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머프 세상 같이 만들어요”
        2008년 06월 10일 02: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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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랜드 동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KTX 승무지부 오미선입니다.

    다들 건강하시지요? 우선, 어려운 상황이신데도 KTX 승무원들의 연대의 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많이들 드시고 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많이 힘드시죠?

       
     
     

    이랜드 투쟁도 이제 곧 1년이 되어갑니다. 1년을 투쟁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으셨지요? 그러셨을 겁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만 버티면 되겠지, 한 달만… 한 것이 벌써 800일이 넘었습니다.

    작년 이맘때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되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이랜드 사태가 터져서 노동계에서 우려했던 많은 부분들이 여지없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랜드 투쟁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언론에서 너무들 보도해주시니 알 수밖에요. 그만큼 사회적으로 집중된 사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을 부속품 정도로 생각하고 언제든지 갈아쓰면 된다는 식의 자본가의 태도와 노동 유연화라는 모토 하에 이것을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정부의 몰상식한 태도들이 이랜드 사태에서 여지없이 보여졌습니다.

    교섭 한 번 없이 800일

    저희 KTX 승무원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용자 측의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교섭 한 번 할 수 없었고, 기본적인 노동3권이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었던 시간들이 800일이 넘어섰습니다.

    저희가 많은 것들을 무리하게 바라는 건가요? 무리하게 임금인상을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생떼 쓰듯이 정규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한 만큼 받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내 일터를 달라는 것인데. 이 자그만 요구를 목터져라 외치고 또 외쳐도 자본과 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KTX 조합원들은 3년째 현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멋진 자태를 뽐내며 힘차게 달리는 KTX를 플렛폼에서 마냥 바라만보며 손을 흔들 뿐입니다.

    서글픕니다. 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렇게 힘들게 투쟁해야 하는 건지, 으레 장기투쟁을 생각하고 투쟁을 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KTX 투쟁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을 때, 이랜드 동지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를. 많은 언론매체에서 이랜드 사태를 연일 보도하고, 신문지면에 대문짝만하게 사진들이 나오고, 많은 연대단위들이 결합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랜드 사태만큼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기륭이나 KTX 문제처럼 장기화되지 않고 하루빨리 해결이 되어서 힘들게 투쟁하는 우리와 같은 사업장, 지겹도록 투쟁하고 있는 장투 사업장 동지들에게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랜드 동지들도 300일 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이제 장투 사업장이십니다 TT). 동지 여러분들께서 더욱 잘 아시겠지만, 이랜드 문제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의 대표적인 문제이고, 상징입니다. 비정규법 시행이 예고되면서 수많은 현장에서는 비정규법 개악 효과가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랜드입니다.

    이제는 동지들도 ‘장투사업장’

    바로 자본이 비정규법을 어떻게 이용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관리하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멍청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잘릴까봐, 쫓겨날까봐 숨죽여 지냈습니다. 자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랜드 동지들이 다함께 일어선 겁니다. 이랜드 동지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이 무거우시죠? 부담스러우시죠? 그러실 겁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굳게 다잡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랜드 투쟁을 예의주시하고 지켜보는 동지들이 정말 많이 계십니다.

    작년 6월인가요? 상암점 홈에버를 점거한 채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는 이랜드 동지들의 모습을 처음 뵙습니다. 2006년 3월 1일 저희 KTX 동지들이 처음 파업을 결의하고 이문 차량기지로 들어갔던 때를 생각하면서 이랜드 동지들이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갈까?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주지? 어떻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지? 고민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 6호선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상암점 홈에버 앞은 예상대로 비참하더군요. 그 넓은 월드컵 경기장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과 언제라도 연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닭장차들, 무전기를 통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외계어를 나불나불거리는 머리와 가슴이 빈 사복경찰들.

    내가 뉴스를 통해 봤던 모습보다 더 비참하고 가슴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저 안에 이랜드 동지들이 있겠구나.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밥이라도 제대로 드셨는지? 가족 걱정 때문에 잠은 제대로 잤는지? 처음 겪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우리도 수차례 경험해봤던 일이기 때문에 많이 걱정되었습니다.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매장 안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매장 안을 들어간 순간 제가 괜히 걱정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 같아서 너무도 민망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어서오세요! 밖에 장난 아니죠?” 밝은 목소리와 웃으면서 맞이해주시던 이랜드 동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괜스런 걱정

    대학생 동지들의 율동에 맞춰서 함께 율동을 하시는 모습이(앉아서도 어찌나 율동들을 잘하시는지) 얼마나 귀여우신지. 삼삼오오 짝지어 얘기하시다가 누군가 한 명이 마이크만 잡으면 다들 경청하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마음 아직도 남아있으시지요?

    이랜드 동지 여러분.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구에만 머물러 있으려고 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랍니다. 드넓은 바다를 향해 향해하는 늠름한 배의 모습이 훨씬 멋있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냥 안주해 있을 때, 정체되어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뭔가를 변화하려고 하고, 발전하려고 하는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 또한 투쟁하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노동자임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800일을 이렇게 투쟁해보니, 저희 KTX 동지들도 많이 지치는 것 같습니다. 이거 괜히 한 것 아닌가? 일찍 복귀했던 친구들은 지금 좋은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투쟁을 하다보면 누구나 이런 생각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투쟁하라고 외치는 나와, 그만하면 됐다고 외치는 나. 이 두 명의 ‘내 안에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이기는 쪽은 계속 투쟁해라! 입니다(그러니까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겠지요).

    투쟁을 그만 두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쟁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습니다. 먼 훗날 나의 20대 후반을 추억할 때 후회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투쟁을 제대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힘들면 내 동지도 힘들고 우리가 힘들면 우리의 승리도 멀어진다는 생각으로 힘찬 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머프 동지들 …

    저희 KTX동지들도 800일 문화제, 연대의 밤을 시작으로 다시 한번 힘찬 투쟁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이랜드 동지들도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초심을 잊지 마시고 힘찬 투쟁을 같이 했으면 합니다. 이랜드 동지들 하면 생각나는 것이 파란색 티셔츠입니다(저희도 얼마 전까지 입어었는데).

    그 티셔츠를 스머프 티셔츠라고 하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스머프 세상처럼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사회,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런 사회, 빈부의 격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되도록 (너무 거창한가요?) KTX, 이랜드 동지들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이 승리하는 그 날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벌써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지금 기륭은 구로역에서 고공투쟁 중입니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 있을 동지에게는 촛불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같은 땅을 딛고 같은 눈높이의 동지들에게는 술 한 잔 아니 커피 한 잔이라도 하면서 함께하는 마음을 보태야겠습니다.

    이랜드 동지 여러분!! 미약한 마음이나마 함께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시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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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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