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깡패 아줌마, 질긴 놈이 이겨요”
        2008년 06월 13일 03: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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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륭전자 동지들을 처음 만난 게 작년 8월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붉은 조끼를 입은 작은 체구의 까무잡잡한 여성들. 그 때 저희는 2차 파업을 준비 중이었고 겨우 3개월 된 신생 노동조합이라 아무 것도 몰랐었지요.

    기륭전자가 꼭 승리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사회적 양극화의 핵심사안이 비정규직 문제이고 비정규직 문제를 걸고 싸우는 사업장 중 현재까지 한 곳도 해결된 곳이 없고 모두 장기파업 중인데, 이랜드건 코스콤이건 어느 한 곳이라도 해결해야 나머지 비정규 사업장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고 특히 기륭의 경우 최장기간 싸워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불법파견이라는 공통된 명제를 갖고 있었기에 기륭 동지들의 경험담이 필요했고 그래서 동지들을 뵙고 싶다고 저희가 먼저 요청 드렸었지요. 정말 견디기 힘든 더위였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계급

       
    ▲ 지난 5월, 서울시청 앞 조명탑에서 농성 중인 기륭전자 조합원들 (사진=민주노총)
     

    기륭과 코스콤의 공통명제는 불법파견과 장시간노동, 저임금입니다. 특히 같은 일을 하는데도 회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기본급 월 65만 원에 월 60~70시간의 연장근무,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하는 등 인간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며 이윤창출을 위해서는 윤리도 무시한 채 ‘비정규직’이라는 등급을 두어 정규직과 차별을 하였죠.

    또한 회사가 파견직(즉 계약직)을 사용하게 되면 2년 이상 고용 후에 정규직화하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회사에서 이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편파견이란 편법을 쓰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를 중간에 두고 노동자를 고용하면, 원청에서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으면서 실제 일은 원청의 직접지시를 받고 인사관리 등 실질권한을 원청에서 직접 수행하고 이런 경우 실제 파견으로 간주하거나 도급(하청)으로 위장하려 했다 해서 즉시 정규직화해야 하는데도 기륭이나 코스콤이나 모두 원청이 이제 와서 자신들은 사용주가 아니라고 해왔었죠.

    이런 불법파견은 아직 많은 사례가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 대다수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라면 저지르고 있는 불법들입니다.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을 ‘이제는 너희는 비정규직이니까 합법적으로 차별받아도 돼.’ 정규직과의 임금차별(코스콤의 경우 정규직과 5배 차이)로도 모자라서 계약기간이 불안정하고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정체성 혼란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임금도 적고 언제든 내쫓을 수 있고 무엇보다 ‘너희는 그냥 소모품이야’라고 합법화하는, 차별이란 우리 눈에 쉽게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7년을 코스콤에서 일했던 저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제 목에 칼이 들어오니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거죠.

    코스콤은 250일 넘게, 기륭 동지들은 1000일이 넘게 파업을 지속하면서 참으로 많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동지들에게 그 동안 밀렸던 감사의 말을 드려야겠군요.

    깡패 아줌마, 최은미 동지, 이현주 동지 …

    기륭 동지들은 소수의 인원만이 남아서 싸우고 있는데도 한 분 한 분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특히 기륭 동지들을 보면 ‘신나게’, ‘두려움 없이’라는 단어가 연상됩니다. 특히 술 한 잔 들어가면 마이크를 놓을 줄 모르고 집회 때마다 경찰이랑 용역한테 기 한 번 죽지 않고 큰 소리 치고 심지어 몸싸움도 아끼지 않으셔서, 코스콤 조합원들에게 깡패아줌마라는 애칭(?)까지 붙은 동지, 그럴 때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같은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어찌 보면 남 일인데 그렇게 속시원하게 우리 속을 긁어주시니 참 고마웠습니다. 또 제가 고공단식 중일 때 해맑게 웃으면서 함께 일일단식을 한 최은미 동지, 따뜻한 편지와 함께 손수 만든 예쁜 핸드폰 고리를 선물해 준 이현주 동지 등 기륭은 특히나 한 동지 한 동지들이 아무런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저희와 연대해주었던 사실들에 감동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저희는 오히려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어 미안할 따름입니다.

    1000일이 지나도 스스로 힘있게 투쟁할 수 있는 그 질긴 승부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아마도 앞서서 말했던 소중한 동지들이 포기하지 않는 힘에서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기나긴 싸움 반드시 승리로 끝내야겠다는 동지들의 의지는 얼마 전 시청 고공시위에서 드러났죠.

    지금 동지들은 회사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동지들이 마지막 온 힘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죠. 전 동지들 서로가 힘 받으며 전개하는 이런 투쟁들 때문에 곧 회사와 협상이 이루어질 거라고 예상합니다. 이건 제 막연한 희망사항이나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 꼭 기억해주세요.

    작년 여름 동지들을 처음 만났을 때쯤 썼던 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기륭동지들이 진정 생존에서 벗어난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나는 장기투쟁하고 있는 KTX 승무원, 기륭전자분회 노조 동지들은 승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고, 우리가 일어나면 또 다른 사업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 아니 모든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식하고 노동조합을 통해 저항하는 그 날이 오길 간절히 원한다. 나는 ‘살아가고’ 싶다.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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