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본능과 시민의 발랄함 승리하다
        2008년 06월 13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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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8촛불혁명 : 아나키즘의 화려한 탄생

    08촛불혁명은 정치조직들이 어물어물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던 사이, 어린 여학생들의 즉각적인 감성이 터뜨려낸 21세기 한국사회의 축복이다.

    독일이 아닌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날 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듯이, 부동산 선거에 각자의 주권을 묻어버린 암울한 한국사회에 전세대가 연대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실천되는 시민혁명이 이루어질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누구를 조직하거나 지휘하지 않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 둘씩 모여서, 자신의 목소리와 의지를 전하며 서로가 서로의 더욱 굳건한 배후가 되는 기적. 평등과 자유를 양손에 나누어 쥔 채,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순간 순간 현상에 반응하며 탄력있게 대처해 나아가는 전형적인 아나키스트들의 행보를 언제 한 번 연습해 본 적도 없이 곧바로 실행해 가고 있다.

    “’엄마, 이명박 물러가라’ 하러 가자." 네 살 딸아이의 요청으로 아빠 희완이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날 밤(6월 7일)을 이 가슴 울렁이는 한국식 아나키즘의 체험장에서 보냈다.

    유치원에서 유기농 소녀로 불리는 딸아이 칼리가 “이명박이 나쁜 고기를 사람들에게 먹으라고 했다”는 엄마의 설명으로 즉각 의식화되어, 집에서만 외치던 “이명박 물러가라”를 드디어 외치게 된 것이다.(초기 집회에 참석한 바 있었지만 그땐 아직 우리 집에서와는 달리 “이명박 물러가라”까지 구호가 진전되지 않아, 실망했던 칼리였다)

       
      ▲촛불을 든 칼리 (사진=희완)
     

    집회가 시작되는 도로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 오른쪽 옆에는 두명의 고3 여고생, 앞으론 과묵한 아들 둘을 데리고 연신 분위기를 주도하시는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뒤로는 연신 화장을 고치는 예쁜 20대 언니였다.

    왼쪽 옆으로는 나의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인인 조카가 자리했다. 집회가 시작된 지 1시간쯤 뒤, 뒤에서 화장을 고치던 그녀의 남친이 여친의 구박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한다. 08 촛불혁명의 상징이 촛불소녀이듯, ‘女초에 女주도’가 사방으로 뚜렷하다.

    여성들, 삶의 정치에 눈을 뜨다

    08촛불혁명의 가장 아름다운 성격은 평화다. 카랑카랑 거침없는 목소리로 초기 시위를 압도한 여중고생들, 하이힐을 신고 시위장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는 젊은 여성들, 유모차로 아이를 데려와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수다 떠는 엄마들이 대거 등장한 이상, 이 집회는 태생적으로 비폭력과 평화와 다양성을 깊게 아로새겼다.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비폭력의 구호는 그 본질을 되새김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은 살림과 돌봄을 본능으로 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생명을 살려내고 돌보는 것을 주관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요구이므로 그 어떤 어정쩡한 타협도, 정치적인 이용도 통할 수 없는 직설적 요구이다. 쇠고기 문제로 거대 언론들의 기만을 직시하게 된 이들은 삽시간에, 정보의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현명함과 생활이 곧 정치인 현실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대학시절 혼자서만 팔랑거리는 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복장으로 시위대 한가운데 끼어있던, 생뚱맞은 존재였던 나는 수많은 여성 동지들과 설명할 필요없는 동질의 신념 속에 묶여 집회장에 앉아 있는 현실에 흥분했다.

    엄마와 함께 부르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가 대형스피커를 타고 연신 들려오는 것에 칼리는 어깨를 들썩였고, 가장 흥분해서 사방팔방으로 집회장을 헤집고 다녔던 사람은 그의 아빠 희완이었다.

    희완이 본 몇가지 뼈 아픈 진실

       
      ▲"나는 뉴욕을 사랑한다"는 글귀가 적혀있는 옷을 입은 집회 참석자.(사진=희완)
     

    68혁명 시절, 열정적 파릇한 청년으로 아름다운 혁명의 한가운데 있었던 그가, 2008년 서울에서 당시의 발랄한 모반의 흔적을 보려 했다. 68혁명은 아주 단순한 사안에서 시작되었다.

    남학생이 여학생 기숙사를 방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구닥다리의 규율에 대해, 더 이상 이런 촌스런 굴레 따위를 집어치우라고 들고 일어선 남학생들이 그 시발점이었다.

    대학생들의 이 ‘일상적인 분노’는 좌우를 막론한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의 모든 구태들에 대한 저항으로 번졌다.

    먹거리 안전의 문제에서 소통을 거부하는 정권에게 직접 민주주의를 행사하고, 경제를 살리기 전에 국민의 건강한 삶을 살리는 것이 우선임을 가르치는 전면적인 생활정치의 혁명으로 번지는 지금의 모습은 68혁명과 묘하게 닮아 있다.

    몇몇 운동권 단체들을 대표하는 인사들의 줄줄이 이어지는 복고풍 연설의 시간이 없어진 것에 대해 환호하고, 놀랍도록 평화롭기만 한 분위기에 나름 긍정하였던 희완이 결정적으로 긴 한숨을 내쉬게 한 것은 여전히 거리를 가득 메우는 영문으로 된 티셔츠와 모자 차림이었다.

    “왜 CHICAGO, BOSTON, NEW YORK이라고 잔뜩 써 있는 티셔츠를 여기까지 와서 봐야 하는가? 굳이 저렇게 아무 의미도 없는 도시 이름을 옷에 적어 다녀야 한다면, 왜 한국에는 서울, 부천, 수원 이렇게 써 있는 티셔츠는 없느냐. ‘US ARMY’라고 써 있는 티셔츠를 입고 전경에게 두들겨 맞는다 해도 동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가 고를 수 있는 티셔츠의 2/3 이상에는 크든 작든 영문이 적혀 있다. 한국에서 쭉 살 때에는 내게도 그 사실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5년간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을 때, 즉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현상이 그런 것들이었다.

    의류 뿐 아니라, 학용품, 과자 등 거의 모든 일상의 공산품은 불필요한 영문으로 도배되어 있다. 집회장에 굳이 ‘국민이 이긴다’ ‘촛불 소녀’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오는 것은 우리의 분명한 의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그 일상의 일부인 시위 현장에서도 이미 오래 전 미국화된 우리의 의식은 자각을 완강히 거부한다. 시카고, 보스턴, 뉴욕 따위의 티셔츠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미국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우리의 삶이 그들을 쫓아가고 있음을 질기게 역설하고 있음에도.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시청과 마주 서있는 플라자호텔은 명당 현판 자리이다. 거기엔 뮤지컬 ‘CHICAGO’를 선전하는 대형 현판이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전세계 쇠고기 거래의 중심지이자 맥도날드사의 본사가 있는 시카고가 버젓이 미국산 쇠고기로 빚어진 이 거대한 민주주의의 축제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이 광경은, 한국을 자신들의 쓰레기통쯤으로 여기는 미국의 오만방자함, “그래봤자 너흰 이미 우리 식민지잖아” 하는 조롱처럼 희완의 눈에 해석되었다.

       
      ▲사진=희완
     

    연신 사진기를 눌러대는 희완은 여러 차례 한국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느끼느냐?”

    “나는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자각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신자유주의에 휩쓸려 있는 전세계를 깨어나게 했으면 한다. 그러나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여기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문화를 동시에 쉼없이 소비하고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는 10초마다 하나씩 지나가는 대형 영문티셔츠를 손가락을 가리켜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도시 뭔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익숙한 티셔츠가 미국문화에 대한 프로파간다라고 우린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다.

    식량주권에 대한 위협에 파르르 떨지언정 문화주권은 이렇게 자발적으로 헌납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걸까.

    여성들은 말한다 : 돈보다 삶이 더 소중하다

    이명박이 국민들의 뜻을 도통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이 국민들이 분명, 어디서 이상한 자들의 조정을 받는 것처럼 지금껏 오해하고 있는 상황은 집회장에 돌아다니는 “귀 좀 파라”, “여보 청와대에 보청기 놔드려야겠어요”등의 문구들이 암시하듯, 우리를 가장 미치고 팔짝 뛰게 하는 점이다. 그런데 난 그의 몰이해가 살짝 이해가 된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피까지는 안 묻혔지만, 상처는 수없이 입어가며” 수천억대의 재산을 모은 인물이다. 그것을 온 국민들이, 한나라당내 경선과정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학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묻지마 선거’는 그를 청와대로 보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의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돈 한 가지에 주력”하는 그 주특기에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좀 구리긴 해도, 미국, 일본에 가서 굽신거려 가며, 딴에는 장사 좀 더 ‘씨언씨언’하게 해보겠다는데, 국민들 대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그는 도통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자기처럼 돈에 눈멀었던 사람들이 왜 갑자기 생명에 더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도화선이 된 이슈가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고 이것이 여성들의 본능을 직격탄으로 자극했던 것에서 해답은 찾아진다. 결국 같은 부모이지만, 아이들이 학교급식을 통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 것을 감지했던 것은 아빠들보다 엄마들이었다.

    뉴타운 지정되어서, 집값 상승의 평범한 재산증식을 한 번 누려보기도 전에, 아이들의 머리에 구멍이 송송 뚫릴 수도 있음을 알려준 언론이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선 조갑제의 지적은 명확하다. 지금 상황의 그 첫 번째 배후는 ‘PD수첩’이었다. 그 이후는 물론 모두가 아시는 그대로다.

    정부는 어쩌면 그렇게 하루도 안 빠지고 국민들을 투사로 만들어주는 데 공을 들였고, 정보를 소통시켜주는 거대한 토론의 장 ‘아고라’가 우리에게 있었다. 6년 전 희생된 여중생 2명이 수백만의 촛불을 처음 점화하였듯이, 이번엔 언니들이 남친들을 끌어들였고, 엄마들은 아들들은, 아내들은 남편들을 광장으로 끌어들였다.

    군화발에 머리가 짖이겨진 음대 여학생이 밋밋하던 서울대생들의 가슴에 불을 당겨주기도 했다. 집회 내내, 그들의 저명한 한 선배는 집회장 맞은편 전광판에서 연신 민망한 엉덩이춤을 추고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최근 급속히 회자되는 핀란드식 교육에서 배운 것이 “경쟁이 창의력을 죽인다”는 명백한 사실이라면 이번 08 촛불혁명을 통해 배우는 것은, 그동안 운동세력에 의해 계획되고 조직되던 운동이 이토록 순식간에 창궐할 수 있었던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엄숙하고 무거운 운동집단의 의식(儀式)으로 차단해 왔던 것은 아닌가에 대한 자각이다.

    시민들의 발랄한 정치의식은 한발자국 걸을 때 마다 순식간에 진화를 거듭했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광신 기독교도를 패러디 한 아저씨. “야옹아 잡어” 고양이 머리를 그려서, 쥐박이를 잡으러 나선 여고생들. 마우스를 길게 끌고 가는 청년. “새우깡에서 이명박 머리가 나왔어요” 새우깡 봉지를 들고 깔깔대며 외치는 젊은 아가씨들.

    나는 광장의 발랄함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개그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재치와 패러디의 자가발전장으로 시위장은 발전(?)했다. 이렇게 한 번 상승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쓰레기 언론사 앞에 쓰레기를 모아다 놓을 줄 아는 이 똑똑한 사람들이 적당한 사탕발림으로 사라져버릴 것 같지 않다.

    “나의 배후는 … 나의 마음”

    측량할 수 없이 빨리 진화한 시민들의 정치의식은 그동안 붉은 띠, 붉은 깃발로 상징되는 직업적 운동가들의 고전적 행동양식이 막아 온 것은 아닐까. 심상정도, 노회찬도 자유발언할 기회를 간신히 얻을까 말까한, 권위를 거부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아나키스트적 직접 민주주의의 폭발은 한국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기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엄마 나 좌빨 아니야” 라고 하던 촛불소녀들. 그들은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좌빨이 아니다. 그들은 이 시대에 새롭게 탄생한 아나키스들이다. 집회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배후는_______입니다” 라고 적힌 A4용지가 돌려졌다. 난생 처음 집회장에 온 초등학교 6학년 조카 상목이는 거기에 “나의 마음”이라고 적었다.

    이번 촛불혁명이 이뤄낸 성과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신나는 점은 더 이상 재미없는 집회는 감히 이 땅에서 열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ㅎㅎㅎㅎ. 대통령과 시민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다른 정당들과 달리, 원내로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마냥 원외에서 시민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진보신당도 운수대통했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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