 헌법을 재편하자는 ‘개헌’ 논의가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 뒤편에서는 이미 ‘개헌’이라는 똑같은 주제를 놓고 정치집단 내부에서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생각하는 ‘개헌’은 촛불의 열기를 순간의 낭만으로 전락시킬 수 있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개헌’의 중심 의제는 직접민주주의다. 대의민주주의라는 현재의 합의구조가 무능력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 손에 손을 잡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직접 표현하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서 수천 년 전 ‘아테네에서 꽃피웠던 직접민주주의’의 노스탤지어를 꺼내드는 감수성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곧바로 제기되는 질문은 이거다. 직접민주주의 논의는 컨테이너 박스 뒤편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개헌논의에 대척점을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컨테이너 뒤편에서 이루어지면서 표면적으로 관심을 끄는 개헌 논의의 주제는 통치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소위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수사를 사용하면서 제안했던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결선투표제를 비롯한 통치구조 일반에 대한 논의가 그 내용이다. 통치구조에서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는 이렇다.

첫째, 대통령제를 유지할 것인가 내각제를 도입할 것인가? 둘째, 대통령제를 유지할 때 대통령의 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것인가? 넷째, 총리제를 폐지하고 대통령 부통령 런닝메이트제를 도입할 것인가? 다섯째, 국회의원 선출제도를 바꿀 것인가?

이러한 논의는 보수정치집단에서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권자로서 시민들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보수 기득권 세력인 아닌 시민들이 통치구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이 당연한 것이지만, 한 가지를 분명히 짚자면 기본적으로 통치구조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이 성립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논의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는 어떤가? 촛불의 집합이 직접민주주의 행사의 한 형태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가 직접민주주의의 실현태라고 하기는 어렵다.

직접민주주의든 대의민주주의든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요식적 절차로 전환되어 현실에 적용되는 이유는 뭔가 결론을 만들기 위해서다. 촛불은 민의의 분출을 가장 적나라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일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결론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촛불로 발현된 정치적 의사표현은 어떤 제도적 장치를 통해 걸러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직접민주주의’ 역시도 허상의 구호가 아닌 제도적 절차로 완결되는데 그것이 예의 ‘직접민주주의 3종 세트’다.

문제는 이 직접민주주의의 요소가 헌법에 반영되는 ‘개헌’이 진보적 또는 좌파적 입장의 개헌이냐 하는데 있다. 한국적 이데올로기 분류의 방식에 따르자면 주로 좌파나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이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은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문제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 세 가지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은 다수결의 원칙을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관철시키는 방식에 불과하다. 그 주장 자체는 하등 논란이 될 것이 없다. ‘직접민주주의 3종 세트’는 진보의 전유물도 아니고 보수진영 역시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즉 이 세 가지 방식은 ‘직접민주주의’의 실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가질지 모르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는 완전하게 가치중립적이다. 이 제도들은 직접민주주의라는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 실현방식임에 분명하지만 이들 제도 자체가 어떤 진보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더 나가서는 진보세력의 목을 죌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직접민주주의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원인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직접적인 방식, 즉 국민의 직접투표를 통해 창출된 지금의 정권과 여당이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라.

국민발안제, 국민투표제, 국민소환제에 대하여 보수진영이 몸을 사리는 것은 지금의 상황이 그들에게 불리해서이지 그들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두려운 그들의 ‘개헌’

컨테이너 뒤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들의 ‘개헌’ 논의 가운데 사실상 우리의 생활 전반을 지배할 가공할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주제는 바로 경제 분야의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진행되는 통치구조 재편 논의의 뒤편에서는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이 조항의 내용을 들며 “우리나라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눈길을 끈 바 있다. 화물연대 파업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홍준표의 이 발언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개헌의 절차를 엄격하게 하고 있는 경성헌법 체제에서 헌법의 자구를 수정하는 것은 국가적 대사가 된다. 더 나가 헌법의 개헌이 단순한 일부 수정 차원이 아니라 국체에 대한 부분을 바꾸거나 헌법체계 전반에 걸친 대 수술을 단행하는 차원이라면 아예 공화국의 순번이 바뀌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헌의 곤란함이 개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 번 개헌됨으로써 법률적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적 요청들을 ‘한 방’에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홍준표는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경제정의 조항의 성격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보수정치집단과 기업집단은 바로 이 측면에서 헌법 제119조 제2항이 우리 헌법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의 원칙과 동조 제2항의 정부규제원칙은 상호 충돌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비록 홍준표 의원이 한국의 경제질서가 사회주의적 경제질서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언급했지만, 홍준표 의원 스스로도 자신의 발언이 좌파적 발언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걱정했던 것처럼 이 조항은 그동안 시장지상주의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비난받아왔던 규정이다.

홍준표 의원의 수사적 표현은 적절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보며 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가? 그것은 바로 홍준표 의원이 지적한 본 조항의 성격으로 인하여 개헌과정에서 보수정치세력과 기업집단 등 시장지상주의자들로부터 제어하기 힘든 수준의 도전이 이 조항에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홍준표 의원이 본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을 본다면 이 우려는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홍준표 의원은 화물연대의 파업을 “운수 자영업자들의 운송거부”로 규정하고 이를 노사관계법에 입각한 파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홍준표 의원은 파업참가자들이 왜 ‘운수 자영업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피해를 봤는지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그들이 운수자영업자가 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다단계 하도급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되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이러한 관점은 전적으로 자본가들의 관점이지 노동자들의 관점이 아니다. 물론 홍준표 의원은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이유를 현행 법률과 헌법의 규정에 따라 분석한다.

시장주의자들 역시 홍준표 의원과 같은 입장에서 본 규정의 성격을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이 논의될 경우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규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기업집단과 이들의 뒷배를 받고 있는 보수정치세력의 과제가 될 것이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이 무력화되면 홍준표 의원이 한국 경제체제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라는 말 자체를 할 일도 없고, 출자총액제한제 같은 기업규제정책을 법률로 만들 근거도 사라진다.

사실상 현행 헌법의 체계 안에서도 시장주의자들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경총을 비롯한 기업집단은 물론 이석연 법제처장 같은 이들도 헌법 제119조 제2항은 동조 제1항이 밝히고 있는 기본 원리를 보충하는 성격만을 가지고 있다고 폄하하는 일들을 해왔다.

그런데 이런 논쟁도 필요 없이 개헌을 통해 아예 본 조항과 같은 규정을 거세시켜버리면 국가가 시장에 개입할 최소한의 기준 없이 오직 시장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장의 지상낙원이 펼쳐질 수 있게 된다.

소위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FTA 체결을 서두르면서 사실상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무력화시켰다. 입으로는 ‘원 포인트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멀티 포인트 개헌’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원집정부제’와 같이 통치구조에 치중한 개헌을 이야기하고 있는 한나라당 역시 지속적으로 본 규정의 문제점을 거론해 왔다. 그동안 뉴라이트와 자유기업원, 전경련 등이 헌법 제119조 제2항의 삭제를 요청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국민성공시대’를 약속하면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전히 해제하고자 기획하고 있는 현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요청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한미 FTA 역시 현 정부에서도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다. 촛불의 반발을 감내하면서 까지 미국산 쇠고기 재수입을 결정하면서.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에 의해 제18대 국회 최초로 발의된 법안이 1가구 1주택 보유자 종부세 면제법안이라는 것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경과를 염두에 두면 향후 개헌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헌법 제119조 제2항의 무력화가 강력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지킬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적 저항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한국사회의 진보세력들은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준동에 대척될 수 있는 경제정의 원칙을 내세울 수 있을까? 아니 백보 양보해서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지켜낼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개헌을 이야기한다면,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은 오히려 건전한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규정으로 판단해야 한다. 본 규정은 기본적으로 불평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시장자본주의와 이를 해결해야 할 민주주의의 조화에 대해 최소한의 범위를 정하고 있을 뿐이다.

본 규정 이외에 우리 헌법에서 국가적 차원의 경제정의 실현을 천명하고 있는 규정은 제23조 제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121조 제1항 ‘경자유전의 원칙’ 뿐이다.

즉 진보의 입장에서 보다 평등한 경제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개헌에 반영하기 위해서라면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을 넘어서는 더욱 강력한 경제정의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그것도 매우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현행 헌법 제14조는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16조는 주거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조항은 자유권적 기본권의 한 내용을 이루고 있을 뿐이지 ‘거주’ 혹은 ‘주거’와 관련된 사회권적 기본권의 내용은 헌법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득에 관계없이 주택이 안정적으로 보급될 수 있도록 하고 주택에 대한 점유권을 소유권과 같은 위상에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은 우리 헌법에 나와 있지 않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 들어서는 가운데 돈 있는 사람들의 ‘땅 사랑’을 통한 재테크의 현실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건 집 한 채 가지지 못한 채 길바닥에 나앉아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일 뿐이었다.

이러한 일이 사회 내에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경제정의를 세우고 그 구체적인 내용을 헌법의 규정으로 명시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없애고자 획책하는 시장지상주의자들에게 대척하는 진보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진보세력은 이러한 주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론적인 준비 혹은 헌법 조항의 문구를 정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조문의 내용은 한 순간에 뚝딱 만들 수도 있을 만큼 이론가들은 널리고 쌨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을 사회적 파급력을 가진 지배적 아젠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여기서 시장지상주의자들과 대척에 서야할 진보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렇다면 최소한 현행 헌법의 조문을 지킬 수는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역시 회의적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진보세력들은 촛불의 위력을 실감하면서 그 촛불이 보여준 가능성을 ‘직접민주주의’ 구조로 전환하는 데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인권단체들은 기본권 제 조항들의 구체적 정비에 대한 논의는 생략한 채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데만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민족주의자들은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제4조 평화통일조항에만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다.

경제정의조항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구하다. 쉽게 말하자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이 상황에서 자본이 총력을 다해 경제정의 조항을 무력화시키려 준동한다면 그걸 막아낼 수 있을까?

문제제기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시장지상주의로 무장한 보수진영의 개헌공세에 대비한 진보세력의 준비는 되어 있는가이다. 대중의 자발성이 폭발하면서 전국을 강타한 촛불의 쓰나미 한 가운데에서, 진보세력은 확고한 지향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이념을 대중들에게 설득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준비하고 주장하고 대응하자

헌법은 지배집단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마련된 가장 강력한 제도적 장치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적 공동체의 보편적 가치질서를 헌법이 담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헌법은 기존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세력에겐 전복의 대상임과 동시에 그 보편성을 활용해야만 할 대상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보편성의 가치를 활용하자는 측면에서 판단할 때, 현재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개헌을 논의하고 있는 일군의 사람들은 두 가지를 고려해야만 한다. 첫째, 개헌논의를 제기할 것인가 유보할 것인가? 제기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둘째, 새롭게 만들어질 헌법에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두 가지 고려사항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진보진영이 개헌논의를 먼저 제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헌’이라는 행동양식을 전제하고 논의를 촉발하는 것은 오히려 컨테이너 박스 뒤편에서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리만 깔아주고 마는 불상사를 발생시킬 수 있다.

정치세력을 향해 ‘개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대중을 향해 새로운 가치에 대한 아젠다를 설파해야 한다. 언제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어나올 수 있는 역동성을 가진 대중들 사이에서 진보세력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도록 주장해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주장하며 거리를 장악했던 촛불들이 대운하 반대를 함께 주장했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사업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게 된 과정을 돌이켜 보자. 민주공화국에 대한 고민이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청으로 발전하게 된 것 역시 이번 촛불집회의 성과 중의 하나다. ‘개헌’이라는 절차적 작업은 바로 이러한 성과들이 누적된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한편 당장 ‘개헌’을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진보세력은 개헌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준비과정에서 생산되는 이론들은 ‘개헌’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은 87년 6월 항쟁의 와중에서 보수 정치집단 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내용이 구성됨에 따라 상당한 부분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보수정치세력은 통치구조 편에 관심을 두고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행 헌법은 각 기본권 조항을 보다 구체적으로 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있고 특히 사회권적 기본권의 충실한 확대와 보장을 명기할 필요도 있다.

더불어 시장지상주의자들에 의해 획책될 경제정의 조항의 사문화 내지는 무력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준비는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의 규정을 지키는 것을 넘어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대해 보다 철저한 통제가 가능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포함된다.

광장에서는 이미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한 길거리 강연과 토론이 진행된 바가 있다. 헌법 제1조 제1항이 천명한 대한민국의 국체선언,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대원칙과 바로 이어지는 제2항의 국민주권주의는 수많은 촛불들의 마음을 충분히 들뜨게 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대해 논의하면서 그들은 촛불을 들고 나온 자신들이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피력한다. 이들의 자신감을 어떻게 제도적 장치로 이어갈 것인지를 고민할 의무가 진보세력에게 있다. 그 준비를 해야 하고, 준비된 바를 끊임없이 주장하고, 보수정치세력과 시장지상주의자들의 공세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진보는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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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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