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레닌의 시대가 돌아왔나?
        2008년 06월 09일 04: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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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로베니아 출신의 슬라보예 지젝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가 철학자인지, 정신분석학자인지 또는 대통령 후보 전력이 있는 정치인인지도 불분명하다. 지젝은, ‘정통적인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표현으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하고, 사이버스페이스나 이라크전쟁 같은 현실에 대해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지젝이 2002년에 쓴 책 『Revolution at the gate』가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이라는 제목으로 한글 출판되었다.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부제로 달고 있다.

    요즘 시절에 혁명이라니? 그리고 하필이면 왜 레닌일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야 끊긴 바 없지만, 혁명을 현실로 계획하거나 실천하지 않은 지 너무도 오래된 오늘 지젝은 왜 혁명을 외치는 것일까?

    좌익이든 우익이든 맑스를 ‘비판적 학자’로 존경하는 데는 아무 부담이 없겠지만, 한 나라, 한 체제, 한 시대를 ‘재앙’으로 몰아넣었던 ‘몽상적 독재자’ 레닌을 다시 꺼내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젝은 “우리는 아직도 레닌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단언한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레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레닌이 죽었다”는 것, 그의 특수한 해법이 실패했다는 것, 그러나 그 안에 구해낼 가치가 있는 유토피아적 불꽃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레닌이 한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지 못한 일, 그가 놓친 기회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레닌이 1917년 2월 혁명부터 10월 혁명 때까지 썼던 글을 놓고 요즘 식으로 재해석하거나 첨삭, 수정한다.

    중앙은행이라는 (분명히 낡은) 예를 오늘날 ‘일반 지성’의 완벽한 후보라고 할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으로 바꾸면 어떨까? 레닌은 사실 월드와이드웹의 역할에 관한 이론을 개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월드와이드웹을 몰랐기 때문에 불쌍한 중앙은행만 언급해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월드와이드웹이 없으면 사회주의도 불가능하다 …. 여기서 우리의 임무는 단지 이런 훌륭한 기구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왜곡된 부분을 쳐내고, 그것을 더 크게, 더 민주적으로, 더 포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 월드와이드웹에는 또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폭발적 잠재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이크로소프트 독점의 교훈은 바로 레닌주의적인 것이 아닐까? 국가 기구를 통하여 이런 독점과 싸우는 대신(법원에서 명령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분리를 기억하라), 단순히 그것을 국유화하는 것, 그것을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이 책의 영어 원제목이 왜 ‘문 앞에 다가온 혁명’인지, 지젝이 현 정세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지젝이 레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로 든 것 중 하나는 내 마음에도 쏙 든다.

    지젝은 이런 저런 ‘정치적으로 올바른’ 담론과 운동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유토피아적 에너지로부터 김이 빠진 것”, 체제를 보완하는 체제의 안전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이라는 수사를 붙인 다기한 운동이 아니라, 훨씬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도전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21세기에 레닌을 불러내는 것이다.

    레닌이 위대한 것은 이런 재앙과 같은 상황에서 성공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아도르노에게서 발견되는 부정적인(소극적인) 파토스와 대조를 이룬다. 이들 두 사람에게 진정한 행동이란 실패―이것이 상황의 진실을 드러낸다.―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닌은 1917년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지 않고 선제 파업을 조직했다. 1920년에는 노동 계급(내전에서 다수가 죽었다)이 없는 노동 계급 정당의 지도자로서 국가를 조직하는 일에 착수하여, 정당이 자신의 기초, 즉 자신의 노동 계급을 조직한다―심지어 재창조한다―는 역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 권력의 문제는 회피하거나 옆으로 치워둘 수 없다. 권력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핵심 문제이다(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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