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혁의지 버리고 집권의지 가져라"
    주기적 분출, 보수독점과 동전 양면
        2008년 06월 17일 07: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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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열린 진보신당과 <경향신문>의 토론회 ‘촛불집회와 진보정당’은 촛불의 형식을 빌려온 듯했다. 자료집에 ‘발제’라 표기된 장석준 정책팀장은 촛불에 관련된 쟁점을 짧게 정리한 후 내내 물러나 있었고, 토론회는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성공회대 정태인, 서울대 조국, 한양대 하승우 등 네 명의 토론자가 사회자 조현연의 질문에 돌아가며 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장석준 정책팀장.
     

    장석준은 양쪽 끝에 ‘정당정치’와 ‘운동정치’가 위치하고, 박상훈, 조국, 정태인, 하승우가 순서대로 죽 늘어선 도식을 발표했는데, 토론자들은 장석준이 정리한 그대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토론 주제가 ‘촛불 집회와 진보정당’인 만큼 “진보정당이 중요하다, 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수렴되기는 했지만,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있어 토론자들의 주장이나 제안은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 만큼이나 큰 스펙트럼을 보였다.

    촛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단 문제에서는 네 토론자들이 본 바, 촛불집회의 이런저런 측면을 이야기하였다.

    “경찰폭력 별 거 아닌데…?”

    정태인은 첫 집회에 나가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며, 촛불집회가 “87년 과 2002년 월드컵 합쳐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태인은 “스위스에서는 유전자변형생물(LMO)에 대해 국민투표했고, 영국에서는 선거할 때 사람만 뽑는 게 아니라 지역 사안에 대해서도 투표한다. 우리도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은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보고 ‘별 것 아니네’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절대 용납지 않더라. 민주주의 이전의 옛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경찰폭력에 둔감하지만, 그 별 것 아닌 경찰폭력에 대해서도 크게 분노할 만큼 87년의 성과가 굉장하다”고 말했다.

    이어 조국은 “촛불은 진보정치세력의 지도력 부재가 드러난 사태다. 하지만 대중 찬양만 하고 있다 보면 대안을 낼 수 없고, 대중은 다시 보수로 회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승우는 집단경험이나 ‘교육’의 측면을 강조했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민되기’ 과정, 능동적 정치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촛불집회가 교착 상태로 가는가 하는 문제도 중요치 않다. 그 과정에서의 학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승우는 “이미 제기돼 있는 의제를 촛불에 결합시키는 방식은 긍정적이지 않다. 대변기능을 하던 기존의 사회운동은 역할이 변해야 한다. 정당정치와 대중운동의 관계에 대해서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 속에서 이론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은 “베버는 ‘정치는 위험한 것’이라 말했는데, 오늘 위험한 이야기를 좀 하겠다. 촛불 현상을 지나치게 신화화하는 해석은 위험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상훈은 “요즘 촛불집회를 누가 더 높게 평가할 수 있는지 경쟁하고 있다. ‘위대한 시민’과 ‘대중의 놀라운 창발성’을 거론하는 사람 중에는 때에 따라 말을 바꾸던 사람도 있고, 이번 시위의 새로움을 과장하는 해석은 대부분 사회운동과 접촉하지 못한 중산층 엘리트 지식인들이 내놓는다”고 가혹하게 평했다.

    이어 박상훈은 “대의민주제, 제도정치,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반정치적이고 낭만적 경향은 매우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퇴진시키고 뭐 할 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네 토론자의 의견은 “제도화가 꼭 무엇인가를 보장하는 게 아니고, 힘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대동소이했다. ‘이명박 퇴진운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등장했다.

    조국 교수는 “개헌 논의는 법률주의적 시각”이라며, “대통령 소환제는 어느 정권이든 중간에 끝장낼 수 있는 양날의 칼날이다. 제도화는 칼날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고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또 조국은 “‘이명박 퇴진’을 주장하려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권력 쥐고 뭘 할 건지, 대중이 그런 주장을 믿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정권이 진보정당에게 오겠는가? 안 온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국은 “퇴진운동은 다른 파국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보다는 촛불시위자들의 꿈과 희망을 받아안는 데 주력하자. 학교체벌이나 청소년 아르바이트 문제 같은 걸 제기하자”고 제안했다.

    박상훈도 촛불집회의 제도화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이었다. “소환제가 되려면 스위스처럼 합의제여야 한다. 한국 같은 경쟁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대통령 중간평가나 신임투표 때마다 집권세력이 승리했던 것도 잘 지켜봐야 한다.”

    박상훈은 91년 5월 정국, 97년 총파업, 02년 촛불, 04년 탄핵 정국 때 대규모 운동이 있었지만 보수적 정치독점이 지속됐다며, “한국정치에서 주기적 운동의 분출은 보수독점적 정당체제의 다른 얼굴”이라고 파악했다.

    박상훈은 “촛불의 핵심은 항의의 표출이다. 이 항의를 모을 수 있는, 조직노동에 바탕을 둔 진보정당을 대안 정치세력으로 등장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주기적 운동 분출은 보수독점정치의 다른 얼굴”

       
     
     

    하승우는 “퇴진운동으로는 정치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 하는데, 말릴 것 없다. 강력한 시민불복종운동을 제대로 해보자. 시민들이 정부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주제인 진보정당 문제에서는 네 토론자가 진보신당에 여러 제안과 조언을 하였다.

    하승우는 “진보정당은 국민투표를 이야기하기 전에 지구당 문제를 먼저 고민하라. 촛불은 대중과 정당의 신뢰관계 상실이다. 대중과 대화에 나서야겠지만, 정당 내부에서 직접민주적인 구조와 소통구조를 어떻게 만들가를 고민하라”고 제안했다.

    정태인은 “진보정당 사람들은 집권이 어렵고 무섭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권하지 않으려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어 정태인은 “진보신당은 변혁의지를 버리고 집권의지를 가져야 한다. 이런 혁명상황에서도 아무 프로그램을 못 만들면서 무슨 변혁인가? 국민들이 받아들일 현실정치라도 만들 수 있는가? 아고라에서는 진보신당이 여당인데, 이를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물었다.

    “집권이 두려운 진보정당”

    박상훈은 “운동이냐 정당이냐, 직접민주주의냐 간접민주주의냐는 식의 개념 대립은 정치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이라고 최근의 논쟁구도를 혹평했다.

    “진보신당이 촛불 정국에 개입했으면서도 정당으로 인식되지 않은 것은 정치적 권위체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 내일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하는 비정규직은 시위에 나오기 어렵다. 그들은 전에 믿었던 정당에게 계속 투표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정치다. 촛불 에너지가 좋은 정치로 바뀌지 않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박상훈은 주장했다.

    조국은 냉정한 현실주의 정치를 강조했다. “탈정치적 시민운동이나 민중운동이 좋다는 인식을 깨야 한다. 정치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인식을 퍼뜨려야 한다.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민주당의 한계가 확인됐다. 그 지지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한나라당 아니면 민주당이라는 믿음이 깨졌다. 촛불시위의 마무리는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경쟁이다.”

    조국은 ‘사람’을 특히 강조했다. “왜 박근혜에게 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몰려드는가? 그걸 알아야 대중정치를 할 수 있다. 진보운동과 진보정치의 목표는 이런 인격적 일체화이고,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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