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시위는 불순해져야 한다”
        2008년 06월 12일 03: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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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초창기에는 보수집단들의 자신감이 여전히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은 그 때 배후 타령, 배후 색출 운운했었다. 참 실소를 금할 수 없을 정도의 멍청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망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 말하자면 영악한 보수집단들은 얼마 전부터 그 촛불시위를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으되, 컵까지 깨뜨릴 수는 없는 노릇. 컵은 온전하게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가 된 셈이다. <조선일보>는 그런 태도를 공공연하게 보이고 있다. 시위의 정당성은 확인됐으니, 이제 촛불 끄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이슈선점 능력은, 정두언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이 발군임을 확인시켰다. 버릴 사람은 버려야 했다. 다만 그 화살이 이명박으로 직접 향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오래된 관습처럼 반복되었다. 이는 아직까지 이명박을 버릴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시위의 순수성이라는 쟁점이 부각된다. 과연 촛불시위는 순수한가?

       
     
     

    중세 영국에서 축구는 일종의 난장이었다. 골대와 골대 사이의 거리는 수 킬로미터였으며, 특별한 선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중간에는 연못도 있고, 나무도 있으며, 영주가 사는 성도 있다. 마을 전체가 난장판이었던 셈이다.

    특별히 룰이랄 만한 것은 없었다. 공차다가 배고프면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 그 마을의 영주 입장에서 이런 축구는 매우 위험한 놀이일 수밖에 없었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축구가 지금의 축구가 되는 것은, 그 축구에 룰이 도입되는 과정이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이 안에서 놀아라”쯤 되겠다.

    “누가 프리미어리그를 두려워하랴!”

    그 난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분방함과 예측불가능성은, 귀족들이 보기에 너무 위험한 일이었는데, 축구를 하던 농민들이 귀족들의 성으로 쳐들어가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축구장에 선이 그어지고 이런 저런 룰들이 도입되자 축구는 안전한 놀이가 된다. 축구의 상상력은 결박되었으며, 그것은 축구의 상상력이 포획된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누가 프리미어리그를 두려워하랴!”

    순수성과 폭력성은 한 몸으로 간주되는 셈이다. 촛불시위는 순수하게 광우병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 광우병에 대한 공포만 제거될 수 있다면(사실 현재의 축산업의 위상과 관행을 감안하면 그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 시위는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상도 마찬가지이다. 안전한 촛불시위. 그게 <조선일보>와 이명박이 바라는 바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촛불시위가 처음부터 순수한 시위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설사 그 출발에서 순수한 모습을 보였을지라 할지라도, 그것은 불순해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촛불시위는 그래서 불순한 자들이 하는 불순한 시위이며, 순수한 시위로 그 의미를 제한하고자 하는 이명박의 바램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간의 시위에서 구호가 변화되었던 과정은, 이 점과 무관하지 않다. 순수한 시민들의 순수한 시위 운운하는 것은, 순수한 그들만의 민주주의의 좁다란 선 위에서, 민주주의를 방치할 것을 종용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헛구호에 불과하다는 점을 대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불순한 시민들”이라고 말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 싫다는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최초의 소박한 요구가, 백보 양보해서 순수했던 것이라고 할지라도, 상황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이 순수한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는 점은 중요하다.

    ‘소탐대실’의 통쾌함이 의미하는 것

    “미국 소 안먹겠다”는 요구가 왜 “이명박 퇴진” 구호로 변화했을까? 우연이거나 불순한 배후세력의 탓이라고 한다면, 이명박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지기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 사안은 처음부터 불순한, 복잡한, 얽히고 섥혀 있는 사안이었으며, 그러한 복잡함과 불순함이 시민들에게 공유되었다는 것은, 사태의 본질에 시민들이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고기를 탐내다가 대통령 자리를 잃는다’는 ‘소탐대실’이라는 유머가 회자되었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통쾌함은,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태의 본질을 잘 표현해줬기 때문이었을 것이기도 하다.

    역으로 그 때의 구호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 구호로 멈췄었다면, 즉 이 상황이 평화적인 시민들의 평화적인 탄원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면, 이 사태의 본질은 감춰진 채 드러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보면 그런 기회가 있었으되 그 기회를 놓친 셈이다. 그 정도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명박과 그 주변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력은, 참 딱할 정도로 무능하다. 여전히 그들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은 그 사이 광우병 전문가가 되어갔다. 이 과정은 순수한 시민들이 불순한 시민들로 변화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SRM이 어떻다는 둥, 프리온 단백질이 어떻다는 둥, 소장 끝부분이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를 평범한 시민들이 왜 알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평소 설렁탕을 즐겨먹는 사람들 중 그 안에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를 따지면서 먹는 사람이 있을까? 참 피곤한 일이다. 음식 재료의 원산지가 어디고 구체적으로 뭔지 등등을 따져가면서 먹어야 하는 상황.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이명박 정부이며, 그것은 애초부터 정부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업자들의 손에 쥐어주겠다는 장고 끝의 한 수를 두었지만, 그 수는 악수인 듯하다. 싸구려 장사꾼의 마인드다. 딱히 기대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실망했다고 하기도 뭣하지만, 한심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정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시민들은 이제 스스로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소의 고기덩어리를 가장 돈을 적게 들여서 가장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축산업의 매커니즘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축산업자들과 공생하는, 세계 최대의 축산업 국가, 미국의 정치판에 대해서도, 그리고 쇠고기의 수입업자와 수출업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번역 따위의 기술적인 문제조차 실수를 남발하는 정부의 무능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 뿐인가. 현대 과학이 얼마나 세상의 작은 부분만을, 그것도 아주 제한적으로만 설명력을 가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정치적 이슈로 불러들였다.

    너무 많이 알아야 하는 우리 국민

    이명박이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이나, 조중동이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현실이고,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저항할 수 있는 것도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대한민국의 수준이라는 사실은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촛불시위가 비폭력집회로 끝까지 가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 토를 약간 달아두어야 할 것 같다. 만일 비폭력의 주장이 그 집단의 순수성을 보장한다는 사실을 그 전제로 삼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사실 촛불시위의 대오 속에는 여러 정치적 이견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한미FTA에 우호적인 사람들이며, 심지어는 자유선진당의 이회창조차 한 발 정도는 걸치고 있는 형국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모두 이 안에 들어와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왜 경찰은 이런 상황에서 폭력적인 진압을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을까? 그건 당연히 폭력적인 진압을 해봤더니 자신들에게 더 나쁜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 폭력행사의 정당성에 관한 룰 또한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경찰이 폭력을 행사할지의 여부를 재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지금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0일 시위에서 우스꽝스럽게도 돈 들여서 세종로 한복판에 콘테이너 박스를 줄지어 세워둘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연은 다른 데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예상인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폭력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했거니와, 정치적으로도 수세에 있는 이명박의 경찰은, 지금 폭력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건 딴 얘기이기는 하지만, 만일 내가 이명박이었다면, 시위대가 청와대 앞으로 오도록 그냥 내버려둘 것이다. 사실 시위대가 청와대 앞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실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오히려 그게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시위대 중 일부가 우연찮게 사고라도 치면, 이명박이나 <조선일보>에게 있어 그것보다 좋은 호재가 어디 있겠는가? 요행에 바래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현재 상황은, 비빌 언덕이 요행 말고는 없어 보일 만큼 허약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상상력은, 여전히 5공 시대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다. 청와대 앞길이 마치 성역인듯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금 상황이 마치 무장봉기를 하겠다고 덤벼드는 상황도 아니거늘, 대응하는 모양새를 보면, 그 정치적 판단력이 우스울 정도로 저열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초등학생에게조차 조롱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폭력과 시위대의 비폭력

    같은 맥락에서 시위대의 폭력 사용 여부도 정치적 상황 속에서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폭력 자체가 악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혹시 그런 게 있다면, 결과적으로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유리한 정치적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다.

    이 상황은 대다수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경찰의 폭력을 가로막는 커다란 힘이기도 하다. 그렇게 길 막고 시위를 해도, 심지어 <조선일보>에서조차 ‘선량한’ 시민들의 통행불편에 대한 기사가 있기는 하나 크게 다뤄지지는 않는다. 그럴 수 없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판단 정도는 <조선일보>도 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론전에서의 승리이고, 지금까지 그것은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지금 시위대가 비폭력을 행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선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폭력을 사용할 만큼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요구를 일정하게 관철시킬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폭력이 사용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상황 여하에 따라,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조차 폭력을 악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폭력을 행사하는 합법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를 가진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쇠고기의 문제가 쇠고기의 문제를 넘어서서, 여러 가지 쟁점들이 섞여 있는, 불순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승인한다면, 이 쟁점이 이 쟁점으로 끝나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이명박이 가장 바라는 수순이라고 할 것이다.

    문제는 애초부터 불순했으며, 그 불순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앞으로 촛불시위가 나가야 할 길이 아닐는지.

    공기업 민영화와 감세, 노조 탄압, 학교의 시장화, 운하 등등이 쇠고기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은, 그것이 세계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되니, ‘적게 사먹으면 된다’는 이명박의 진심은, 공공성의 가치가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무지와 시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 근거한 천박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결국 그 모두가 빈곤한 이명박의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불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미국소 먹지 않게 해달라는 탄원으로 멈출 것인가. 쇠고기 문제를 넘어 돌파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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