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봉춘, 고봉순 우리가 지켜줄께"
        2008년 06월 14일 03: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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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마세요, 내 그런 건 정말 처음봤어요, 군복 입은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드는데 겁이 확 나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이 소리 지르면서 욕하고, 빨갱이다 뭐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들을 해대요, 자기들이 어떻게 만든 나라냐고 하는데 아니, 대한민국은 자기들만 만들었습니까?"

    우익 방식 ‘의사표현’ 분출

    오후 11시 30분, KBS 앞에서 농성 중인 이종율(53)씨는 ‘고엽제 전우회’ 등 우익단체들이 KBS 앞에서 농성하던 장면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씨는 "하도 황당하고, 자식같은 아이들한테 그렇게 욕해대는 것이 같은 기성세대인 나도 부끄러워 아직까지 여길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임무 수행자회가 시청 앞 광장에서 결국 촛불을 든 시민들을 폭행한데 이어 이날 보수 우익단체들은 청계천, MBC, KBS를 방문해가며 우익단체식의 ‘의사표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들은 청계천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던 시민들을 폭행하고 이들이 설치한 기물을 파손했다.

    이어 MBC에 난입해 출입문을 봉쇄하고 고함과 욕설을 질렀으며 LPG가스통을 이용해 불을 뿜으며 위협했다. KBS에도 난입해 농성 중이던 시민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본관 앞에서 군가를 틀며 9시까지 농성하다가 곧 해산했다. 같은 시각, 시청에서 출발한 2만여명의 시민들은 마포 방면에서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KBS앞 천여개의 촛불이 시청에서 온 2만여개의 촛불을 맞이하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고 심미선, 신효순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세상을 떠난 지 6년째 되는 이날 시청광장 한켠에서는 두 여중생을 기리는 분향소가 들어섰다. 7시 20분부터 시작한 촛불 문화제에서 한 고등학생이 두 중학생을 기리는 편지를 낭독하긴 했지만 보수언론이 노리던 반미구호 대신 늘 외쳤던 "협상무효"와 "이명박 퇴진"이 광장을 지배했다.

    두 여중생의 분양소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서 두 여중생 영정에 헌화했다. 그 옆으로 두 여중생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되었으며 당시 사건을 잘 모르는 중고등학생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영상을 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여학생들도 많았다.

    돌아다니면 늘어나는 촛불들

    이날도 어김없이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고 8시 40분 경 행진이 시작되었다. 원래 시청에서 명동방향으로 돌아 광화문에 도착하는 코스였지만 그 시각 우익단체들에 의해 KBS앞의 촛불시위대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광우병 대책위원회는 여의도 KBS까지 긴 행진을 시작했다.

    최초 2만여명의 시민은 시내 각지를 돌며 규모를 키워나갔다. 촛불문화제 시작 이후 최초로 여의도에 입성한 시민들은 화려한 불빛의 국회를 향해 "정신차려, 똑바로해"를 외쳤고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노리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퇴진을 외쳤다. ‘마봉춘(MBC), 고봉순(KBS) 우리가 지켜줄께’란 내용의 재미있는 손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날 행진에서 경찰은 교통통제에만 주력했다.

    KBS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10분으로 이미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던 1천여 명의 시민들이 큰 소리로 환호하며 맞았다. 양 측 시위대는 서로 손을 흔들어 대며 반갑게 맞았고 박수로 서로를 격려했다. KBS본관 계단앞에 모여앉은 시민들 사이로 99년 KBS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현상윤PD가 발언대에 올랐다.

    그는 "현재 KBS노조는 뉴라이트 노조이며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결정한 것은 권력의 방송장악을 돕는 시대착오적인 일이다"라고 비판했다.

       
    ▲ 진보신당이 살포한 전단을 한 시민이 들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약 20여분간 KBS 앞에서 휴식을 취한 시위대는 곧 여의도 한나라당사로 이동했다. 이 소식을 들은 경찰은 신속하게 한나라당사 앞에 전경차로 바리케이트를 쳤고 11시 50분경 이를 곧 시민들이 둘러쌓다.

    KBS노조는 뉴라이트 계열

    시민들은 전경이 아예 길을 못가게 막자 강하게 항의했다. 몇몇 시민들은 진보신당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한나라당사로 알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창가에 촛불을 밝히고 ‘더이상 못참겠다. MB야 물러가라’라는 내용의 하얀 종이전단을 위에서 뿌리자 시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진보신당은 약 4차례 대량으로 유인물(?)을 살포했다. 한편 몇몇 시민들은 한나라당사를 향해 100여개의 날계란을 던지기도 했다.

    한편 대부분의 시위대는 전경차 앞에 앉아 간이집회를 갖고 12시 45분경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200여명의 시민들은 큰 고충을 겪은 MBC에 ‘위로 방문’을 갔고 300여명의 시민들은 KBS 앞 집회로 향했다. MBC로 간 시민들은 전경이 정문을 막고 있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고 MBC측은 곧 경찰에게 철수를 부탁하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최소 인원에게 출입을 허용했다.

    시민들은 토론을 통해 MBC정문 앞을 비워주고 거리에서 응원농성(?)을 계속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중랑구에서 함께 온 5명의 중고등학생들은 "오늘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왔다"며 "처음에 간다니까 물대포 맞고 방패로 맞을 것 뭐하러 가냐고 핀잔도 들었다"고 말했다.

    부모님 허락받고 왔어요

    그들은 "처음 와봤는데 재미있었다"며 "하지만 한나라당사 앞에선 고지가 저기인데 이대로 가긴 좀 아쉽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MBC앞 시민들은 1시 30분 경 자진해산했고 100여명의 시민들은 다시 KBS앞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도부도 없고 누가 가자고 한 사람도 없는데 시민들은 움직이고, 구호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고등학생도, 하이힐 신은 젊은 여성도, 나이 지긋한 중년의 남성도 함께 불렀다.

    KBS앞에는 여전히 200여명의 시민들이 농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초코바를 나누어 먹고 음료를 나눠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 ‘다인아빠’가 시민들에게 라면을 나누어 주고 있다.(사진=정상근 기자)
     

    시민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는 봉사를 하던 ‘다인아빠’는 "인천에서 왔다. 아프리카 시민방송을 하고 있는데 원래 시청으로 가려다가 우익단체의 행패를 보고 분해서 이리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에서 커피 봉사를 하고 있었으며 새벽 2시경에는 라면을 끓여 조금씩 나눠주고 있었다.

    라면이 떨어지고 기다리는 줄은 더 길어지자 당황하던 ‘다인아빠’는 시민들이 라면을 더 사오면 끓여주겠다고 말했고 곧바로 넥타이 맨 몇몇 시민들이 라면을 사러 갔다. 그들은 "얼마나 더 끓여줄 수 있냐?"고 물었고 라인아빠는 "많을 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얼만큼의 라면을 사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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