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유일한 좌파, 사민주의"
        2008년 06월 18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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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회과학적 명제는 배경이 되는 구체 현실(context)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모든 주장은 현실의 요구와 실천적 필요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이론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복잡다단한 현실의 변화와 장구한 역사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성급하게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고 누군가를 단죄한다.

    유럽식 사민주의가 대안이다

    주섭일 선생은 언론인으로서 20여년 중앙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의 파리 특파원 생활을 하였다. 주섭일 선생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이 일대 인민혁명을 겪을 때 취재를 하였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거듭 날 때도 현장에서 취재를 하였다. 그는 세계사적인 사건들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역사를 연구하였다.

    그래서 그가 쓴 책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필수적인 지적 영양소의 역할을 해왔다. 주섭일 선생이 이번에 다시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펴내니 70대에 들어선 노익장의 왕성한 지적 활동도 놀랍지만, 바로 지금 다시 한번 한국의 지식인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거듭 감사하다.

    주섭일 선생의 결론은 여전히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현실에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의 자칭 또는 타칭 좌파라는 사람들은 여전히 공산주의적 사고방식, 또는 코민테른 시절의 식민지 종속국 민족해방운동 이론을 답습한 ‘운동권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거나 아니면 미국식 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여 좌우의 구분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한국좌파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장면

    주섭일 선생이 직접 현장을 취재하였으며 그 깊은 역사적 의미를 한국의 좌파들에게 전하려고 애쓰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이탈리아 시회에 깊숙이 뿌리 내린 100만 당원 조직의 막강한 힘과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자력으로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을 무너뜨린 반파쇼 투쟁의 빛나는 역사, 그리고 그람시 사상이라는 독자적 정치철학을 가진 이탈리아 공산당이 좌파민주당으로 거듭난 사건이다.

    그 날의 이탈리아 공산당 전당대회장의 모습을 그는 이렇게 전한다. “오케토 당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오늘부터 이탈리아 공산당은 없다’고 선언했고, 곧 이어 해머와 낫이 그려진 붉은 깃발이 내려졌다. 동시에 ‘인터내셔널’이 울려 퍼졌다. 모두들 인터내셔널을 합창하면서, 대회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이로써 냉전 시대 자본주의 진영 최대의 공산당이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좌파민주당으로 거듭났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이탈리아 공산당은 좌파민주당으로 거듭나 1996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처음으로 집권하였다. 물론 여러 다른 좌파 정당들과 연합한 이른바 ‘올리브 동맹’을 통한 집권이었다. 그럼에도 16년이 지난 오늘 이 시점까지도 우리나라에는 그들의 선택과 결단이 가지는 필연성과 커다란 의미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안타깝다.

    반면에 우파에서는 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생명력을 다 하였기 때문에 지금 우리로서는 반면교사로 삼는 것 이외에 배우거나 참고할 것이 없다고 본다. 특히 그들은 최근 스웨덴에서 우파가 집권한 사실이나 프랑스에서 우파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집권한 사실을 들어서 “이제 사회민주주의는 끝났다”라고 말한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경우

    그러나 주섭일 선생은 스웨덴 우파가 자기들의 전통적 입장을 크게 수정하여 복지국가를 인정하고 복지국가를 지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집권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첫 내각 15명 중에서 사회당 출신 장관을 네 명이나 기용하고 중도파도 두 명을 임명한 사실을 지적하고, 또 사르코지 역시 복지국가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2006년 9월 17일, 스웨덴 총선에서 보수당이 중심이 된 중도보수연합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다. 41세의 행정 경험이 전무한 보수당 당수 라인펠트는 “우리는 자신에게 도전함으로써 승리했다”라고 말했다. 보수당의 기존 입장을 크게 수정한 것이 승리의 이유임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수 언론들이 스웨덴 모델 복지국가의 종말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를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로 추구하는’ 좌파를 공격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라인펠트는 원래 완고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였다. 1993년 발간한 저서 <잠자는 국민>에서 스웨덴 모델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대안은 앵글로-색슨 방식의 신자유주의 개혁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2003년 보수당 당수가 되고 나서부터는 가치관과 철학을 180도 바꾸어 버렸다.

    유럽 우파의 실용주의와 이명박의 실용주의

    그는 신보수주의의 깃발을 들고 ‘신보수당’은 스웨덴 복지국가 모델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는 복지 모델의 나무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실업 문제 해결과 고용 창출을 집중 공약하는 식으로 보수당의 정체성을 재확립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실용주의다. 이는 시장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이명박의 실용주의와는 매우 다르다.

    사르코지는 프랑스 경제성장위원회 위원장에 미테랑 대통령의 오랜 동지이자 경제특별보좌관이었던 사회민주주의자 경제학자 자크 아틸리를 임명하였다. 그리고 사회당 대선 경선에서 2위를 한 전 재무부 장관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추천했다. 그리고 외무부 장관에는 사회당 거물 정치인 쿠슈네르를 임명했다.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 쿠슈네르는 프랑스의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좌파의 거물 정치인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해 제3세계의 기아-의료-인권운동에 신기원을 세웠고, 1990년대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일했다.

    이것이 사르코지의 실용주의라는 것이다. 박근혜 총리 기용설에서 심대평 총리설까지 가는 이명박의 실용주의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사르코지의 국정 개혁안을 살펴보니 프랑스 모델을 폐지하고 신자유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어디서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의 좌파연합정부가 도입한 부유세도 완화할 뿐 폐지하지 않고 조스팽 총리의 중도좌파정부가 실시한 주35시간 노동제도 원칙은 그대로 두고 원하는 사람은 주4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사르코지의 실용주의라는 것이다.

    우파가 만든 복지국가

    그리고 주섭일 선생에 의하면 사르코지의 이러한 행동은 바로 그가 계승하고자 하는 드골의 전례를 따르고 있다. 우리는 흔히 드골이라면 우파의 전쟁 영웅이라고 단순히 알고 있지만, 프랑스의 복지 국가를 실제로 만든 것은 드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1944년 8월, 드골이 파리에 입성하면서 곧바로 프랑스 임시정부를 구성하였는데, 그 임시정부는 드골파와 중도파와 사회당과 공산당의 거국내각으로 구성하여, 좌파 각료들의 책임 하에 프랑스의 사회복지시스템 즉 ‘세큐리테 소시알’을 구축하였다는 것이다.

    주섭일 선생은 1981년 좌파 연합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14년간 집권하면서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의 노선을 확립한 미테랑과 그를 이어받아 우파 시라크 대통령 하의 수상으로서 주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여 실업률을 크게 낮추면서 프랑스 경제의 경쟁력도 높인 조스팽, 그들의 정신적 스승으로서 프랑스 사회민주주의의 아버지라 할 장 조레스를 높이 평가한다.

    장 조레스는 20세 초에 프랑스 사회주의의 온건파의 대표 주자로서 의회주의적 노선을 확립한 인물, 그는 1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서 분투하다가 암살당했다. 그는 ‘통합과 종합의 천재’라고 불리었다.

    저널리스트인 주섭일 선생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스웨덴 등 서유럽 정치를 관찰하여 사건이나 변화가 있을 때 마다 현장감 넘치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한 기록을 묶어 책으로 펴냈기 때문에 이야기가 중복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은 그 때 그 때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하여 읽다보면 독자가 스스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세계 사민주의 진영의 논쟁

    그리고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은 웬만한 식자들도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의미가 큰 사실들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도 결선 투표제가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과반수의 의견만을 전체의 의견으로 간주하는 프랑스 특유의 정치철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으면 2주일 후에 다시 결선투표를 실시하고 그 때에는 1차 투표에서 12% 이상을 득표한 후보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세기의 전환기에 전개된 세계 사회민주주의 진영 내부의 노선 투쟁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영국노동당의 블레어와 프랑스사회당의 조스팽 사이에서 이루어졌는데 독일사민당 내에서는 슈뢰더와 라퐁텐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1997년 5월 2일 영국노동당 블레어 당수가 ‘신노동당’의 깃발로 집권하여 이른바 ‘제3의 길’ 바람을 일으키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독일의 슈뢰더 총리가 ‘제3의 길’에 동조하고 프랑스의 조스팽 총리와 이탈리아의 다레마 총리가 이를 신자유주의 아류, 사회자유주의로 비판하면서 논쟁은 가열되었다.

    특히 조스팽은 1999년 10월, ‘21세기 신사회주의자 선언’을 발표하여 블레어와 슈뢰더 노선을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평가하고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논쟁은 가열되고 21세를 앞두고 세계 사회민주주의 진영이 분열될 우려까지 있었다.

    그러나 1999년 11월 초순 파리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총회에서 양측은 ‘사회민주주의의 다양성을 상호 인정한다’고 합의하는 선에서 타협하였다. 그리고 후에 슈뢰더가 한 발 물러서서 정통 사회민주주의로 복귀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대륙에서는 ‘제3의 길’ 바람이 잦아들었다고 한다.

    유럽 좌파와 한국 좌파는 다르다

    주섭일 선생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한국 독자를 위해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 유럽의 좌파는 한국에서 부르는 진보나 좌파와는 전혀 다른 정치 세력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진보는 북한 김정일의 공산주의 독재 및 권력을 세습하는 봉건적 전체주의에 협력-화해하려는 친북 세력을 뜻한다.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거부하며… 북한인권문제에 침묵하는 세력이다.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발의해 토의하면 기권하며, 유럽연합이 북한인권청문회를 개최할 때 벨기에의 EU 본부에까지 시위대를 보내 ‘북한인권보다는 반미’를 외치는 것이 한국의 진보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는 북한인권청문회를 주도적으로 조직하는 세력이다. 그래서 한국의 진보와는 정체성이 다르다.” 아마 그가 가장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 듯하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개량주의, 기회주의로 매도하고 무시, 외면하는 사회민주주의, 적군 취급해 온 사회민주주의만이 ‘21세기의 유일한 좌파’라고 그는 부르짖는다.

    그는 말한다. “한국 진보만이 ‘사회민주주의의 길’이 성공의 길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이치를 모르고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한국 진보가 ‘사회민주주의의 길’로 달려가기 바란다.” 그는 한국 정치가 가야 할 길이 ‘사회민주주의의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사민주의 길로 달려가라"

    주섭일 선생의 책,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들고 가다가 삶에서 진지하고, 공부도 열심인 후배를 만났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무슨 책이냐고 물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책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는 파리 코뮌에 관한, 최근에 출판된 책을 들고 있었다.

    그리곤 나에게 “선배의 책과는 다르지만… ”이라고 말했다. ‘개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한 사람의 청년기의 사진과 장년기의 사진을 들고 다른 사람인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바로 프랑스 대혁명과 2월 혁명과 파리 코뮌을 이어받고 있다는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난해한 이론을 공부하기 전에 쉬운 주섭일 선생의 책부터 읽어야 한다. 공부의 순서를 잘못하면 이론은 살아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죽은 것, 역사의 퇴적물, 화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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