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은 1987이 아니다
        2008년 06월 11일 1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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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 전에는 고등학생이었을 국민대책위 상황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100만 촛불 대행진’은 근래의 촛불시위 중 가장 ‘정형화’된 것이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으로 시작하여, 비장한 추모사와 운동권 웅변을 거치고, 결의문 낭독으로 끝난 공식행사가 특히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촛불 대행진은, 준비된 방송설비의 출력이 그리 멀리 퍼지지 못한 것처럼 연단 주변에서 그쳤다. 광화문 사거리의, 청계광장의, 잔디광장의 군중들은 제각각의 외침과 물결로 일렁였고, 그런 물결마저도 직장 동료, 가족, 인터넷 동호회일 작은 파도들로 찬란하게 반짝였다.

       
    ▲ 사진=뉴시스
     

    물론 그것이 분열 따위는 전혀 아니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남대문에 이르는 너른 공간, 거대한 인파가 일사분란하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일 테고, 어쩌면 꽝꽝 울리는 집회 방송으로 시민 축제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행사 진행자들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여러 파장의 빛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촛불은 몰상식한 정치권력에 대한 격렬한 성토로부터 비보이댄스까지가 한 데 어울어진 새 시대의 문화혁명이었다. 그것이 끌어안지 못하는 것은 없었다.

    치킨집 골목으로 밀려났을지언정 정운천 장관은 아무 해코지도 당하지 않았고, 잔디광장 한 구석의 ‘구국기도회’는 신기하고 재밌는 구경거리로서 애처로운 공존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극우 난동자들을 보호하던 경찰은 가끔은 농성 텐트로 와 지친 몸을 쉬게 했다. 다중의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자애로움이었다.

    ‘어게인 1987’은 무지 또는 불순

    이 거대한 규모와 6월이라는 계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1987년을 연상케 한다. 신문, 방송은 물론이거니와 촛불을 ‘해석’하는 진보 지식인들, ‘어게인 1987’ 신문을 파는 ‘다함께’도 옛 향수에 기댄다.

    그런데 2008년 6월 10일의 촛불대행진에는 1987년의 흔적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인도 한편에 초라하게 자리잡은 통합민주당 부스가 그러하다. 1987년의 명실상부한 배후세력이자 과실(果實)의 노획자였던 그들이 여름 해변에 아이스크림 장사 꼬이는 것처럼 얼쩡대는 현실이 2008년 6월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1987년 때처럼 정치적 성과를 내야겠다는 소망을 제외하면, ‘어게인 1987’ 담론은 무지하거나 불순하다. 민주-독재라는 구도와 그 정통성에 ‘촛불’을 가두어 싶은 사람들도 더러 있을 테지만, 1987년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 시절을 자꾸 되뇌는 것은 이명박의 정책과 마찬가지 오만한 폭력이다. 

    ‘몇 주년 기념식’을 열던 진보연대 같은 운동단체들이 ‘촛불’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점이 2008년 6월의 진실이고, 후진 운동권의 87년 담론으로부터 멀어져야 ‘촛불’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오늘의 교훈이다.

    “대의민주주의를 넘는 직접민주주의”니 “New new social movement”니 하는 식의 작위적 의미 부여도 과도하다.

    불만 쌓인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고, 즐거웠고, 더 많이 거리로 나와 외쳤을 뿐이다. 지금은 딱 그만큼이다. 거기에는 놀라운 문화적 발랄함과 직접민주주의의 징후로 읽힐만한 현상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운동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본질이 아니라, 시대 변천 – 탈기성, 탈권위의 사회 자체로부터 기인한 현상이다.

    관제 축제였던 ‘국풍81’이 1987년에까지 이르는 도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촛불문화제의 기원은 1987년보다는 2002년 월드컵에 더 가깝다. 왜, 재야종교 인사들과 학생회장들의 성지인 명동성당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놀러 다니던 청계광장에서 시작되었겠는가? 어쨌거나 촛불은 1987년이 주저앉은 그 장소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회문화적 징후들에서 미래를 읽지 말자.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무엇을 외치고 있는가를 직시하자. 보아하건대 촛불은, 지난 대선 당시의 이명박 지지나 뉴타운, 자립형사립고에 대한 환호와 완전히 단절돼 있는 것도 아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과 이명박에 대한 분노는 안전한 생활의 보장, 그를 위한 사회적 통제, 위정자와 인민의 평등이라는 전통의 정치 의제에 속한다. 통치자와 피치자를 가른 ‘명박산성’이 촛불 국면의 진실을 폭로하고 있잖은가.

    촛불을 가로막는 진정한 장벽

    이런 인민 욕구를 들어줄 수 있는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 현 국면의 유일한 딜레마이다. 이명박은 노무현 말기 같고, 민주당은 2004년 즈음의 민주노동당만도 못하고, 유일하게 연단에 설 수 있는 정치인인 강기갑은 민주노동당을 말하지 않고, 진보신당은 1997년 국민승리21 수준이다. 경제사회적 권리와 평등을 보장하라는 촛불의 목소리를 받아 안을 유력한 진보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 촛불을 가로막는 진정한 장벽이다.

    촛불과 1987년의 몇 되지 않는 공통점 중 하나는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후위대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들러리만 서기 계면쩍어 ‘총파업’ 헛공약을 남발해도 그 세력이 다시 1987년 즈음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학교자율화’에 내몰린 학생들은 아무 데도 말할 데 없어 청계광장으로 나왔지만, 똑같이 아무 데도 말할 데 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동자 동지’들에게 청원을 했고, 1987년의 후위대였던 조합주의 노동운동은 예의 ‘총파업’으로 화답할 뿐이다. 촛불이 칙칙한 사회운동으로부터의 탈출에 힘입은 것처럼 비정규 노동자들을 가두는 부자되기 노동운동의 울타리도 파괴돼야 한다.

    집회가 끝나자 행사 진행자는 “청와대로 향하실 시민들은 청와대로, 한나라당을 비판하러 여의도로 가실 시민들은 여의도로 향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알린다. 사람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여러 갈래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행진 선두 같은 것도 없다.

    누가 이 거대한 물결을 감히 규정하거나 통제하겠는가? 절대 권력이라는 대한민국 대통령도, 세계 좌익의 주목을 받는 한국 운동권도 통제하지 못하는 카오스다. 그곳에는 직업적 운동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대중의 창의성과, 준비된 권력도 없이 대통령 물러나라는 군중의 무모함과,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다중(多衆)이 함께 있다.

    거기서 뭔가 시작될 것이다. 거대하게 그러나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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