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By mywank
        2008년 06월 10일 04: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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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만 촛불대행진’을 하루 앞둔 9일 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촛불시위 이후 한국사회의 미래’를 주제로 민교협, 교수노조, 학단협 소속 학계 전문가들과 500여명의 시민들이 함께한 ‘철야토론회’가 열렸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주최로 9일 밤 10시부터 열린 토론회는 다음 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한계’라는 큰 주제로 △광우병과 쇠고기 협상 △한반도 대운하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사회공공성 해체에 대해 학계와 현장 활동가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 토론이 이뤄졌다. 

       
      ▲9일 밤 10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철야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발제를 맡은 강수정 옥정중학교 교사는 “지난 3월에 있었던 일제고사는 아이들의 웃음을 빼앗아 간 대표적인 사건”이라며 “입학하자마자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을 익히기 전에 바로 시험을 치렀다”며 황폐해지고 있는 학교 현장을 고발했다. 

    이어 강 교사는 “일제고사는 점수를 통해서만 그 아이를 평가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성적이 서울시교육청이 집적이 되기 때문에, 전체 학교와 학생들이 1등에서 꼴등까지 서열이 매겨진다”며 “시험이 공부를 하기 위한 도구인데, 우리나라는 서열을 위한 도구로 전락된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기업이 학교로 쳐들어오고 있다

    강 교사는 또 “교육의 민영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학교를 시장화 시키려고 한다”며 “방과 후 학교를 통해, 학원이 학교로 들어오고, 공모제를 통해 기업인들도 학교의 교장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발제를 맡은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이때까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실체는 없었다”며 “한반도 대운하를 통해 물류혁명을 이루겠다는 목표도 허구임이 밝혀졌으며, 이후 관광과 지역개발에도 이점이 있다는 내용도 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정부에서 물길 잇기와 하천정비로 대운하의 목표를 바꿨지만, 이마저도 적절치 못하다”며 “한강과 낙동강에 물길이 이어지면, 전체 식수의 3분의 1이 오염되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강변여과수도 적절한 대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광우병과 쇠고기협상’을 주제로 발제를 맡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광우병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해법은 재협상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정부에서 쇠고기 재협상 명확한 언질을 하지 않으면, 촛불대행진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회공공성 해체’에 대한 발제를 맡은 나상윤 공공연명 정책위원장은 “사회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현재 사유화된 공기업을 다시 국유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단과 현장의 전문가들이 모인 토론회.
     

    이어서 이날 철야토론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언과 질문이 이어졌다. 성균관대 학생인 제호석 씨는 “지금 촛불문화제는 이념과 주체 면에서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자유·평등·박애라는 이념이 아니라, 살려달라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 씨는 “87년 6월 항쟁에는 운동권과 정당 등 운동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주체가 없다”며 “2008년 촛불문화제는 여고생과 직장인 주부 등 일반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행사”라고 강조했다.

    중앙대 학생인 송승화 씨가 “대운하의 본고장인 독일과 네덜란드의 운하실패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는 왜 실패가 검증된 운하사업을 강행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박창근 교수는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는 운하는 꼭 호주머니에 넣어 갈 것”이라며 “경기를 단기간에 부양시키는데는 토목공사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송 씨가 “정부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자율규제’를 통해 막겠다고 하는데, 30개월 이상 쇠고기가 정말로 들어오기 힘들게 된 건지”에 대해 묻자,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민간업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쉽기 때문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국내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며 “30개월 령을 측정하는 것도 매우 주관적”이라고 비판했다.

    구미시민 "낙동강 주변 땅 50~60% ‘강부자’들이 사들여"

    경상북도 구미에서 올라왔다는 최근성 씨는 “그동안 한반도 대운하의 환경문제가 주로 비판받아왔지만,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밀어 붙이려고 하는 것은 낙동강 유역에 국유지와 공유지가 많기 때문”이라며 “대운하 사업을 하려는 재벌들에게 사업권을 줘, 국토를 헐값에 매각하려는 수작”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노리고 낙동강 주변 땅의 50~60% ‘강부자’들이 매입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교 휴학생인 나길수 씨는 “어렸을 때를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이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난다”며 “치솟는 기름 값과 통신요금 보면, 그 기업들이 공기업으로 있었으면 물가대책을 세우는데 더 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사유화된 기업을 국유화 시켜야 하는데 현실적인 문제가 없냐”고 물었으며, 나상윤 공공연맹 정책위원장은 “외국에 그런 사례가 있는데, 특히 영국과 같은 경우 철도와 가스를 민영화 했으나, 철도의 경우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다시 국유화를 했다”며 “네덜란드 역시 민영화시킨 철도를 다시 국유화했다”고 설명했다.

    나 정책위원장은 이어 “사유화된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려면, 사회적 소유형태를 갖고 있어야 하고, 세금을 내는 우리가 경영에 개입하는 통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영화 기업 재국유화해야

    그동안 촛불문화제에 5번째 참여했다는 한 남성이 “오랜 기간 일본에 살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다”며 “일본은 쇠고기 수입기준을 20개월로 잡았는데, 한국 정부는 30개월로 정하고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수입하려는지 이해가 잘 안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20개월과 30개월 나오는 이유는 20개월 미만 살코기에서는 광우병 발병 사례가 없고 과학적으로 봤을 때 안전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또 “대부분 광우병은 30개월 이상뿐 아니라 30개월 미만에서도 발생되기에, 반드시 전수검사와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30개월을 수입기준으로 삼으면서 SRM까지 들여오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는 정말 황당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철야토론회는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끝났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사진=손기영 기자)
     

    양주혁 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자율화’를 추진하면서 등록금도 오르고 있고, 국립대들도 법인화시키는 것"에 대해 토론 참석 교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회를 맡은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국립대학의 비율이 낮고 사립대 비율이 높기 때문에 등록금 문제를 비롯해, 국가 고등교육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들다”며 “그나마 남아있는 국립대학들도 법인화되면 등록금이 엄청 오르고 학문 간의 불균형도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건설현장 관리자 리더십

    서유석 호원대 철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2부에서는 ‘촛불과 촛불 이후’란 큰 주제로 △이명박 정부와 민주주의의 실종 △광우병 정국 쟁점 △촛불집회의 의미 △촛불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학계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와 민주주의 실종’에 대해 발제를 맡은 김상관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민주정부들이 맡은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며 “이명박 정권은 처음부터 과장된 선언과 기만적 내용의 슬로건을 내걸면서, 3개월도 안되어서 지지율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어느 정부보다 공격적인 신자유주의를 펴고 있으며, 대통령의 리더십은 건설현장 관리자 리더십”이라며 “이런 그가 지금 국가 관리의 중심에 서있는데, 이런 종류의 리더십의 특징은 1인 중심, 중앙집권식이기 때문에, 현재 민주주의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광우병 정국쟁점’에 대한 발제를 맡은 상지대 사회학과 홍성태 교수는 “광우병 정국의 다른 이름은 촛불정국”이라며 “광우병이 정권을 상징하면, 촛불은 희망과 이에 맞서는 시민들을 상징한다”고 강조했다.

    쇠고기-대운하 양대 전선

    이어 홍 교수는 “촛불정국은 한 줌도 안 되는 이명박 세력과 절대 다수 국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명박 정권의 위기는 정당성의 위기이고, 지금 국민들은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전선과 한반도 대운하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는 ‘양대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의미’에 대한 발제를 맡은 전북대 사회학과 정태석 교수는 “촛불은 진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변화하고 있다”며 “촛불의 직접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나는 살고 싶다’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촛불의 시초는 광우병 쇠고기 위험의 당사자들인 청소년들이 공포를 느껴 이에 대한 불만들이 표출된 것”이라며 “이것이 학부모들에게 번지면서 촛불문화제가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안한 자세로 철야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정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이런 국민들의 불만을 해결해지지 못하고 진실을 가리려는데 연연했다”며 “촛불의 의미는 대통령에게 미국 눈치 보지 말고 재협상에 임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 이후 한국사회’에 대해 발제한 한신대 경제학과 강남훈 교수는 “우리가 민주공화국이고 권력이 국민으로 나온다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 이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현상의 근본원인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그런데 소수의 대리인들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을 배신하더라도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며 “이런 소수의 대리인들이 국민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이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강 교수는 또 “광장정치가 발달되는 데도 제도정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대의민주주의가 현실적인 대안이었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달로 직접민주주의적인 요건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직접민주주의 가능성 커져

    이어 2부에서도 시민들의 발언과 질문이 이어졌다. 중년의 한 남성은 “국민들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 현상"에 대해 물었고, 김상관 교수는 “이미 우리는 87년 체제 20년을 지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정보민주주의도 도달한 상황”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변화된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에 분노한 국민들의 촛불정국이 이어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은 “과연 이명박 정부는 재협상에 동의할 가능성은 있는 것이고, 재협상만 선언하면 촛불이 꺼질 것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이에 대해 강남훈 교수는 “현재의 촛불은 광우병 문제만은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위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계속 촛불을 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현재 대의민주주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산에서 온 노동자’라고 소개한 남성 역시 “87년 안산에서 같이 근무하는 친구를 따라서 서울에 올라와 이 자리에서 화염병을 던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며 “21년 뒤인 오늘 서울시청 앞에서 ‘제2의 민주화’를 염원할 수 있어 감개무량하다”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밤을 새며, 야외 광장에서 수백명의 시민과 지식인 그리고 현장 활동가들이 진지하고도 열띤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경이로움이었다. 자리를 뜨는 시민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하품을 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최근 이러저러한 토론회에서는 뽑아 준 사람들에게 ‘맡기는’ 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숙의민주주의 또는 심의민주주의가 얘기되고 있다. 그 맹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 토론회였다. 

    토론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은, 토론 과정에서 채워진 뿌듯함과 공감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난감함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함께 짊어지고 가는 것 같은 뒷모습을 보이며 흩어졌다. 시간은 새벽 4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곧 새벽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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